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했습니다. 그럼 이것을."
"수고했네"
집무실에서 제출된 관료의 서류를 확인한 세이퍼트 장군은, 앞에 앉은 체아펠트 백작인 잉고에게도 서류를 건넸다.
"백작한테도 확인의 사인을 부탁해야겠구먼?"
"알겠습니다."
세이퍼트로부터 서류를 받아 내용과 금액을 재빨리 확인한 잉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에 서명을 했다. 그러자 세이퍼트는 그 서명을 확인하고서 대기하고 있던 관리에게 건네주었다.
"빠트림 없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백작도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구먼."
"아뇨, 오히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류상 처리를 하고 있던 것은, 왕도 습격 당시에 리리가 한 일에 대한 보상에 관한 것이었다. 보상금을 듣고 당황한 리리에게 잉고가 제안한 것은, 베르너가 제안한 국채에 전액을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국채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어본 리리는 설명을 듣자마자 전액을 사용하기로 동의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할팅 가문의 담당 책임자인 세이퍼트의 확인을 거쳐 드디어 그 처리가 끝난 참이다. 지금의 리리는 아직 평민이기 때문에, 보상 시점부터 뒤로 밀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리리 양은 아직 귀족으로서의 행동이 어려울 말일세."
"역시 배우는 기간이 너무 짧으니까요. 잘하고 있긴 하지만."
애당초 리리는 왕도의 피해자 등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잉고는 이를 말렸다. 귀족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국가에 대해서도 귀족으로서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부라는 것은 민중으로부터의 평판과 명성은 얻을 수 있지만, 국가에 대한 평가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가를 위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설득한 것이다.
잉고는 그런 귀족적인 배려와 교활함을 릴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직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세이퍼트도 동의하였지만 약간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백작도 마음에 든 모양이로구먼."
다소 쓴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잉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인 잉고의 입장에서 볼 때 왕녀나 고위 귀족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더 멀리 내다본다면 용사의 가족이라는 지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후계자인 베르너에 대한 평가가 높기 때문에 그 자식 세대까지 생각하는 것도 귀족의 사고방식이다. 용사의 조카, 혹은 조카딸이라는 입장도 왕족의 혈연과 마찬가지로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귀족들의 생각을 떠나 리리 개인을 보보아도 기질도 나쁘지 않고 성실하고 노력파이며, 신분이 바뀌어도 남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잉고도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참고로 잉고의 아내인 클라우디아는 본심으로는 귀여워해주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귀족 부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참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소동물을 좋아했었다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잉고였지만, 역시나 입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할팅가의 부모들은 어떤가?"
"큰 의식은 어렵지만, 식전에 참석하게 하는 정도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괜찮겠구먼."
은퇴한 귀족의 전 당주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용사의 가족도 공식석상에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인 매너만 익히면 마왕 토벌 식전에 나오는 것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나이 들어서 재밌는 걸 보았네."
"돈아가 폐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잉고의 반응에 세이퍼트는 작게 웃었다.
"이건 내 경험담이네만, 백작."
"예?"
"전장에서는, 우세하든 열세하든 어느 쪽 군대에서도 한번쯤은 기습의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네."
눈앞의 전례대신 잉고는, 개인적 무예는 그렇다 치더라도 집단 전투는 서툴다. 이를 알고 있는 세이퍼트는 조금 더 자세히 말을 이어간다.
"우세한 쪽은 애초에 기습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때 눈치채지 못하고 나중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지. 반면 불리한 쪽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기습의 기회를 놓치거나 조급한 마음에 잘못된 타이밍에 손을 뻗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예......"
"경의 자식처럼 모처럼 찾아온 기습의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일세. 재상 각하도 베르너 경의 판단력과 결단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
갑작스럽게 작전 계획을 변경하여 콜트레치스 후작령의 제2도시 포안을 공격한 수완에 대해 세이퍼트도 관심을 갖고 있다.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베르너는 명장으로 불릴 만한 소질이 있다는 것이 세이퍼트의 판단이다.
동시에 재상들은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결단력과 처리 능력을 군대에만 맡겨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백작도 당분간은 바쁠 것 같구먼."
"어쩔 수 없지요."
앞으로도 베르너에게는 공무가 기다리고 있고, 리리도 아직 귀족 부인으로서는 미숙한 단계이다. 결과적으로 잉고가 체아펠트 가문의 당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당분간은 미뤄야 할 것이다.
마군과의 전쟁이 끝나면 다시 은거하겠다고 공언하기 시작한 세이퍼트에게 그런 놀림을 당하자, 잉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