사는 세상이 다른 두 사람의 로맨스. 그래, 정말 화제에 오를만한 안건이다. 우리 집에 드나들게 되면 당연히 왕궁에도 얼굴을 내밀게 될 것이고, 성탄절 선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오가는 세계에 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내가 전생에 일본인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17살짜리 아이에게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17살은커녕 남녀 모두 15살에 결혼하는 건 흔한 일. 오히려 딜 군 같은 평민이야말로 빠르면 12, 13살에 14살짜리 남편에게 시집을 가거나 한다.
학교을 다니고 졸업하고 18살에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일이다. 가난한 평민들은 학교도 못 다니고 12살에 집안일을 돕거나 일을 하는 것이 보통이니, 오히려 바스코다가마 왕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딜 군은 상류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뭐, 졸업까지 시간은 있으니, 차분히 생각해 보면 돼. 나도 아버지도 딜과 마리한테 뒤를 이으라고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니까. 우리 집에서 대출을 받아 시골에서 느긋하게 양계업을 한다 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거야."
"응, 고마워, 형. 그렇게 말해주니 왠지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아."
옆에 앉아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던 딜 군이 내 어깨를 기댄다.
"도망칠 것인가, 맞설 것인가, 아니면 순응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청춘의 한 부분이야. 연애란 언제나 알 수 없는 두려움과의 싸움일 뿐이고, 결혼은 더더욱 그렇지. 누구나 낯선 사람과 가족이 되려면 용기가 필요해."
"그럼 형은?"
"응?"
"형은 어때? 왜 낯선 사람인 나에게 이렇게 잘해 주는데? 나는 잘생긴 것도 아니고 돈 많은 것도 아니고 똑똑한 것도 아니야. 형 같은 미남이 그렇게 잘해줄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어."
"그야, 남의 일이라서 그렇지. 연애에 열심인 여동생이 유학지에서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돈만 보고 몸만 보고 얼굴만 보고 접근한 놈인 줄 알았는데, 너처럼 솔직하고 귀엽고 순박한 시골 청년 ...... 실례, 남자아이라면 응원해주고 싶기도 하잖아? 적어도 이상한 남자에게 걸려서 용돈을 뜯기는 것보단 훨씬 낫지."
도시의 부잣집 아저씨가 시골의 촌뜨기 아가씨와 결혼하는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지만, 뭐 그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솔직하고 순진한 남자아이의 매제라면 나도 대환영.
"학생들끼리의 연애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진지하겠지만, 곁에서 보면 평범한 청춘의 한 페이지일 뿐이야. 어깨에 힘을 빼고 좀 더 부담 없이 즐겨."
빼는 것은 어깨의 힘만 해두라는 저속한 아저씨 농담이 무심코 입에서 튀어나올 뻔한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걸 삼켰다. 나도 정신연령이 아저씨 나이에 가까워져서 그런지 점점 아저씨 같아진지도 모르겠다.
"고마워, 형. 나, 진지하게 ...... 지금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해 볼게. 마리도, 형도......."
왜 나를. 아니, 모처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것은 좀 그런가.
"음음, 힘내라 젊은이."
나는 기대어 오는 딜 군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여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기지개를 켰다. 예전에 누군가에게서 '새끼돼지 주제에 고양이 같은 놈이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돼지도 돼지 나름대로 10년 가까이 이 몸으로 살아왔으니, 그럼 몸의 사용법도 능숙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은 어떻게 해? 우리 집에서 묵고 가? 뭣하면 내 방에서 같이."
"아니, 마음은 기쁘지만 돌아갈게. 로건 님과의 약속도 있고."
"...... 그래, 아쉽네. 또 언제든 놀러 와줘. 형이라면 언제든 환영할 테니까!"
"고맙다...... 버질!
내가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자, 이를 알아차린 버질이 환담을 나누다가 끊고 집 밖으로 나왔다. 조금 늦게 딜 군의 가족들도 뒤따라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요 도련님!"
"슬슬 돌아가자~!"
닭장의 지붕에서 뛰어내린 나를 보고 딜 군과 버질 뒤에 있던 딜의 가족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중력 조절 마법을 사용해 자신의 몸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헬륨 가스가 아닌 이산화탄소가 담긴 풍선처럼 가벼워진 나의 뚱뚱한 몸이 하늘에서 민들레 솜털처럼 푹신푹신하게 내려오자, 달려온 버질이 두 손으로 잡아냈다.
"나이스 캐치!"
"도련님, 남들 앞에서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십쇼.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요."
"미안 미안. 청춘의 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만."
지붕 위에 있는 딜 군에게 손을 흔들며 나의 무사함을 알린다. 그래, 내가 좀 나쁜 짓을 한 것 같다. 돌발적인 기행은 내 기행에 익숙한 사람들 앞에서만 해야지, 확실히 위험할지도 몰라.
그렇게 바스코다가마 왕국에서 보내는 연말은 아주 평화롭게 지나갔다. 나도 매번 귀찮고 번거로운 일에만 휘말리는 건 아니야 ...... 라고 끝까지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