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번외편 리큐어 가문과 동물 2
    2023년 10월 06일 19시 42분 1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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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리카르도의 그 말의 의미는, 그 주말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싫어어어어! 엄마!!"

    "리, 리디아!"



     나와 리카르도, 리디아 세 사람은, 동물을 키우자고 이야기했던 날의 주말, 수도 큐리아의 외곽에 있는 목장을 방문했다.

     이 목장에서는 말과 소, 돼지와 함께 토끼를 키우고 있다고 하여 방문지로 선택했다.



     지금, 리디아는 내 치마폭에 달라붙어 덜덜 떨고 있다.



     이곳은 젖소가 있는 목초지다.

     이 집의 젖소들은 방목형 축사에서 사육되고 있는데, 울타리 안에는 30마리 정도의 젖소들이 평온한 표정으로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러나 리디아가 목초지 이동용 간이 마차에서 내려 "소야!" 라고 외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두둥!' 하는 효과음이 들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모든 소들이 일제히 리디아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것이다.





     그 광경에 리디아는 비명을 질렀고, 나도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나도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소라고는 믿기지 않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모든 소들이 리디아에게 달려들었다.



     리디아의 비명소리가 추가로 터져 나왔다.



    "엄마, 엄마, 엄마아아아!!!!"

    "리디아, 진정하렴, 어어, 소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람?"

    "소 싫어어어!"



     소들은 필사적으로 나에게 매달리는 리디아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다.

     30마리의 소들이, 은빛 딸아이를 한번 보려고 울타리까지 다가오며 모여들고 있다.

     그 시선으로부터 리디아를 숨기려고 내가 리디아를 데리고 간이 마차 뒤로 이동하자, 소들이 불평이라도 하듯 '음머~'라는 큰 소리를 내었다.



     밭과 목초지에 익숙한 나까지도 벌벌 떨고 있자, 리카르도는 말없이 리디아에게 검은색 후드 로브를 씌워주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소들이 해산하는 것이 아닌가!



    "여, 영주님, 이것은 대체......"



     간이 마차의 마부를 하던 목장주의 아들이 당황하고 있자, 축사 너머에서 한 장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껄껄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리카르도 님! 마님, 리디아 님, 어서 오십시오!"

    "조겐, 오랜만이다."



     그는 이번 방문지의 목장주인 조겐이다.

     나이는 오십 전후로 보인다. 허니 블론드의 금발과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 웃는 얼굴에 수염을 기른 소탈한 남자다.



    "2년 만이군요.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관료들한테서 많이 들었습니다요."

    "면목없군."

    "영지 최고의 미남이니,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런데, 방금 일은, 역시 리디아 님입니까요?"

    "그래."



     조겐은 고개를 끄덕이는 리카르도를 바라보다가, 뒤쪽으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목장주 조겐의 아들, 새파래진 얼굴로 당황하는 나, 그리고 덜덜 떨고 있는 검은 두건의 리디아가 있었다.

     조겐은 손뼉을 쳤다.



    "아, 마님도 리디아 님도 모르고 계셨군요. 그리고 너도 몰랐고."

    "아, 아버지. 이것은 도대체........"

    "리카르도 님이 어렸을 때에도 그랬었지."



     목장주가 웃자, 리카르도는 겸연쩍은 듯 보라색 눈동자를 흔들었다.



     조겐이 젊었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왔던 리카르도도 방금 전 리디아가 겪은 것과 같은 일을 겪은 모양이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조겐은 어린 리카르도의 치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리카르도 님,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요."

    "조겐, 제발 좀 봐줘."

    "하하하. 이거 참. 리큐어 가문 모두가 받는 세례라고는 해도, 성녀의 혈통은 큰일이군요."

    "뭐?"



     놀라는 리카르도의 모습을 본 조겐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리카르도 님? 설마, 모르셨던 것은......?"

    "......"



     조겐의 말에 따르면 리큐어 가문의 아이는 평소에도 마력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서, 그 성녀의 힘에 이끌리듯 동물들이 모여든다는 것이었다. 리카르도가 세례를 받은 것은 20여 년 전의 일인데, 당시 성인이었던 조겐은 자신의 가축들이 리카르도를 향해 달려드는 기이한 광경과 함께,  리카르도의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방금 전 리카르도가 리디아에게 입힌 로브는 군대에서 은밀하게 사용하는 소재로 만든 것인데, 마력 방출을 감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리카르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리 있는 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싫어!" 라고 말하는 리디아를 위해 간이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그는 왠지 모르게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리카르도"

    "......"

    "리카르도도 몰랐어?"

    "......"

    "동물들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달려든다고 생각했어?"

    "......"

    "마력을 숨기는 로브로 숨지 않으면, 아이들은 모두 마력을 발산해서 동물에게 쫓겨 다닐 거라고 생각했어?"

    "......"

    "리카르도?"



     나는 무릎에 매달려 떨고 있는 리디아를 쓰다듬으며 그를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보이는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그리고는 제발 좀 봐달라는 듯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한바탕 웃고 나서, 더 이상 놀리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



     이후 돼지우리와 마구간을 둘러보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마구간에서 혼쭐이 난 리디아는 당연히 검은 로브를 입은 채로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녀가 강하게 의식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마력이 새어나가는 모양이다.

     내 치마에 매달려 동물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은 문제가 없지만, 리디아가 동물들과 놀려고 얼굴을 돌리면 흥분한 동물들이 잽싸게 그녀를 에워싸는 것이다.

     결국 리디아는 눈물을 흘리며 간이 마차 안으로 도망쳤다.



     참고로 말은 전속의 기수가 익숙해지면 비교적 잘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목장에는 기수가 없는 어린 말들만 있었기 때문에 소나 돼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토끼다.



    "싫어어어 ...... 귀여워 ......하지만, 안 돼에에에에."



     좋아하는 토끼를 무릎에 앉혀놓고 귀여워한다는 리디아의 이상향은, 그곳에 없었다.



     토끼우리의 안, 은빛 딸아이의 주위에는 토끼들이 가득하다.

     하얀색과 갈색, 회색의 솜털 덩어리가, 마치 만두처럼 리디아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다.



     귀여운 여섯 살짜리 백작영애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가는 귀여운 덩어리들.

     그리고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보고 나와 목장주 아들이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리카르도가 리디아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재빨리 토끼우리를 빠져나갔다.



    "아빠!"

    "리디아. 토끼, 귀여웠지?"

    "............. 응......"



     미묘한 표정을 짓는 리디아를 보며 리카르도가 웃는다.



    "그럼, 마지막으로 보너스 타임이다."

    "?"



     리카르도가 조겐을 바라보자, 조겐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목장에서 기르는 동물들은 다 둘러봤을 텐데.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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