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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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31일 02시 16분 1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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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공략 대상인 학생들을 능수능란하게 차례대로 함락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이렇게 필립 님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영향력 있는 고위 귀족의 아들들과 친해진 그녀는, 학원 내에서 눈에 띄게 된 것을 계기로 적당한 영애들을 측근으로 포섭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예전에 필립 님을 만나 거품을 물고 쓰러진 후, 그는 몇 번이나 내 상태를 걱정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문병은 정중히 거절했지만,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나도 편지에 대답하면서 한동안 편지 교류가 이어졌다. 예의 바른 그는, 학원 내에서도 그를 피하는 나를 향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대로 편지를 보내온다. 소박하지만 그의 따뜻한 인품을 엿볼 수 있는 편지가 오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 자신은 파멸 루트를 피하기 위해서 그와 절대로 친해지고 싶지 않지만, 그런 완벽한 전생의 최애가 플로라 님에게 함락되는 것을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도 왠지 언짢았다. 플로라 님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나는 정말 싫어했으니까.



     어느새 나는 성큼성큼 그녀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플로라 님이 양동이를 든 측근 영애에게 턱짓으로 지시한다.



    "필립 님께 가까이 다가간 벌이야."



     세차게 뿌려진 물은 작은 영애에게 부어지기 전에 그녀 앞에 끼어든 나에게 쏟아졌다. 온몸이 흠뻑 젖은 나를 보고, 물을 뿌린 아가씨도 물을 뿌린 플로라 님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아무리 눈에 띄지 않게 지낸다고 해도, 나는 이 왕국에서도 상당한 권력을 가진 콘라트 후작가의 장녀다. 나를 해하면 어떤 비난을 받게 될지, 그녀들의 가벼운 머리로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잠깐, 뭐 하는 거야?"



     생각보다 무서운 목소리가 나왔다. 물에 젖은 안경을 벗은 내가 금빛 눈동자를 부릅뜬 채로 노려보는 바람에, 그녀들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내가 쳐다보는 눈빛이 꽤나 강렬하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천천히 뒤로 물러선 플로라 님이 빠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럴 생각이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



     고개를 숙인 뒤 뿔뿔이 흩어지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만 먹으면 집까지 찾아가서 정식으로 사과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그 여자들에게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일로 원한을 사서 파멸 루트라도 열리면 곤란하다. 지금은 내가 당한 쪽이니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봤다.



     멀리서 보면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 있던 것은 정말 미모의 소녀였다. 플로라 님이 못을 박아두려고 한 것도 이해가 갈 정도로, 동성의 눈으로 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부드러운 밤색 머리에 작은 동물처럼 작은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가녀린 소녀가 촉촉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깊이 숙이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괜찮아?"

    "네, 감싸 주신 덕분이에요. ......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젖어서."



     당황하며 손수건을 내미는 그녀에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저기, 이름을 여쭤봐도 ......?"



     볼을 살짝 물들인, 왠지 모르게 덧없어 보이는 그녀의 귀여움에 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5학년인 디애드리. 잘 부탁해."

    "저는 오늘 4학년으로 편입한 뮤리엘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녀에게 빌린 손수건으로 손만 닦고, 나는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에 힘을 잔뜩 주면서 눈을 반짝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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