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231(●)――(2)
    2023년 09월 27일 22시 33분 3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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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데."

     "사실이다"



     무장해제되어 상반신을 벗은 채 무릎을 꿇고 있던 팔리츠 군의 실질적 지휘관인 쿠뉴벨 백작이, 침통한 표정으로 노이라트와 쉰첼 두 사람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 베르너의 질문에 답했다.

     쿠뉴벨 백작은 처음에 수많은 말들이 먹이를 먹으려고 몰려들었을 때의 혼란 속에서 낙마하여 다리뼈가 부러졌다. 싸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포로로 잡히게 된 것을 보면, 백작에게 운이 없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즉, 루디거 제4왕자 공은 신탁에 따라 참전했다?"

     "그렇다."



     일부러 전하가 아닌 공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확인하려는 베르너에게, 백작은 오히려 진지하게 대답했다. 불신감이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베르너를 올려다보며 쿠뉴벨 백작이 입을 열었다.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 콜트레치스에 신탁을 받을 수 있는 무녀전이 있다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겠지?"

     "일단은."



     베르너의 대답은 조심스럽다. 팔켄슈타인 재상과 세이퍼트 장군과 상의한 것처럼, 그 무녀가 마족과 교체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한 것이다.

     한편, 쿠뉴벨 백작의 입장에서는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왕자와 수많은 기사들이 포로로 잡혀 있음과 동시에 '마장 살해자'라는 명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복통이 가짜라는 것도 눈치챘으며고, 이 남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새롭게 느끼고 있다.

     겉모습이나 나이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쿠뉴벨 백작은 입을 열었다.



     "코르틀레지스 후작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자가 전했었다. 콜트레치스에 있는 무녀가 '팔리츠의 왕족이 오면 콜트레치스 측이 반드시 왕국을 이길 수 있다'는 신탁을 받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왕자가 경과 동행한 건가."



     베르너는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콜트레치스 후작과 팔리츠는 전혀 관계가 없지 않냐는 발언은 아슬아슬하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것을 지금 말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발언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은 역시나 멈출 수 없었다.



     "왕자인 자기가 있으면 이길 수 있을 텐데 왜 잡혔냐는 불만이 그 발언을 하게 만들었나."

     "...... 아마도."



     쿠뉴벨 백작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백작조차도 왕자가 스스로 입을 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왕자는 백작이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아로 보였고, 아무래도 눈앞의 백작님은 운이 나빴던 것 같다고 베르너도 그 점만은 조금 동정했다.



     "경의 인식을 말해도 상관없지만, 제4왕자는 팔리츠에서 어떤 입지에 있지?"



     사정을 들어보니 베르너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루디거 제4왕자는 막내아들이자 첩의 자식이다. 그의 어머니는 왕이 미모에 반해 후궁으로 들인 신분이 낮은 여성이라고 한다.

     지금도 어머니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뒤를 받쳐줄 귀족 가문이 없기 때문에 본인들도 왕위를 노리는 무모한 짓을 할 생각은 없고, 어느 집안의 사위가 되어서 그 귀족 가문을 이어받는 것이 목표였다는 설명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대국인 바인 왕국을 이겼다는 실적을 원했던 건가..."

     "폐하께서도 루디거 전하를 총애하고 계십니다."



     전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콜트레치스다. 하지만 대국 바인을 이긴 전투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름이 알려질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왕은 귀여운 막내아들에게 명성을 얻게 하기 위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신탁을 받은 전투에 출전시켰다고 한다.

     총애한다면 일단 몸값은 많이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베르너는 몇 가지 질문을 더 이어갔다. 확인하고 싶은 것을 다 듣고 나서 쿠뉴벨 백작을 포로 집단과 왕자에게서 떨어진 곳에 구금하라는 지시를 내려 물러나게 했다. 그대로 베르너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음......."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아서."



     노이라트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약간 건성으로 나왔다. 발언의 절반은 사실이지만, 절반은 거짓이다. 베르너가 궁금했던 것은 신탁이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레페 대신관도 그렇지만 왜 그렇게까지 신탁을 믿을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신의 기적이어야 할 마법이 사실은 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신과 진심으로 신을 믿는 사람에는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왠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지금 여기서 생각할 일은 아니다. 생각의 어딘가에 가시가 박힌 채로 기분을 전환시킨 베르너는, 각 방면으로 사자를 보내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맥스 일행과의 합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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