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도 정말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번쯤은 부녀다운 교류를 했어야 하지 않었을까, 안리는 계부의 장례식장에서 생각했다.
어쨌든 또다시 의지할 수 있는 남자가 사라졌다.
역시 자신이 빨리 자립해서 어머니를 부양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안리는 공부에 더욱 매진했고, 인근의 인문학교에 합격했다.
아직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고향으로의 유학도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장래에는 어머니처럼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자신이 가족을 지켜야겠다고 안리는 결심했다.
...... 그것은 이 방에서 하루라도 빨리 가족과 함께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계부의 아들.
계속 숨어 지내면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분 나쁜 존재.
그런 정체불명의 남자가 사는 집에 어떻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유학을 생각한 것은, 가급적이면 가족 모두가 해외로 갈 수 없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리에게는 예감이 들었다.
오랜 세월 남자의 추잡한 욕망의 눈빛을 받아온 안리이기에 생기는 위기감 같은 것이.
저 방에는 나쁜 자가 살고 있다.
틀림없이 우리 가족의 평온을 깨뜨리는 이물질이라고, 안리는 직감하고 있었다.
가급적 나가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자기들이 나가고 싶다.
하지만 슬프게도, 호적상 자신들은 이미 '가족'으로 되어 있다.
한 번 맺은 관계는 쉽사리 백지화할 수 없다. 정말 가증스러운 일이다.
계부에 대한 유일한 불만.
그것은 저 기분 나쁜 존재를 쫓아내지 않고 은근슬쩍 숨겨두었다는 것이다.
항상 경계는 하고 있었다.
호신용 도구는 침대 옆에 몰래 숨겨놓았고, 어머니에게 강권하여 각 방에 자물쇠를 채우게 하여 방을 비운 사이 침입할 수 없도록 했다.
여동생들에게도 저 방에 접근하지 말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자물쇠는 문따기로 열 수 있다는 것을.
힘없는 막내가 가장 먼저 노려질 것을.
하지만 그 최악의 상황도 .......
"그녀들한테 손대지 마!"
옆집에 사는 같은 학년인 ...... 나카다 세이이치가 구해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언가 말을 걸고 관심을 가져주는 동갑내기 소년.
아무리 냉정하게 대해도 친절하게 대해주는 착한 소년.
남자를 피하기 위해 애인인 척을 해주며, 여러 번이나 헌팅을 막아주었던 듬직한 소년.
부저가 울려서 정신이 나간 남자가 식칼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안리는 가장 먼저 옆방에 사는 소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자신에게 안리 자신도 놀랐다.
언제부터 이렇게 이성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게 된 것일까.
하지만 실제로 안리의 발걸음은 세이이치에게 향하고 있었다.
부저 소리를 들은 그는 가장 먼저 방으로 달려왔다.
칼을 든 상대에게도 겁먹지 않고, 팔을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전의를 잃지 않고 폭도로 변한 남자를 단련된 무술로 침묵시킨 세이이치.
그 모습을 보자, 안리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만약 그가 호신용으로 삼녀인 히나미에게 방범용 부저를 건네주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달려와주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옆집에 살지 않았다면.
분명 우리 가족은 상상할 수 없는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세이이치가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
"...... 세이이치, 군"
항상 남자를 싫어했다.
자신을 성적인 눈으로만 바라보는 남자가 싫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 세이이치만은 달랐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성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 아버지가 딸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비롭고, 자상하고,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깊은 연민의 마음이 가득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것이 신기해하지 않고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밴 독설만 쏟아냈다.
그런데도 세이이치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자신과 가족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
그렇게나,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피투성이가 된 세이이치의 팔을 울면서 치료하며, 안리는 무심코 물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안도시켜 주기 위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정말, 그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행동한 것이다.
그런 세이이치의 꾸밈없고 올곧은 선의를 느끼고, 안리는 더욱 울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 저, 저는, 당신한테, 나쁜 짓만 했는데......"
안리는 세이이치에게 계속 사과했다.
이런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한 것에 대한 사과.
그리고 .......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막 대한 것에 대해서.
소년과의 지금까지의 관계를 떠올리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마구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