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23년 10월 28일 19시 57분 4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리제, 너와의 약혼을 파기한다!"
그 목소리가 학교 홀에 울려 퍼지자,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학교의 졸업 파티장에는 졸업생들을 비롯한 젊은 귀족들이 모여 있다. 그 안에서 원래부터 주목받던 제1왕자인 내가 선언하자, 공작가의 영애인 리제가 조용히 되물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은 조급해하거나 화를 내면 될 것을.
혀를 차고 싶은 것을 참으며, 눈앞의 여자를 노려본다.
우선 외모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작고 너무 가냘프고 빈약한 몸매, 눈이 작고 밋밋한 얼굴. 왕자비로서의 화려함도 없어서, 미남으로 소문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참아왔지만 이런 평범한 여자를 에스코트해야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저 태도다.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허약한 몸이면서 나를 향해 몇 번이고 잔소리를 해댄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칭찬 한 마디 하지 않을뿐더러, 내 앞에서는 항상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웃지도 않는다.
전혀 귀엽지 않다.
항상 웃으며 내 주변에 모여드는 꽃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녀들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고,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항상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그런 아름다워지려는 노력도 없이 내 옆에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바보 같은.
"넌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 그 이유가 필요한가? 그런 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래도 여기서 네 단점을 들춰내지는 않겠다. 그 정도의 배려는 할 수 있다. 나는 상냥한 남자니까.
여기서 울면서 매달리거나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면 조금은 귀여울 텐데, 여자는 그저 조용히 "알겠습니다."라고만 했다.
진짜 귀엽지 않다.
"나에 대한 그 많은 무례한 행동은 그냥 넘어가겠다. 그 대신, 더 이상 내게 모습을 드러내지 마라."
단호하게 말하자, 처음으로 여자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일의 인수인계가 필요하지는 않나요?"
"네가 하던 건 내 일을 도와주는 것 아니었나? 애초에 내가 하던 일인데 왜 인수인계가 필요하단 말이냐. 그런 식으로 내 관심을 끌려고 하다니 꼴불견이다. 얼른 사라져."
여자가 잠시 숨이 막힌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조금은 묵은 체증이 가셨다. 그리고 여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이 너무 반항적으로 보여서 화가 났다. 파혼의 이유라도 짤막하게 말해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조금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파혼을 했으니, 아버지인 왕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재상의 딸인 리제와의 약혼을 결정한 아버지는, 몇 번이나 청했음에도 파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다. 상쾌한 기분으로, 더 이상 볼 수 없을 여자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틀 후, 오랜만에 집무실을 찾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엄청난 양의 서류였다. 지방 시찰을 하러 간 아버지를 대신해 재상이 가져온 것이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이것은 모두 왕자 전하의 업무입니다. 원래는 부재중인 폐하를 대신해 이곳을 지키는 것도 전하의 일입니다."
"내가 네 딸과의 약혼을 파기했다고 하여 괴롭히려는 거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딸이 전하를 대신해 하였던 '전하를 돕는 일'이었습니다. 딸은 인수인계를 제안했지만, 전하께서 거절하셨다지요."
어쩔 수 없이 서류를 살펴봤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잖아. 이해가 안 돼."
"그럴 리가 없습니다. 확실히 전하의 서명을 받아놓았니까요."
재상이 가리킨 곳에는 분명히 내 사인이 있었다.
설마 리제가 이걸 하고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저 녀석이 한 것은 날 돕는 일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녀석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사인을 받으러 자주 찾아왔었다. "잘 읽어보세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별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리제를 불러."
"딸은 공작령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여기 올 수 없지요."
"내가 부르라고 했는데도 따르지 않는 거냐? 당장 돌아오게 해라."
"외람되지만, 전하. 전하께서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셨지 않았습니까? 혹시라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동한 것입니다. 자신의 말에는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재상은 냉랭한 눈빛으로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표시하고 서류를 추가하고 나갔다. 재상 녀석. 아버지가 돌아오면 부녀 모두에게 불경죄를 적용해주마.
서류 한 장을 집어든다. 역시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것부터 할 수밖에. 쌓여 있는 서류를 보면서 나는 그저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데, 재상이 감시하고 있으니 빠져나갈 수가 없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서류를 바라보고 있자, 드디어 부모님이 시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행이다,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겠다.728x90'연애(판타지) > 되려 당해버린 왕자의 3번째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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