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 파혼(1)
    2024년 01월 06일 18시 50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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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스, 할 말이 있어."



    눈앞에 서 있는 키 크고 건장한 약혼자 켄달의 냉담한 눈빛과 낮은 목소리에, 이리스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의 팔에는 여동생인 헬레나가 가늘고 하얀 팔을 끼우면서, 뜨거운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다.



    (아아,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이리스도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리스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던 켄돌이었지만, 그가 기사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그의 미소는 점차 이리스가 아닌 아름다운 여동생 헬레나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헬레나가 행복하게 미모를 빛낼 때마다 켄달의 마음이 그녀에게 향하는 것을 이리스는 막을 수 없었다. 이리스는 켄달이 볼을 붉게 물들이며 약혼을 청했을 때가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최근 들어 그는 이리스에게 미소를 지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 따위야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이리스는 어떻게든 어색한 미소를 그 얼굴에 띄웠다.

    켄달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이리스에게 말했다.



    "이리스, 너와의 약혼을 파기할게.

    마법사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면서 아무런 마법의 속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너는,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이해하지?

    나는 헬레나와 약혼하기로 했어."



    이리스는 다시 한번 켄돌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건장하게 성장해 힘도 지위도 얻은 위압감 있는 켄돌에게서는,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리호리한 체격에 믿음직하지 않고, 연약한 미소만을 짓고 있던 켄돌. 하지만 이리스는 그런 그의 수줍어하는 듯한 소박한 미소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리스가 좋아했던 그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알겠습니다."



    이리스가 그 말만을 겨우 내뱉자, 켄돌은 이리스에게 등을 돌리고는 옆에서 몸을 꼭 붙이고 있던 헬레나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가자. 내 귀여운 헬레나."

    "아아, 기뻐요, 켄돌 님. 드디어 당신과 약혼할 수 있게 되었네요."



    떠나면서, 헬레나는 이리스를 돌아보더니 요사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두 눈에 비친 조소는 못 볼 리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이리스는 헬레나에게서 눈을 돌리더니, 서둘러 자기 방으로 가서는 침대에 엎드려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

     


    방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이리스는 붉게 충혈된 눈가를 닦고 침대에서 일어나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승승장구하는 듯한 표정의 헬레나와 계모인 벨라가 서 있었다.



    벨라는 울음에 젖은 이리스의 얼굴을, 웃음기를 띈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어머, 보기 흉해라.

    ...... 헬레나한테서 들었는데, 켄돌 님은 너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헬레나와 다시 약혼을 맺는다고 하더라? 뭐, 당연하지. 너와 켄돌 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걸. 그 정도의 기사에게는 헬레나 정도의 재능이 없으면 어울리지 않아. 희귀한 빛의 속성을 타고났으며, 아름답게 자란 헬레나라면 그의 곁에 설 자격이 충분하겠지만....... 안 그러니, 헬레나?"

    "말씀하신 대로예요, 어머니.

    여태껏 언니가 켄돌 님과 약혼했던 것은 잘못된 일이었어요."



    (...... 내가 켄돌 님에게 약혼을 제안받았을 때는, 좋은 말로 나를 그에게 떠넘기려고 했으면서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후처로 들어온 계모 벨라와 이복 여동생 헬레나가 집안을 이끌게 되었다. 당시에는 별 볼 일 없는 기사 가문의 셋째 아들이었던 켄들의 약혼 제의를 받자, 이걸 기회라며 이리스를 떠넘기려고 했던 것이 눈에 선하다. 빨리 이리스가 이 가문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그때 두 사람의 표정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설마 켄돌이 이리스와 약혼한 후 그토록 빠르게 기사단의 출세 가도에 오르리라고는, 당시 두 사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헬레나는 점차 이리스에게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켄돌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수수한 외모의 이리스와 달리, 시선을 사로잡는 미모의 여동생에게 켄들이 빠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헬레나는 멍하니 왼손을 쳐다보면서, 자랑하듯이 약지에 끼운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이리스에게 내밀었다.



    "이것 봐, 아름답지 않아? 오늘 나에게 약혼을 신청하기 위해 켄돌 님이 준비해 주셨어. 방금 전 돌아가실 때에도 가능한 한 빨리 나랑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하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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