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번외편2 3 아버지의 진실은
    2023년 12월 06일 21시 50분 0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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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예감이라는 것은 으레 들어맞는 법이다.



     아버지 사이러스가 예전처럼 집에 머물게 된 그날로부터 보름 후, 소피아는 집의 복도에서 사촌 언니 사샤를 보았다.



     오랜만에 본 사샤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였다.

     머리도 푸석푸석하며, 뒤에서 하나로 묶어 놓았다. 눈밑에 다크서클을 만든 채로, 시녀도 없이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 모습에 놀란 소피아는 말을 걸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왜냐면ㅡㅡ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 왜 저렇게 엉망진창이야? 혹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계속 누워 있었어?)



     소피아는 문득 사샤가 부모님을 잃은 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사샤는 애초에 어린이 방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실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소피아의 생활권에 없는 사람인 것이다.



     ㅡㅡ사촌인데도?

     ㅡㅡ같은 집에 사는 사람인데도?

     ㅡㅡ부모님을 막 떠나보낸 사샤 언니. 그런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데도 ......?



     소피아는 머릿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경종을 억눌렀다.



     눈치채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소피아에게 아주 불리한 일이다.

     

     그래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망가진 그녀에게, 소피아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러나 도망칠 수도 없어서 복도 뒤에서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사샤는 거실에 있는 아버지 사이러스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작지만 분노에 찬 목소리로 "삼촌"이라고 중얼거렸다.



     소피아는 마치 자신이 비난을 받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사샤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샤와 아버지 사이러스의 말다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이러스 삼촌, 뭐 하고 있어? 영내에는 일이 엄청 쌓여 있는데......."

    "응? 해고당했으니까 자기 시간을 즐기고 있는 거야."

    "해고!?"



     아버지 사이러스에 따르면, 그는 일을 너무 많이 실수해서 어느 부서에서든 쫓겨났다고 한다.



     소피아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일이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겼다고 했는데.



    (할 수 있는, 사람 ......)



     ㅡㅡ그 '할 수 있는 사람'에, 혹시 아버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



    "이, 이런 상황인데! 자작 대리가, 그런 ......"

    "나도 면목이 없다. 하지만 뭐,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지. 네 자산 관리만은 해줄 테니 안심하거라."



     실실 웃는 사이러스를, 사샤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소피아도 복도 안쪽에서 굳어 있었다.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자작 대행이 '해고'를 당했는데, 그렇게 웃어도 되는 걸까.



     존경하는 아버지의 행동에, 소피아는 처음으로 의심을 품었다.

     애초에 아버지는 평소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소피아는 부모님이 낮에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연하게, 영주 가문이니 영지 경영이나 당주 부부를 도와주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해고'를 당했다고 했다.



     소피아의 생각은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그대로 검은 늪에 빠져들었다.



     왜냐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피아는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일 뿐이고, 이제 막 유아기를 벗어난, 아직은 작고 어린 소녀다.



     하지만 살베니아 가문의 혈통은 소피아가 모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샤가 말하는 것이, 아버지가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시야가 흔들리며, 눈앞에 놓인 두 가지 선택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나. 나쁜 사람인 아버지를, 퇴치한다.

     소피아의 안의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어른인데, 일을 안 하고 방탕하게 지내면 안 된다.

     설령 그것이 소피아의 아버지라 할지라도. 설령 그것이 일하기를 거부한 아버지 사이러스의 수입을 빼앗고, 소피아의 삶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둘. 나쁜 사람인 아버지를 못 본 체한다.

     소피아의 안에서 소피아를 지키려는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정의를 지킨 들 누가 칭찬을 해준다는 것일까.

     일을 땡땡이치고 있는 아버지 사이러스. 소피아가 그것을 지적하고 아버지와 싸우는 것으로 끝나면 그걸로 된다. 하지만 소피아가 사샤의 편을 들어 소란을 피운 탓에 아버지가 돈을 못 받게 된다면? 그러면 가족은 어떻게 될까?

     자신을 지킨다. 소피아 자신의 삶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편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쑥쑥 자라고, 많은 것을 배우고, 정의감이 넘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소피아의 근간을 뒤흔드는 선택이었다.



     어쩌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발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몸이 뒤로 물러난다.



     그녀에게서 눈을 돌리듯.



     불편한 것들로부터 멀어지듯이.







     이제는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닫힌 문에 등을 대고 서 있자니 왠지 모르게 추운 느낌이 들어서, 소피아는 자기 몸을 안는 것처럼 팔을 쓸었다.



    (나는, 나쁘지 않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나는)



     마음속으로 외친 그 말은, 그러나 소피아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지 못했다.

     무언가 더럽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소피아는 그저 계속 자신의 팔을 문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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