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었다.
설령 거기에 무엇이 적혀 있더라도, 자신의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오한을 방치하는 것이 그때는 훨씬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아니면 기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쓰인 내용이 전혀 쓸데없는 것, 코웃음 칠 수 있는 허무맹랑한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며.
...... 그리고 안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비정상적인 존재가 쓴 노트는, 설령 탈락된 것이라도 일반인이 견딜 수 있는 내용일 리가 없다는 것을.
"......! ......!"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로 달려가 뱃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욱! 우욱......!"
그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분노의 감정이었다.
설령 상상이었을지언정 자신의 가족을 모욕하고 능욕한 남자의 노트에 증오를 쏟아부었다.
"으아아악 ......!"
감정에 맡긴 채, 안리는 노트를 찢어 버렸다.
그것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 중 하나일 거라는 것은 이미 알 바 아니었다.
지우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이 노트를 지우고 싶었다.
"하아...... 하아......"
더 이상 내용을 해독할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난 종이 더미 속에서, 안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후, 빗자루로 종이 조각을 쓸어 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노트는 이제 없다.
하지만, 한 번 뇌리에 박힌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 아아......"
안리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정말 끔찍하다.
저런, 저런 괴물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다니 .......
게다가 그 내용조차도 '흥이 안 오르니 탈락'라니.........
그보다 더 과격한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었다는 건가, 그 괴물은.
"으, 으으으......!"
안리는 침대 위에서 울었다.
굴욕이었다.
그동안 많은 남자들이 자신을 악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때마다 불쾌감을 느꼈지만 ...... 이토록 억울한 것은 처음이었다.
웃기지 마.
뭐가 '개처럼 길러주겠다'야.
뭐가 '너무 반항적이면 이 안건을 재검토하겠다'는 거야.
용서할 수 없다.
여자를 뭐라 생각하는 거야.
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알고 말았다.
내가 비정상적인 남자의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다.
이 기억을 지우고 싶다.
아아, 더럽고 더럽고 더럽다.
정말 견딜 수 없다.
"도와줘, 세이이치 군 ......"
어느새, 안리는 사랑하는 소년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더러워진 것도 깨끗하게 치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렇다.
세이이치로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 노트에 적혀있던 끔찍한 놀이들도, 모두 그 비정상적인 남자가 아닌 세이이치로 바꾸어 버리면 된다.
더러운 것은 자신의 손으로 정화한다.
늘 그래왔듯이, 상상의 더러움도 사랑하는 소년을 통해 정화해 버리면 된다.
돌발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안리에게는, 그것이 최적의 충격 요법이었다.
"앗.......세이이치, 군........."
안리는 상상한다.
세이이치가 자신의 목에 개목걸이를 걸고 심야의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을.
물론, 마음씨 좋은 그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 아니,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하아, 세이이치 군...... 세이이치 군이 상대라면, 나...... 분명 어떤 일이든...... 아♡"
문득, 안리의 몸에 이변이 일어났다.
세이이치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러나와, 풍만하게 발육된 사지에 달콤한 통증을 일으킨다.
"뭐야, 이거♡ ......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