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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에도, 세이이치는 우리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충격으로 우울해하던 어머니와 여동생들도, 세이이치 덕분에 완전히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는 세이이치가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리에게 그의 존재감은 나날이 커져갔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와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그 끔찍한 사건은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 그 남자가 살던 방을 정리하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나 혼자 할 테니 괜찮다니까. 왜냐면, 그 ...... 기분 나쁘잖아?"
"그래서 저희 손으로 이곳을 깨끗이 치우고 싶어요. 하루라도 빨리 잊을 수 있도록."
그렇다, 끔찍하다면 끔찍하다고 생각할수록 정화해야만 한다.
결벽증세가 있는 안리는, 눈에 보이는 더러운 것은 자신의 손으로 닦아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세이이치의 배려는 반가웠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들 분담해서 방 안의 물건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 이물질이 살았던 흔적을 완전히 지워야 한다.
가족과 그와의 행복한 삶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
그 성격이 재앙이 되었다고 해야 할지, 결과적으로 안리는 찾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책장 뒤편에 숨기듯 끼워져 있던 한 권의 노트.
표지에는 커다란 가위표와 함께 '탈락'이라고 적혀 있었다.
설마 ......하여 안리는 얼른 가족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겼다.
보여주면 안 된다. 분명 이것은 .......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그 남자가 쓴 것 같은 노트였다.
가택수색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이런 것을 발견되다니, 경찰도 정말 대충 일한다. 눈에 띄는 곳만 조사한 걸까.
아무튼 사건과 관련이 있는 물품이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할 것이다.
그 남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이 집에서 없애야만 한다.
'......'
'탈락'이라고 적힌 노트.
비정상적인 남자의 심리 따위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 한 권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 것은 자신의 계획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었다는 것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 어느 쪽이든 문제는 끔찍한 내용이 적혀 있을 노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가족에게 들키지 않으며 몰래 치워버리고 싶다.
이 노트 때문에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다시금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겨우 잊어 가는데.
세이이치에게 상담해야 할까.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문제에 그를 끌어들이는 것도 참을 수 없다.
역시 이건 내가 혼자서 몰래 처리해야겠다.
내일이라도 경찰에 가서 전달하자.
안리는 그렇게 결심하여, 끔찍한 메모를 가방에 넣고 그날은 침대에 누워버렸다.
"......"
고요한 어둠 속.
책상 위에 놓인 노트가 기괴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저기에는 도대체 무엇이 적혀 있는 것일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 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자, 계속 생각의 한구석에 머물러 있었다.
상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풀어 오른다.
끝없이, 마치 세균처럼 번식하는 공상에 짓눌릴 것만 같다.
보지 마, 안리.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안리의 몸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위 조명을 켜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잠을 자야지. 그리고 내일 이걸 경찰에 가져가는 거야. 그러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그래도 손은 노트의 페이지를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