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
    2024년 01월 05일 18시 07분 1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나는 머리에 피가 끝까지 솟구치는 것을 어떻게든 억누르며, 두 손을 꽉 쥐었다. 이 자리에서 도발에 응하는 것은 그녀한테 유리했기 때문이다.



     히로인이니까, 어쩌면 말을 걸어봤을 때 착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살짝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던 것 같다.

     울먹이는 율리아 님을 보자 클로이 양을 파멸시키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랐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 어두운 마음을 억눌렀다.



    (이건, 안 좋은 예감만 들어)



     나는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러 리샤르 님 일행의 앞을 떠났다.



    ****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리샤르 님과 나의 약혼 피로연의 날이 다가왔다.



     왕궁의 파티 장소인 대연회장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은 내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장의 아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온 클로이 양을 본 리샤르 님의 눈빛이 넋이 나간 듯 가늘어진다.



    "클로이 님도 초대하셨어요?"



     싸늘하게 물었더니, 리샤르 님은 깜짝 놀란 듯이 대답했다.



    "그, 그래. 그녀도 나와 같은 반이니까."



    (리샤르 님, 요즘은 계속 이런 식이네. 나하고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고).



     친절하고 세심했던 그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슬펐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정장을 차려입은 아버지와 로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포커페이스인 아버지는 변함없는 모습이지만, 로이는 왠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볼썽사나운 모습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어)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서, 손님들에게 어떻게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반복했다.

     하지만 춤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두의 장면에 이르렀다.

     나는 있는 힘껏 발을 내려찍어서, 리샤르 님의 발을 밟아버렸다.



    "크윽 ......"



     날카로운 하이힐에 온 힘을 다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리샤르 님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신음소리를 내더니 몸의 균형을 잃고 대리석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발을 밟았을 때 나도 발을 헛디뎌서 나도 그 위에 겹쳐 쓰러졌다.



     잠시 장내가 소란스러웠지만, 금방 진정되었다. 대부분의 커플들은 우리를 못 본 척하고 춤을 계속 추고 있다.

     그 와중에 한 명만 분위기를 읽지 않은 채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아가씨의 모습이 있었다.



    "리샤르 님! 괜찮으세요?"



     내가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는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내린 클로이 양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의 달콤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구역질과 메스꺼움을 참아가며, 이제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악역영애다.

     설령 이 일로 내가 죄를 뒤집어쓰고 파혼당해 수도원으로 보내지더라도, 우리 가문의 몰락까지는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말없이 몸을 일으킨 리샤르 님은 천천히 내 몸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 어?"



     놀란 나를 뒤로하고, 그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발을 삐끗했지? 빨리 식히는 편이 좋아."



     그리고 클로이 양에게서 몸을 떼어내면서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클로이 양, 각오해라."

    "그런! 리샤르 님, 대체 무슨 말씀이신가요?"



    (......????)



     그의 발을 밟은 자는 누가 봐도 나다. 이 순간만큼은 클로이 아가씨의 말이 옳다고 본다.

     당황한 내 곁으로, 어느 사이엔가 창백해진 그녀의 주위를 천으로 입을 가린 병사 몇 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장내의 소란스러움이 한층 더 커졌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나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리샤르 님에게 안겨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



    "괜찮아? 아팠지?"



     그렇게 말하면서 대기실에서 직접 얼음으로 내 발을 식혀주는 리샤르 님의 모습에,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728x90

    '연애(판타지) > 약혼 피로연에서, 있는 힘껏 약혼자의 발을 밟은 결과'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0) 2024.01.05
    5  (0) 2024.01.05
    4  (0) 2024.01.05
    3  (0) 2024.01.05
    2  (0) 2024.01.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