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흠, 엘리스 양. 이번에 블레인이 신세를 졌구나. 그대들이 없었다면 무사히 돌아오기도 어려웠을 터. 감사를 표하마. 보답으로 원하는 것이 있는가?"
"저는 변이종을 받았으니 특별히는 ....... 아, 그래. 그 변이종의 마석을 분석해 보니 마력치가 상당히 편향되어 있었어요. 아무래도 저 숲 어딘가에 마력 응집체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네요. 마물의 폭주를 유발할 수 있으니 초급 모험가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서둘러 신전에 정화를 의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외람되지만 모험가 길드에는 이미 제 이름으로 주의 환기를 시켰습니다. 신전에도 이미 통보를 했으니, 폐하의 명령만 있으면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든 할이 다른 사람처럼 맑고 수려한 얼굴로 말했다. 그 이마에는 엎드렸을 때 긁혔는지 피가 묻어 있었지만, 그마저도 고귀한 장식처럼 보인다.
엘리스가 치유를 위해 할의 이마를 만졌다. 할의 몸에 엘리스의 마력이 흐르자, 할은 눈을 가늘게 하며 그 손에 이마를 문질렀다.
"너희들, 어전이다. 조금은 자제해."
웃는 얼굴로 바라만 보는 라스 후작을 보다 못해, 엘리스의 오빠 해리가 두 사람을 다그쳤다. 라스 후작가에서는 그가 가장 성실하며 양식 있는 사람이다. 비교적.
"됐네. 그보다도 중요한 소식, 감사하다. 신전에는 즉시 정화에 착수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대의 시종과 시녀가 가지고 있는 검과 지팡이인데, 특별한 마법진을 부여했다는..."
왕의 물음에, 엘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 저도 참. 보고가 늦었네요.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여러 가지 마법진을 개발하고 있어요. 다만, 하나의 마법진을 구축하려면 백 개에 가까운 마석이 필요해요. 다프와 라브의 검과 지팡이도 할이 도와줘서 겨우 만들 수 있었어요. 아직 비용적으로 더 개선할 여지가 있으니, 공개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흠 ....... 하지만 이미 부여에 성공한 검과 지팡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머, 폐하. 왕세자 전하와 장래가 촉망되는 측근을 필사적으로 구해준 귀여운 내 시종과 시녀에게 상을 주기는커녕, 설마 기사의 영혼이라 불리는 검과 마법사의 분신인 지팡이를 빼앗아 갈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한 나라의 왕이 압박이 담긴 눈빛을 보내도, 엘리스는 가볍게 피하며 반대로 지긋이 못을 박는다.
"아니, 하지만 그 효과가 사실이라면, 국보급의......!"
"배가 고프다고 해서 황금알을 낳는 새를 죽이고 드실 셈이신가요?"
엘리스가 미소 지었다. 그 얼음 같은 미소에 왕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기다리면 새가 알을 낳는다는 말이지?"
"물론이에요. 폐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대화에도, 엘리스의 아버지인 라스 후작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어리숙해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다.
"...... 알겠다. 엘리스 양의 말이니, 믿어주마."
더 이상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득이 되지 않는다며 왕은 물러섰다. 엘리스가 다시 영애다운 평온한 미소를 되찾자, 왕은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반면 블레인은 머리를 맞은 듯이 얼어붙어있었다. 늘 왕의 위엄을 뽐내며 타인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후작가의 영애의 충고에 물러선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엿보인 엘리스의 냉랭한 살기가 진심으로 두려웠다. 그 변이종 마수의 살기가 귀엽게 느껴질 정도의 공포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괴한 힘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눈 깜빡임도 아까울 정도로 넋을 잃은 듯이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왕은 분위기를 바꾸듯 헛기침을 했다.
"아~ 그런데 엘리스 양. 이제 블레인에게도 우리 왕실과 라스 후작가의 관계를 알려주고 싶은데, 괜찮은가?"
신중한 왕의 말에, 엘리스가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네. 급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장면을 보고도 말씀드리지 않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 되는걸요."
은연중에 제대로 블레인의 고삐를 잡고 있으라는 말에, 왕은 어색한 헛기침을 반복했다.
"아버지. 라스 후작가와의 관계란 대체...?"
당황한 블레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왕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