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2 유제니의 부탁
    2024년 01월 04일 18시 27분 5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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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향해 간절히 호소하는 유제니의 목소리가 응접실에 울려 퍼졌다.



    "저 ...... 저는! 크레이그 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크레이그 님이 그랑벨 후작가를 물려받든 안 물려받든, 저는 크레이그 님과 함께하고 싶어요. 게다가 라이오넬 님에게는 이미 약혼녀인 에디스 님이 계시잖아요. 에디스 님이야말로 그랑벨 후작가와 라이오넬 님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훌륭한 분이세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왜 그런 일을 ......"

    "......넌 참견할 권리가 없다, 유제니. 이건 가문과 가문의 문제다."



     처음으로 말대답을 한 딸에게 놀랐지만, 스펜서 후작은 냉정하게 딸을 무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제니는 아버지에게 매달리면서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께서 오늘 그랑벨 후작가에 선물을 전달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이유 없이 이곳을 방문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불안했어요. 그런데 설마 이런 이야기일 줄은 ......"

    "그만 좀 해라, 유제니!"



     짜증을 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유제니의 뺨에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께서 크레이그 님과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차라리 부모 자식의 인연을 끊어주셔도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크레이그 님과 함께하고 싶어요. 이렇게나 부족한 저를 항상 감싸주며 보호해 주는 크레이그 님과 ......"

    "...... 뭐라고? 키워준 은혜도 잊어버리고 ......"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스펜서 후작은 딸의 말에 겁을 먹은 듯했다. 크레이그는 눈가에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유제니. 너는 그렇게까지 나를 ......"



     크레이그는 유제니가 오랫동안 부모에게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펜서 후작이 내뱉은 말은 유제니를 사랑하는 크레이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유제니의 말이 얼마나 큰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것인지, 유제니가 크레이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 크레이그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유제니 일행의 대화를 지켜보던 그랑벨 후작이 조용히 입을 연다.



    "저는 아들의 행복과 가문의 이익을 저울질한다면, 망설임 없이 아들의 행복을 선택합니다. ...... 유제니 님이 크레이그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는 것은 크레이그에게도 저에게도 기쁜 일이니, 지금 그대로 크레이그의 부인으로서 유제니 님을 기꺼이 맞이합시다. ...... 하지만 그랑벨 후작가의 가문은 라이오넬이 이어받게 됩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부디 이대로 물러나시길."

    "......"



     벌레씹은 표정의 스펜서 후작이, 마찬가지로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부인과 눈을 마주치고서 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굳은 결의를 담은 눈빛으로 결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딸을 보며, 스펜서 후작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이런 딸로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소파에서 일어선 스펜서 후작 부부는 유제니에게 등을 돌리고 그대로 응접실 문을 지나갔다.

     그들은 응접실 밖에서 라이오넬 일행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걸어갔다.



     라이오넬은 응접실에서 들려오는 유제니의 목소리를 듣고 감격에 겨운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 유제니는 크레이그를 이용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로 크레이그를 사랑했구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용히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체도, 눈을 부릅떴지만 표정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에디스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제니 님의 한결같은 마음이 라이오넬 님과 아체 님께도 전해진 것 같아 ......)



     아직은 시간이 좀 더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냉랭한 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에디스의 가슴은 따스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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