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라이오넬 님께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는 것도 크레이그 님께는 편하게 상담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그의 친절함에 빠져서 집안의 사정, 부모님의 나에 대한 기대, 라이오넬 님께 돌아서지 못하는 허전함 등 모든 것을 말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제 마음은 크레이그 님께 기울어졌어요. 어느새 크레이그 님이 제게 베풀어주시는 호의를 눈치챈 것도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그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만약 말한다면 차남과의 약혼이라며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 라이오넬 님이 병에 걸리셨을 때가 바로 그런 시기였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에디스 앞에서 유제니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라이오넬 님을 찾아뵈었을 때, 상상 이상으로 상태가 안 좋아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어요. 생명력을 잃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저는 비겁하게도 생각했지요. 이대로라면 크레이그 님이 그랑벨 후작가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까, 크레이그 님과의 결혼이 성사될지도 모른다고요. 저는 앞뒤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라이오넬 님을 향해 크레이그 님에 대한 제 마음을 필사적으로 토해내고 있었답니다."
에디스는 라이오넬이 병상에 누워있는 그를 보고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은 것은 에디스가 처음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약혼 예정자였던 유제니까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버렸구나 싶어, 에디스는 가슴이 쿡쿡 쑤시는 듯이 아팠다. 유제니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처음으로 라이오넬 님께서 필요로 하는 때, 저는 그를 버리고 내쫓아 버린 거예요. 어두운 얼굴로 입술을 꽉 다문 그를 보며 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어린 시절 친구이자 늘 다정했던 그를 지탱해주지도 않고 잔인하게 내쳐버렸으니까요. 라이오넬 님을 찾아간 직후 만난 크레이그 님은 제게 형을 지탱해 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이미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늦어버린 일이었어요. 결국 크레이그 님이 저를 감싸주셔서 그와 저의 약혼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때도 크레이그 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두 손을 천천히 내려놓은 유제니는 에디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형이 신뢰할 수 있는 약혼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미안하지만 너와 약혼할 수 없다]고요. 그랑벨 후작님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에디스 님, 당신이 라이오넬 님의 약혼자가 되어 주셨군요. 크레이그 님도 그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저를 보호해 주시다니. ...... 저는 그렇게까지 해줄 가치가 없는데........"
"크레이그 님은 정말 자상한 분이시네요. 그리고 유제니 님도, 라이오넬 님도 소중히 여기고 계시고요."
"저한테는 분에 넘치는 분이세요. ...... 라이오넬 님께서 제가 평생 불평을 들어도 뭐라 할 수 없겠지요. 완전히 신뢰를 잃은 것 같으니, 크레이그 님의 상대가 될 자격이 없다며 눈살을 찌푸리고 계실 것 같아요.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한 그에게 손바닥 뒤집는 듯한 태도로 큰 상처를 준 것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답니다."
유제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한 가지, 라이오넬 님께 해드릴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제가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 먼 옛날, 아직 마법이 사용되던 시절에 백마법사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회복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가문이 있었다고 하네요. 도중에 후계자가 사라졌다는 그 가문의 행방을, 지금의 스펜서 후작가에 있는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찾고 있었어요."
유제니가 에디스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과 그녀가 꺼낸 이야기와의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았지만, 에디스는 그저 조용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