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
    2023년 12월 30일 19시 23분 0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나탈리에게는 사랑하는 약혼남이 있다. 그의 이름은 베네딕트. 후작가의 넷째 아들로 성적이 우수하고 조용하고 사려 깊으며 독서를 좋아하는 청년이다.

     기본적으로 감정의 기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베네딕트였지만, 방학이 끝난 어느 날 아침 나탈리가 왕립학교의 교문에서 그를 만났을 때,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은 아침, 나탈리"

    "좋은 아침이에요, 베네딕트 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나탈리는 포커페이스를 거의 잃지 않는 그가 드물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래. 어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마을에 다녀왔는데, 꽤 재미있었어."

    "...... 무엇이 재미있었나요?"

    "조금 특이한 소녀를 만났거든."



     나탈리의 얼굴이 찌푸려지고 초록색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녀는 그에게 이야기를 이어가라고 재촉했다.



    "그래서요?"

    "마을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어느 카페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어. 그런데 점원 소녀가 알아차리고 도와줬어. 덕분에 소매치기는 무사히 잡혔고, 나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지."

    "다행이네요. ...... 그 소녀는 어떤 분이었나요?"

    "이 나라에서 보기 드문 흑발흑안에, 안경을 쓰고 있었어. 나는 결국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할 기회도 놓쳤지만, 웃는 얼굴이 밝은 사람이었지."



     베네딕토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나탈리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분명 어제 있었던 일을 단순히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약혼녀에게 다른 여자아이를 즐겁게 이야기하다니, 내심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사소한 일에 흔들릴 정도로 나탈리는 베네딕트에게 푹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그는 나탈리에게 물었다.



    "넌 어제 어떻게 지냈어?"

    "저는 뭐, 평소처럼 지냈어요."



     나탈리는 베네딕트에게 외출을 권유받는 일이 많지 않다. 섭섭하게 생각하면서도, 사랑에 빠졌다는 약점 때문에 그걸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약혼하게 된 계기는 나탈리가 왕립학교에서 그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다. 짙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 성실함이 묻어나는 단정한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표정을 지닌 영리한 그는, 마치 나탈리의 이상형을 그림처럼 그려낸 청년이었다. 기회만 있으면 적극적으로 그와 접촉을 시도했던 나탈리는 그를 만날수록 매력을 느꼈다.



     그가 후작 가문 출신인 반면 나탈리의 집안은 신흥 귀족이었다. 이른바 벼락부자다. 재능 있는 상인인 그녀의 아버지가 한 세대에 걸쳐 상회를 크게 성공시켰기 때문에, 그녀의 집안은 매우 부유하다. 그 덕에 그녀의 아버지는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 돈으로 작위를 샀다는 식으로 음해하는 귀족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결과를 낸 자의 승리다. 두 자매 중 장녀인 나탈리가 베네딕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데 더해, 그의 집안인 후작가의 재력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데다 그가 넷째 아들이었던 탓에 백작가의 사위가 되는 것을 전제로 두 사람의 약혼이 성사된 것이다.



     하지만 나탈리의 눈에 비친 그와 자신 사이에는 왠지 모를 온도차가 있는 것 같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그녀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평소에는 읽지 않던 어려운 책도 그와 대화를 맞추기 위해 읽었고, 가문의 격이 높은 그에 걸맞게 되도록, 관대한 부모님 밑에서 소홀히 했었던 예절도 열심히 배웠다. 왕립학교에서의 나탈리는 이제 숙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달라졌다.

    728x90

    '연애(판타지) > 당신이 원하던 그분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0) 2023.12.30
    4  (0) 2023.12.30
    3  (0) 2023.12.30
    2  (0) 2023.12.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