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가지 문제는, 그 직후 레페가 리리를 납치한 사건과 그 직후의 왕도 습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 잊고 있었지만, 그때 의심을 품었던 것은 확실하다. 레페가 가져온 책이 너무 화려하게 제본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대 왕국의 멸망, 마왕과의 싸움, 선대 용사의 행방불명, 그 후의 전란 속에서 그렇게 멋진 책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쓰인 지 200년이 지난 책과 400년이 지난 책을 구분할 수 없다. 그건 분명 오래된 책이었지만, 마왕의 시대에서 어느 정도 시대가 지나고 나서 쓰인 책이 아니었을까. 쓰였을 때는 이미 정보 자체가 잘못 전해졌을 수도 있다.
리리가 발견한 책에 따르면 고대 왕국 시대 어느 시기까지는 다신교였는데, 지금은 일신교가 되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예전에 서고를 조사하면서 내가 스스로 생각한 건데, 다신교는 자연에서 태어나고 일신교는 교조에서 태어난다. 이 세계의 일신교의 교조는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르잖아.
소름이 끼쳤다. 신탁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 이 가설이 맞다고 생각하자 묘하게 정보의 조각들이 연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다. 누군가 물어보면 정말 곤란하다.
일신교의 교조는 마왕일 가능성 .......
전생의 기독교가 의학, 천문학 등의 문명 수준을 퇴보시킨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지식의 독점, 사고의 유도 등을 통해 느리지만 확실하게 고대 왕국 시대부터 문명을 퇴보시켜 왔다면?
고대 왕국 시대에 있었을 법한 상하수도 같은 고도의 건축학, 그 지하 서고에 있던 종이와 인쇄 기술 등 이미 몇 가지 지식과 기술이 사라졌다. 수학 지식이나 문서 작성법 등 큰 국가였을 고대 왕국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기술조차도 말이다.
이 세계의 두뇌근육 사고를 포함해, 한 번 인류 연합군에 패배한 마왕은 마법이 곧 신의 기적이라는 거짓 정보의 이면에서 수백 년 단위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인류 전체를 약화시켜 온 것이 아닐까. 종교 자체가 신관들 자신도 모르는 마왕의 위장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리리에게서 들었던 마무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대 용사인 라이제강 일행은 마왕을 봉인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했다. 적의 말이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는 있지만, 그 판단은 정말 옳았던 것일까.
만약 모든 것이, 생각을 유도하는 마왕이 가진 능력으로 귀결된다면? 마왕성까지의 이동, 마지막 미궁 라스단의 미로, 방황하는 마물과 원래 있어야 했을 부활한 3장군과의 싸움, 이 모든 것이 피로로 인한 사고력 저하를 노린 것이라면?
마왕은 이 시대의 용사에게 패배할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마왕이 패배하는 순간, 마왕을 멸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신탁이 내려왔다면 어떨까. 신의 기적이나 신탁의 옳음에 익숙해진 인간은 불만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리고 마왕 본인은 패배해도 다시 봉인되었다는 명분으로 몰래 인류를 무식한 사고형태로 유도해 기술을 잃게 만든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마왕이 이길 때가 반드시 온다.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된다. 일단 말이 되긴 하는데, 아직도 조금 의문이 남는다. 예를 들어, 왜 이 타이밍에 마왕이 부활했는가라던가 .......
"베르너 경, 괜찮으세요?"
"...... 괜찮습니다."
라우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의식을 되찾았다. 생각에 너무 빠져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대답할 수 있는 부분부터 대답해 보자.
"음, 우선 마왕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조용한 마젤에 대해서도 조금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