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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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25일 22시 50분 2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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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차분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로, 얼굴이 풍만한 남자가 공손하게 신하의 예의를 갖추었다.

     그 옆의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의 젊은 남성 역시 신하의 예를 갖추었다.



    "라스 후작. 그리고 아들인 해리인가. 잘 왔다. 바쁜 와중에 미안하구나."



    "아뇨, 폐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괜찮습니다. 요즘은 성수기가 지나서 한가한 편입니다."



     라스 후작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다소 쓸쓸해진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독도 약도 될 것 같지 않은, 성실함만이 장점인 평범한 남자라는 것이 블레인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라스 후작가의 가장이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후계자 역시 그런 눈으로 보면 한가닥 할 것 같다.



    "이번에  블레인과 측근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대의 가문 사람이 도와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아뇨. 저희 가문 사람이 동행했는데도 전하를 위험에 빠뜨려 죄송합니다."



     라스 후작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해주지만, 라스여. 협정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져 우리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노라."



    "이번 일은 폐하께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겠지요. 딸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습니다."



     '딸'이라는 한 마디에, 블레인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토벌 이후 계속 엘리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의문과 혼란, 그리고 그 엘리스가 보여준 차분하고 신비롭고 귀여운 미소. 여자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은 블레인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엘리스 양은......."



     폐하의 말씀에, 블레인은 다시 한 번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 엘리스의 모습은 알현실에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불참하는 줄 알았는데, 그녀도 부른 모양이다.



    "저나 아들이라면 몰라도 딸은 성에 올만한 이유가 없어서, 대놓고 오기는 어렵다 하더군요. 나중에 전이 마법으로 오겠지요."



    "전이 마법? 하지만 왕성에는 마법을 튕겨내는 결계진이 ......"



     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짝거리는 부드러운 빛이 비쳤고, 그 빛이 사라지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빛이 가라앉자 그곳에는 학교에서 보던 것보다 더 고급스럽고 세련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엘리스와, 평소와 다름없는 집사복 차림의 할이 서 있었다.



    "평안하셨나요, 폐하. 부름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밝은 엘리스와 달리, 할의 기분은 극도로 나빴다. 멋진 미모에 불쾌한 기색이 묻어나는 것만으로도 마왕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에, 엘리스 양? 오랜만이구나......"



     우수한 마술사 몇 명이 동원되어 쳐놓은 결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스와 할은 손쉽게 왕성으로 이동했다. 조금은 마법을 아는 왕이 보기에도, 결계진의 흔들림은 이슬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엘리스 양!"



     어제부터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엘리스를 보고, 블레인은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그 기쁨에 찬 목소리를 듣고 할의 한쪽 눈썹이 치솟았다.



    "오, 일찍 왔구나, 엘리스. 할도 같이 왔군. 항상 수고가 많아."



     느긋한 라스 후작의 말에, 할이 침착하게 반응한다.



    "제가 엘리스 님의 곁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원래는 학교에서도 함께 하고 싶지만, 졸업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 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면 저택에서 엘리스를 돌볼 수 없게 되니까 싫다며 월반을 한 것이 자네였잖나?"



    "큭! 엘리스 님이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성장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럴 거면 입학 시기를 늦춰서 엘리스 님과 함께 학원에 다닐 것을! 그러면 엘리스 님과 함께 등하교할 때 같은 마차를 타고, 엘리스 님을 무릎에 앉혀서 꼭 껴안고 등교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중이떠중이가 접근하는 것을 제거할 수 있었을 텐데!"



    "할, 말투가 기분 나빠."



     눈살을 찌푸린 엘리스의 말에, 할은 한심한 얼굴로 머리를 땅에 대며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그만 욕망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바람에 귀를 더럽혔군요."



    "그리고 등교할 때는 다프와 러브가 함께 있어서 즐거운걸? 우후후, 계속 수다를 떨고 있어."



    "크윽, 멍청한 동생들 주제에......"



     원망 섞인 할의 목소리는, 다행히도 엘리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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