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23년 12월 31일 02시 14분 4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당신, 처신 잘하라고!"
귀에 들려오는 호통소리에,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애써 상관하지 않으려 했던 영애ㅡㅡ플로라 두카스 백작영애였다.
방과 후의 왕립학교 뒤뜰에서 들려온 그녀의 말은, 내가 아니라 어떤 작은 영애를 향한 것이었다. 플로라 님은 주변 몇몇 아가씨들과 함께 작은 체구의 그녀를 위협하는 것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를 향해, 플로라 님은 그 아름다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전입해 오자마자 필립 님께 그렇게 끈적끈적한 태도를 취하다니, 당신, 무슨 속셈이야!?"
"전, 그런 의도가 아니라......"
작은 영애의 가냘픈 목소리가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힌다.
"맞아. 필립 님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플로라 님뿐이야."
"너 따위는 백년은 일러."
나는 원 안에서 떨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며,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이래서야, 나보다 플로라 님이 훨씬 더 악역이구나)
그들이 말하는 필립 님은 필립 로링겐 님을 가리킨다. 왕가의 먼 친척인 공작가의 적자이며, 문무겸비, 초미남, 그리고 이 학교의 학생회장까지 맡고 있는, 흠잡을 데 없는 반짝반짝한 청년이다.
이 세계가 [너는 나만의 것]이라는 뻔한 이름을 가진 여성향 게임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어렸을 때 필립 님을 처음 만나고 나서였다.
흑발흑안이라는 이 세상에서서 보기 드문, 전생에 살았던 나라를 연상시키는 그의 색조합을 보자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필립 님은 게임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공략 대상이다. 그리고 나, 디아드리 콘라트는 필립 님의 약혼녀로서 히로인인 플로라 님과의 사이를 방해하는 악역영애다. 후작가의 장녀인 나는 플로라 님을 이리저리 모함하다가, 결국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이 또한 뻔한 악당이었을 터였다.
밀려오는 전생의 기억과 자신이 악역영애로 환생했다는 충격에, 필립 님을 보는 순간 거품을 물고 쓰러진 나를 보고 그도, 부모님도 당황했다. 그날은 결국 나의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필립 님은 돌아갔으며, 이후에도 그를 만나지 않으려 애쓴 보람이 있어서 그와 나의 약혼 이야기는 무사히 무산되었다.
이 게임에서 전생의 내 최애는 확실히 필립 님이었다. 하지만 내가 악역영애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히로인이 나타날 때까지 그의 약혼녀 자리를 즐기는 방법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해서 진심이 되어버리면 몰락의 직행코스다. 필립 님과 함께 있으면 그 매력에 빠져서 자기도 모르게 빠져버릴 것 같은 위험성을 나는 첫 만남에서 느꼈다. 그래서 그의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철저하게 피하고 있다.
게다가 악역영애로 전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최대한 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선천적으로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지냈다. 학교에서도 노메이크업에 안경, 단발머리라는 극도로 수수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
나는 평소의 플로라 님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녀의 무서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멋대로 악역영애 자리를 내려놓은 탓인지, 아무래도 이 세상에는 버그가 생긴 모양이다. 필립 님 앞에서는 벌레 한 마리도 안 죽일 것 같은 숙녀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플로라 님이 이토록 흉측한 모습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승승장구하는 듯한 얼굴로 작은 영애를 몰아붙이는 플로라 님을 보며, 내 속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사람이 여주인공이어도 괜찮은 걸까?)728x90'연애(판타지) > 여주인공이 음험했기 때문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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