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에피소드3 첫사랑의 당신
    2023년 12월 24일 22시 02분 5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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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어떻게 된 일이죠!"



     이클립스 공작가의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안네로제는 집사에게 따졌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로베르토 공작님 말이에요. 당신은 토벌하러 가셨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마을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한결같이 오늘 돌아오셨다고 했어요."

    "그, 그건 ......."



     집사가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안네로제는 집사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좋아요. 그쪽에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이, 이해해 주시는 겁니까?"

    "네. 하지만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샤로, 마차를 준비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자 집사가 황급히 앞지르더니 두 손을 벌려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자, 잠깐만요, 안네로제 님! 여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네, 그렇겠죠. 그러니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항의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것과 혼담은 별개의 문제. 저는 믿을 수 없는 분과 함께 지낼 생각은 없으니까요."

    "...... 그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그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뭐죠?"

    "그것은 ......"



     여기까지 와서도 숨기려 든다.



    (그래서야 믿을 리가 없잖아)



     더 이상 이야기한들 소용없다.

     그렇게 생각한 안네로제가 이번에야말로 작별을 고하려 한다.

     그러기 직전...



    "그럼 오늘 밤만이라도 이 저택에 머물러 주십시오. 이곳은 변경지라서 밤에 가도를 지나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 그거, 위협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나으리께선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정말로 변경은 위험한 곳입니다."



     진지한 눈빛.

     방금 전과 달리, 그 눈빛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샤로에게, 안네로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밤의 발코니.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안네로제의 앞머리를 흔든다. 달빛을 받은 백금빛 은발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얇은 잠옷에 겉옷을 입은 안네로제는, 난간에 기대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내 이능이 목적이어도 상관없어. 그냥 성실한 태도를 보여 준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 되네."



     안네로제는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의 약혼녀였던 그녀는 이미 현실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처지에 알맞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야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



     어디서 들리냐며 시선을 돌리니, 옆방의 발코니 난간 위에 새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 너, 이 공작가의 고양이니?"

    "야옹."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물론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안네로제는 고양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나랑 잠시 이야기 좀 할래?"

    "야옹"



     고양이가 뿅 하고 발코니의 틈새를 뛰어넘어 이쪽 난간 위에 내려앉았다. 고양이는 놀란 안네로제에게 천천히 다가와 난간 위에 올려져 있던 팔에 볼을 비볐다.



    "깜짝이야. 정말 똑똑한 고양이네."

    "야옹~"

    "하지만 나는 개파거든."

    "냐!?"

    "하지만 똑똑한 고양이는 좋아해."

    "야옹~"



     정말 귀엽다며, 안네로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현실을 떠올리고서 금세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안네로제의 속마음을 아는지, 고양이가 안네로제의 팔에 볼을 비빈다.



    "착하구나. 네 주인도 너처럼 다정했으면 좋으련만."

    "...... 야옹."



     고양이가 고개를 떨군다.



    "...... 그래도, 어쩌면 내가 더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고양아, 옛날이야기 좀 들어줄래? 나한테는 첫사랑의 남자아이가 있었어."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네로제는 난간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이야기를 계속한다.

     왕성 안뜰에서 만났던 연상의 남자아이와의 추억. 함께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그 소년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약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남자아이는 금방 잊어버렸어."



     그녀가 쓸쓸히 웃자, 고양이는 가만히 안네로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정말로?"라고 묻는 것 같아서 안네로제는 시선을 돌렸다.



    "...... 잊어버린 줄 알았어. 하지만 라인하르트 님께 파혼 통보를 받고, 어쩌면 그 아이가 나를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고 ...... 생각해서."



     안네로제는 그렇게 기대하고 말았다.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그 소년을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저 마음 한구석에 밀어 넣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 하지만 동화처럼 편리한 전개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그때는 소년도 안네로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혼남이 있는 상대를 십 년 동안 계속 마음에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연상의 남자아이는 이미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어렸을 때부터 약혼남이 정해져 있던 안네로제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어떤 기적이 일어나 왕자와의 약혼이 취소되고, 그 소식을 들은 소년이 자신을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는 덧없는 꿈.



     하지만 그것은 꿈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다.

     왕자로부터 약혼을 파기당했지만, 소년이 자신을 데리러 올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마주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이 결혼식에 임했다.

     소년이 오지 않는 것은, 안네로제가 다음 약혼을 결정했기 때문에. 안네로제를 잊어서가 아니라는, 자신을 속일 수 있는 구실이 필요했다.

     안네로제는 유일한 희망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 이런 기분으로 맞선을 보는 것은 실례겠지. 로베르토 공작님이 나를 만나주지 않은 것도 분명 이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일 거야."

    "야옹"



     고양이가 안네로제를 똑바로 쳐다본다.

     마치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그런 눈빛이 느껴진다.



    "......왜 그러니?"

    "양옹!"



     고양이는 몸을 빙글 돌리더니 옆 발코니로 사라져 버렸다.



    "...... 고양이한테도 차였구나."



     쓸쓸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마음을 털어놓았으니, 오늘의 안네로제는 조금은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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