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확인할 필요도 없다.
세이이치는 정말 반듯하고 마음씨 좋은 소년이다.
눈앞에 있는 녀석들처럼 비열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은 여전히 거짓 연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시 .......
"이봐, 그런 볼품없는 남자와는 헤어져. 나랑 사귀는 게 분명 이득이고, 매일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
그 집요한 남자는, 하필이면 세이이치를 비하했다.
안리에게 격렬한 분노가 싹튼다.
(웃기지 마! 당신이 세이이치 군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세이이치 군은 ...... 세이이치 군은 당신들 같은 남자들과는 달라!)
나도 모르게 손을 댈 뻔했다.
그 순간, 안리 앞에 낯익은 뒷모습이 나타났다.
"내 여자에게 손대지 마. 꺼져."
"세이이치, 군?"
평소의 부드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세이이치는 남자와 대치했다.
"비겁한 녀석. 내가 없는 사이에 치근덕대다니. 여자를 빼앗을 생각이라면 먼저 상대 남자에게 정정당당하게 도전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기개도 없는 약한 녀석한테 안리를 넘길 수는 없어."
"아 ......"
듬직한 팔에 껴안겨진다.
세이이치의 가슴속에서, 안리는 볼을 붉게 물들였다.
올려다본 세이이치의 얼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사내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안리를 빼앗길 뻔했기 때문이 아니다.
마치 안리를 물건으로만 여기는 남자의 태도에 분노한 것이다.
세이이치의 무서움에 겁을 먹은 남자는 '히익'하고 한심한 소리를 내며 도망쳐 버렸다.
"...... 미안해. 좀 더 빨리 돌아올 걸 그랬어."
"아, 아니요 ......"
남자가 떠나자, 세이이치는 평소처럼 부드러운 태도로 돌아갔다.
"갑자기 안아줘서 미안. 싫었지? 이 정도는 해야 돌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
그렇게 말하며 세이이치가 팔을 풀려는 것을 안리는 "잠깐만요"라며 말렸다.
"조금만 더, 이대로 ......"
"아, 안리?"
안리는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세이이치의 심장 박동이 들린다.
아주 빠르게 두근거리고 있다.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안아주는 것을.
왠지 그것이, 정말 기쁘다.
"미안해요. 이제 와서 무서워져서 ....... 이렇게 하면, 안심할 수 있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
"...... 알았어. 안리가 괜찮다면."
그렇게 세이이치는 다시 한번 안리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음 ......"
안리는 무심코 가슴에 뺨을 문질렀다.
정말 따스하다.
몰랐다. 남자의 가슴속이 이렇게나 마음이 편안할 줄은.
...... 아니,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것과 같은 따뜻함을, 어딘가에서.
그래.
아버지다.
옛날에도 이런 식으로 아버지에게 안겨본 적이 있다.
희미해져 가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안리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안심이 되었던 장소.
그처럼 느껴지는 장소가 지금 눈앞에 ......
"세이이치 군. 머리 좀 쓰다듬어 줄래요?"
"뭐? 머리를?
"그렇게 하면 좀 더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괜찮겠어?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지게 되는데 ......"
머리카락은 여자의 생명.
쉽게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세이이치는 당연히 조심하고 있다.
그런 세이이치이기에 만져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세이이치 군이라면, 괜찮아요 ......"
"그래? 그럼 ......"
부드럽게 머리에 손을 얹는 세이이치.
깨진 물건을 만지듯 천천히,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안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다.
잊고 있던 감정이,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여기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은, 여기에 있었다.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거라며 포기했던 따스함이, 지금 이렇게 안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준다.
"...... 안리의 머리카락은 참 예뻐."
머리를 쓰다듬으며, 세이이치는 작게 말했다.
안리의 가슴에 강한 불길이 타오른다.
아아, 어째서........
왜, 당신은 그렇게 원하는 말을 연달아 .......
안리는 점점 더 깊이 세이치에게 매달린다.
"고마워요. 자랑이었어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이 은발이. 예전에는 할머니 같다며 놀림을 받았지만 ......"
"정말 못된 놈들이네. 이렇게 예쁜데. 마치 눈처럼 반짝반짝 빛나잖아. 정말 찰랑거리고, 윤기 있어서 ...... 난 정말 좋아해."
"네...... 저도...... 저도, 좋아해요."
생각해 보면, 이 시점에서 이미 자신의 마음은 정해졌음이 틀림없다.
마음씨 착한 세이이치.
그는 결국 우리 가족의 위기마저도, 목숨을 걸고 구해준 것이다.
안리는 확신했다.
나는 이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며.
그래서 .......
이제 가짜 연인 관계는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자신은 세이이치의 친절함에 기댈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가짜 관계를 진짜로 만들고 싶다면 .......
세이이치가 정직하게 자신과 마주한 것처럼, 이제는 자신도 정직하게 그와 마주해야 한다.
안리는 그렇게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