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스, 정말 고마워.
...... 나는 마물 토벌대로 돌아가지만, 이런 나라도 가끔씩 너를 만나러 와도 괜찮을까?"
"네.
또 마물을 퇴치하러 가시는군요 ....... 아무쪼록 무사히 다녀오세요. 켄돌 님의 활약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을게요."
현관에서 켄돌의 뒷모습이 작아지는 것을 이리스가 지켜보고 있을 때, 이리스의 뒤에서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 연약해 보이는, 시시해 보이는 남자네.
언니한테 딱 맞는 것 같지 않아?"
깜짝 놀란 이리스가 뒤를 돌아보니, 헬레나가 팔짱을 낀 채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남자를 데려온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런 게 아니야. 그 사람은 다쳐서 ......"
"마물한테서 도망치다가 부대에서 낙오된 거라면서? 후후, 앞날이 캄캄하네.
...... 나는 저런 사람은 절대 사절이야."
헬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옆으로 돌아서서 이리스를 남겨두고 떠났다.
이후 한동안 켄돌과의 교류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리스는 그로부터 약혼을 신청받았다.
이리스의 계모인 벨라도, 그리고 헬레나도 드디어 이리스를 쫓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약혼에 동의하여 켄돌과 이리스의 약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불과 3년 후 켄돌이 승승장구하며 제4기사단의 부단장까지 오르게 될 줄은, 당시의 이리스도, 헬레나도, 그리고 켄돌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켄돌이 승승장구하며 출세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헬레나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켄돌이 일하다가 틈틈이 이리스를 찾아갈 때면 어김없이 헬레나도 켄돌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약혼녀의 여동생 치고는 너무 가까운 거리감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헬레나의 미모는 그때부터 돋보이고 있었다. 밝은 분홍색 금발 곱슬머리에 밝은 짙은 복숭아빛 눈동자를 가진 화려한 헬레나와, 가녀린 연한 금발에 신록 같은 연두색 눈을 가진 수수한 이리스는 전혀 닮지 않았다. 대조적인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을 때, 남성의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는 분명했다. 점점 켄돌의 마음이 이리스에서 멀어지고 헬레나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이리스는 그저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이리스는 부상으로 쓰러져 있는 켄돌을 발견했을 때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큰 바구니를 손에 들고 가문의 뒷산을 오르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팔 수 있는 약초라도 몇 개라도 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온 것이다.
(분명, 그가 쓰러져 있던 곳이 이 근처였던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어둡게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사이로 들어가니, 갑자기 풀숲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악......!?"
이리스가 깜짝 놀라 움찔하자, 풀숲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왔다.
"......?"
손에 지팡이 같은 것을 들고 어떻게든 앞으로 기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남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푸르뎅뎅하게 부어올라 도무지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미 다 너덜너덜해졌지만, 무슨 로브 같은 것도 입고 있었다.
"괘, 괜찮으세요!?"
눈앞에 나타난 이리스를 발견한 그는, 숨을 헐떡이며 낮게 중얼거렸다.
"...... 안타깝게도, 괜찮지 않네요."
"그, 그렇군요.
제 어깨를 잡아주시겠어요? 여기서 집이 가까우니 금방 안내해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 덕분에 살았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를, 이리스는 어떻게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아, 아가씨! 그분은......?"
남자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반쯤 비명을 지르며 놀란 목소리로 소리 내는, 이제는 시녀장이 된 몰리에게로 숨을 고른 이리스가 어떻게든 대답한다.
"저기 뒷산에 쓰러져 있었어."
"어머. 아가씨, 또 그런 ......."
몰리가 켄돌을 암암리에 가리키는 것임은 알 수 있었다. 이리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누구보다도 이리스를 걱정해 온 몰리는, 이리스가 켄돌에게 당한 파혼을 이리스보다 더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급히 달려와 도움을 주려는 몰리에게, 이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이미 방이 가까우니 이대로 옮길 수 있어.
대신 약상자를 가져다 줄래? ...... 꽤 많이 다친 것 같아."
이리스의 어깨에서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몰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약상자를 가지러 가려다가, 문득 남자가 입고 있는 로브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저 모양은 ......)
군데군데 닳아서 검게 변한 그 로브에 새겨진 금색 자수 별 무늬는, 확실히 이 나라의 마술사들 중에서도 소수의 고위층들에게만 인정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