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에게서 책을 돌려받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서둘러 젖은 옷을 갈아입고 유리 플라스크에 성수를 옮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참고해 회복 마법을 시전 하자, 성수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음. 좋은 느낌 ...... 엣취."
물을 뿌려서 몸이 차가워진 탓인지 오한이 들고 재채기가 나왔다. 하지만 방금 만든 회복약을 한 숟가락 떠서 한 번 핥아 먹었더니 몸이 완전히 나았다.
"잘 만들어졌어. 회복 마법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야 ......!"
마법의 재능이 뛰어나면 꽤나 편리하다. 악역영애도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회복약 만들기에 몰두했다.
***
"디아 님!"
"어머, 뮬리."
웃으며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뮤리엘 님을 보자, 나는 눈을 가늘게 하였다. 그녀와는 이미 서로 애칭으로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를 감싼 사건 이후 그녀는 완전히 내게 기대는 모습이다. 강아지처럼 순수한 눈망울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녀가 너무 귀엽다. 한 학년 후배인 그녀는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았는데, 겨우 몸이 나아져 학교에 편입했다고 한다. 지금도 공기 좋은 교외에서 살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내가 있는 곳에 그녀는 자주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뒤처진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녀와 금세 친해졌다. 머리가 좋고 노력가인 그녀는 순식간에 뒤처진 학습을 되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멸의 길만 생각하며 학생이지만 청춘의 요소는 전혀 없던 나에게, 마음이 맞는 그녀와 함께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퇴근길에 차를 마시는 소소한 시간들은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뮬리는 정말 귀여운걸......!)
외모가 뛰어나고 예쁜 것은 물론이고, 성격까지 순수하고 착한 그녀의 모습이 나는 참 좋았다. 게다가 영애답지 않은 이런 나를 따라준다. 디아 님이 언니였으면 좋았다고 그녀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나는 감동에 떨었다. 나도 이런 여동생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세상의 최애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토록 아름다운 그녀가 왜 전생의 게임에 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엑스트라 치고는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필립 님과 약혼을 하지 않았거나, 히로인인 플로라 님의 성격이 저런 식이 되어버린 것처럼, 분명 게임과 다른 버그가 여러 가지로 발생했을 거라며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나라는 악역이 빠진 대신 플로라 님이 악역으로 전락하고 새로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 뮬리가 아닐까, 나는 꽤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필립 님은 혼담이 끊이지 않았을 텐데, 왜 아직 누구와도 약혼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여주인공을 위해 게임 보정이 걸려서 공석이 된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했다. 가능하다면 그가 뮬리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이런 착한 아이는 흔치 않다. 마침 최근 그에게서 새 계절을 맞아 인사하는 편지가 왔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친구가 된 뮬리를 칭찬하는 편지를 보내주었다. 조금이라도 두 사람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날도 그녀와 함께 학교 식당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창밖에서 필립 님이 뮬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