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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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26일 20시 05분 1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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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스가 국왕을 쳐다보자,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 후작가와 왕가는 서로 불가침.

     그래서 여태껏 서로 잘 지내온 것이다. 라스 후작가는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것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왕의 가르침이다. 과거에는 야심을 품은 왕이 무리하게 라스 후작가를 손에 넣으려다 다른 나라로 쫓겨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황금알을 얻기 위함이라 할 수도 있다.



    "왕의 명령으로, 왕세자와 라스 후작영애와의 혼인은 있을 수 없다."



     왕은 엄중히 단언했다. 블레인이 억울함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애초에, 라스 후작가의 후계자는 정해졌는가?"



     이어지는 왕의 말에, 엘리스가 반짝이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장자이며 남자인 해리 오빠가........"



    "엘리스,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여성도 당주의 자격이 있다."



     엘리스의 흥분한 목소리를, 오빠 해리가 냉정하게 가로막었다.



    "어머! 여기선 연공서열상 오빠가 더 어울려요!"



    "우리 라스 후작 가문도, 다른 가문과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그 시작점으로서 여당주는 좋은 아이디어가 되겠지."



     라스 후작가의 남매의 후계자 싸움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되었다. 후작의 지위를 상대에게 재주껏 넘기려는 두 사람의 다툼은 이미 일상다반사였다.

     엘리스의 공적이 왕실에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오빠인 해리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리면서도 재주껏 정보 조작을 해 자신이 눈에 띄지 않도록 꾸미는 면에서는 엘리스보다 더 능숙하다고 할 수 있다.



    "혁신적인 시도도 좋지만, 역시 전통을 중시하는 것도 귀족의 자세..."



    "폐하께서는 그동안 수많은 혁신적 정책을 내놓으셨다. 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는 것이 귀족의 의무......."



    "그냥 나 때처럼 히프레스로 결정하면 좋지 않을까?"



     내던지듯 말하는 라스 후작의 말도 엘리스와 해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후계자로서의 역할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외람되게도, 왕의 앞에서 라스 후작가의 후계자 떠맡기기는 점점 더 격렬해져 갔다.

     

    ◇◇◇



     라스 후작가가 물러난 후.

     의미심장한 눈빛을 받자, 왕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엘리스 양에 대한 일은 포기해라."



    "하지만!!"



     그녀만큼 왕비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신분도 후작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엘리스 양이라면 제 반려로서 합당하고, 나라를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블레인이 열망했던, 같은 시선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에 비하면 왕세자비 후보로 거론되는 영애들은 정말 하찮다.



    "포기해라. 그 가문을 권력의 중심에 세우다니, 그거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반발하는 아들에게, 왕은 훈계하듯 말한다.



    "나도 말이다~ 너 정도의 나이 땐 어떻게든 라스 후작가를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이야~ 그땐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지. 젊었거든."



     왕은 왕관을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던져버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 대에 시작된 제도와 사업들은 대부분 지금의 라스 후작과 그의 형이 학생 시절에 생각한 것들이다. 획기적이라느니, 선진적이라느니, 현명한 왕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듣지만, 모두 라스 가문의 공로다. 위정자로서  그토록 유능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



     왕의 시대에는 지금의 라스 후작과 그의 형이 같은 연배였다. 어떻게든 측근으로 만들려고 왕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이야. 후작도, 그 형도, 긍정을 안 해. 그놈들은 제멋대로라고? 귀족의 몸으로 있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단 말이야. 우리가 주는 지위나 명예, 영토는 저들에게 보상은커녕 족쇄가 되어버렸어. 어쩔 수가 없었지."



     왕의 명령으로 억지로 모셔온들, 라스 후작가는 따르지 않는다. 잘못하면 일가친척은커녕 쓸만한 사람들까지 데리고 국외로 이주해 버릴 것이다. 그런 것도 그 가문의 사람들에겐 손쉬운 일이다.



    "뭐. 지금처럼 부담 없는 학생일 동안 엘리스 양에게 구애하는 것 정도는 허용되지 않을까? 그 아이의 주변에는 꽤 강력한 연적이 많지만, 도전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단, 엘리스 양의 평범한 학교생활이라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되고."



     그리고 왕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왕세자라는 신분이 통하지 않는 이상, 엘리스 양을 함락시킬지의 여부는 너 자신의 매력에 달렸다. 자력으로는 엘리스 양 곁에 있는 연적들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가...... 승산은 없어 보이지만, 열심히 하거라."



     이 신랄한 말을 끝으로, 부자의 회견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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