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9 영애들의 점심시간
    2023년 12월 15일 22시 55분 4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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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올레타는 혼자서 점심시간에 안뜰에서 쉴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귀족학교의 정원은 잘 가꾸어져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우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비올레타는 북적임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나무 그늘, 하얀색 벤치에 앉았다.



    (오늘은 특별한 도시락이구나)



     식당의 왁자지껄한 분위기 안에서 먹는 학식도 좋지만, 오늘은 혼자 조용히 즐기고 싶다.

     비올레타가 무릎 위에 올려놓은 도시락을 열려고 하는 순간--.



    "뭔가요~ 이런 곳에 불러내다니."

    "ㅡㅡ당신한테 한 가지 말해둘 것이 있어요."



     도발적인 목소리와 위협적인 목소리. 둘 다 여학생의 목소리로 보인다.

     말끝마다 긴장감과 적대감이 담겨 있다.

     비올레타는 나무 그늘에 몰래 숨어 목소리 내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제1왕자의 약혼녀인 공작영애 아이리제와, 남작영애 레이첼이 있었다.



     아이리제는 기품과 우아함이 넘치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단정한 얼굴에 침착함과 고결함이 깃들어 있다.



     레이첼은 한 마디로 말해 천진난만한 여자였다. 얼굴이 귀여우며, 항상 활기차고 눈에 띄는 타입이다.

     그 밝음은 비올레타가 보기에도 매우 매력적이어서, 레이첼은 입학 직후부터 여러 남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ㅡㅡ특히, 가문이 좋고 장차 작위를 물려받을 것이 거의 정해져 있으며, 얼굴이 반반하고, 똑똑한 남학생들과.



     그래서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약간 붕 떠 있으며, 카멜리아 선생님에게도 자주 주의를 받는다.



     그런 레이첼과, 완벽한 영애인 아이리제가 험악한 분위기로 대치하고 있다.

     보통 때와는 다른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마치 전장 같은.



    "레이첼 씨의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자는 자세는 좋아요. 하지만 약혼녀가 있는 남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접촉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요."

    "일부러 불러내서는 그런 얘기인가요? 그리고, 필요 이상의 접촉이란 ......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장시간 이야기하거나, 만지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는 거요."



     아이리제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약간 짜증이 묻어났다.

     상당히 화가 났다.



    "뭐~? 그 정도로?"



     레이첼의 말에는 분명한 도발적인 태도가 느껴졌다.



    (이것은 ...... 수라장!)



     ㅡㅡ평화주의자 비올레타로서는, 가능한 한 분쟁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정도라니요? 당신의 행동 때문에 상처받은 여학생들이 있어요. 남자들도 불편해하고 있고요."

    "불편? 후후, 왕자님께서는 웃으며 용서해 주셨는데요~"



     ㅡㅡ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두 분! 우연이네요!"



     비올레타가 큰 소리를 내며 나무 그늘에서 나오자, 손을 치켜들던 아이리제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어, 어머, 비올레타 씨 ......무슨 일이세요?"



     아이리제가 어색하게 팔을 내린다.



    "아, 아뇨, 저는 그냥 도시락을 먹을 곳을 찾다가 두 분의 모습이 보여서요. 그래서 말을 걸게 되었답니다."



     ㅡㅡ침묵이 흐른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레이첼의 코가 킁킁거리며 움직였다.



    "이 냄새는, 밥......?"



     설레는 눈빛이, 비올레타의 도시락으로 향한다.



    "저기, 혹시 밥이 들어있어요?"

    "어머. 밥을 아세요?"



     비올레타는 놀라며 물었다.

     밥의 존재를 알고 있다니.

     게다가 존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알고 있다니. 레이첼도 먹어본 적이 있는 걸까.



     비올레타는 서둘러 도시락을 열었다. 밥의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풍겨온다.



     도시락 안에는 모양이 예쁜 주먹밥ㅡㅡ밥을 소금에 절인 주먹밥과, 알록달록한 반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레이첼은 그것을 보자마자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괜찮으시다면 하나 드세요."



     레이첼은 떨리는 손으로 도시락에서 주먹밥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주먹밥을 입에 넣더니 천천히 먹었다.



     ㅡㅡ레이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쌀...... 진짜 쌀이야......"



     그 모습은 보통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사랑을 찾은 듯한 감동과 설렘에 휩싸여 있었다.



    "...... 비올레타 씨, 그 곡물은 대체 ......?"



     중독성이 강한 약물이라도 섞어 놓은 것일까ㅡㅡ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리제가 비올레타를 바라본다.



    "보통의, 평범한 쌀이에요. 저희 가문의 영지에서 시험적으로 재배하고 있답니다."

    "쌀 ...... 그렇게 대단한 걸까요."



     아이리제가 감탄하는 사이, 레이첼이 주먹밥을 다 먹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비올레타를 바라본다.



    "ㅡㅡ비올레타 씨 ...... 아니, 비올레타 님"

    "네?"

    "밥을 저한테 나눠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레이첼의 얼굴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굉장히 필사적이고, 절박한 느낌이었다.



     ㅡㅡ닮았다.

     환생자임을 떠올리자, 쌀이 먹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던 시절의 자신과.

     그 심정을 뼈아플 정도로 알 것 같다.



    "어, 음, 그럼 ...... 저와 친구가 되어 주시겠어요?"

    "될래! 될래 될래! 비올레타 님!

    "친구니까 비오라고 불러주세요"

    "네, 비오!"



     아주 활기찬 대답이 울려 퍼진다.



    "쌀은 제가 직접 재배한 것이라서 양은 많지 않지만 ...... 조금은 나눠드릴 수 있어요. 레이첼 씨 댁으로 보내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ㅡㅡ"



     비올레타는 아이리제를 바라본다.



    "아이리제 님도 저의 소중한 친구예요. 아이리제 님과도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물론이죠!"



     또다시 활기찬 대답이 울려 퍼진다.

     이제 아이리제나 다른 여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이름만 아는 정도인데, 아이리제 님을 친구라고 말해버렸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 아이리제 쪽을 바라보니.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올레타 씨는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ㅡㅡ화내지 않았다.

     정말 부드러운 언행과 넓은 마음씨, 그리고 정말 근사한 미소라고, 비올레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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