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 정도는 나를 봐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나는 높은 굽의 날카로운 구두를 신은 오른발을 그의 발을 향해 힘껏 내리찍고 있었다.
***
내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것은, 약혼 피로연가 있기 한 달 전의 어느 날이었다.
왕립학교의 창문을 통해 안뜰을 내려다보던 나는, 한 영애에게 웃으며 대화하는 리샤르 님의 모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왜 리샤르 님은 저 아이에게 저런 미소를 짓고 있는 거람......?)
몇 명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나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친구인 율리아 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델레이드 님? 왠지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요 ......"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 어지러웠을 뿐이야. 아무 문제없어."
나는 얼마 전, 이 나라의 제2왕자인 리샤르 님과의 약혼이 성사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하지만 나와 이야기할 때 평소에는 표정을 크게 바꾸지 않던 리샤르 님이, 창 밑에서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나는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다. 리샤르 님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만난 적도 없는 아가씨일 텐데,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었다.
(저 아이, 누구일까 ......?)
그때, 머리 뒤쪽이 찌릿찌릿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떠올릴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던 내 몸이 살짝 기울어졌다.
"꺄악, 아델레이드 님 ......!"
반 친구들의 비명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렸다.
(음. 여기는 ......)
내가 의식을 되찾은 곳은 양호실의 침대 위였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내 얼굴을, 리샤르 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제야 깨어난 것 같구나."
"리샤르 님?"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는 나에게, 리샤르 님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갑자기 네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어. 몸은 괜찮아?"
"네, 괜찮아요."
(다행이야. 평소의 리샤르 님이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나는 무심코 눈앞의 리샤르 님을 바라보았다.
리샤르 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얼굴에 뭔가 묻었어?"
"아뇨, 아무것도."
나는 약간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리샤르 님은 이상해 하면서도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아직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구나. 집에 데려다줄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네가 쓰러졌을 때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고 하던데."
확실히 머리는 여전히 아팠다. 부드럽게 만져보니, 관자놀이 윗부분에 큰 혹이 생겼다. 아무래도 이곳에 부딪힌 모양이다.
"아뇨,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어. 몸조심해."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면서도 손을 흔들며 보건실을 나가는 리샤르 님에게, 나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보건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겨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최악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나는 창유리에 희미하게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와 살짝 올라간 진홍색 눈동자. 다시 바라본 그 화려한 얼굴은, 전생에 언니가 즐겁게 플레이하던 여성향 게임의 악역영애 그 자체였다.
(무슨 게임이었더라 ......? 누군가가 거짓말이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