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230(●)――(2)
    2023년 09월 27일 21시 34분 5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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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말은 다량의 식물성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 풀만 먹이면 순식간에 살이 빠질 정도다. 팔리츠에 있을 때는 식물성 단백질이 함유된 사료를 먹었던 말들은, 이 땅에 온 뒤로 약간의 보리와 잡초만 먹으며 무거운 기사를 태우고 다녔다. 영양가 측면에서도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 말들에게 오늘 아침에 갓 삶아서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콩은 잔치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바람을 타고 적들이 올 것을 예상한 베르너는 할포크 백작에게 부탁해 달콤한 향이 나는 향수를 소량씩 나눠 받고서, 통에 덮어둔 천에서 달콤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 말에게 먼저 닿아서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준비도 해두었다.

     게다가 삶은 콩 위에 글리세린을 뿌려 적당히 단맛을 내기까지 했다. 많은 동물들이 단 것을 좋아하는데, 말 역시 예외는 아니다. 팔리츠의 말들에게 있어서는 한 입 먹으면 멈출 수 없는 맛이다.



     어떻게든 말을 듣게 하려고 말의 배를 발로 걷어찬 기사가 오히려 말에서 떨어져 콩 위로 굴러떨어진 후, 방해가 된다며 발로 차인다. 말과 말이 먹이를 두고 다투는 과정에서 충돌하고, 아군이어야 할 기사들끼리 갑옷을 맞부딪쳐 무기를 떨어뜨린다. 뒤늦게 도착한 말이 자신도 먹이를 먹기 위해 앞의 말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넘어진 기사의 다리가 짓밟힌다. 간신히 말 위에서 자세를 유지한 기사가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말로 둘러싸여 있어 이동은커녕 땅으로 내려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적도 지형도 아닌 삶은 콩에 발이 묶인 팔리츠군은, 기병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그저 밀집된 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적습...... 크악!"



     팔리츠 기사 중 한 명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송물자로 위장한 미끼 부대의 뒤에서 한발 늦게 도착한 베르너가 이끄는 부대가, 바렛 크로스보우를 들고 아직 서 있는 기사들을 향해 쏘기 시작한 것이다.

     간신히 말들의 밀집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기사들은 무기를 뽑을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금속 구체에 얻어맞아 그 자리에 쓰러져 땅바닥을 뒹굴었다.

     말들은 여전히 먹이를 먹느라 말에 탈 수도 없고, 일부는 무기가 말 떼와 콩밭에 묻혀서 무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팔리츠의 기사는 복통으로 잠이 들었어야 할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원거리에서 얻어맞는 신세가 되었다. 이보다 더한 굴욕은 없을 것이다.



     "우...... 웃기지 마라!"

     "전하!"



     팔리츠 군 중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은 기사가 분노의 목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 들고 달려갔다. 당황한 듯 부하로 보이는 기사 몇 명이 뒤따랐다. 몇 명은 쇠구슬의 직격탄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바인 왕국군의 사격은 점점 그 수를 늘려갔지만 왕국군 쪽으로 돌진하는 기사들에게는 공격이 잘 향하지 않았고, 오직 밀집된 상태의 팔리츠 기사들에게만 사격이 집중되었다.



     남은 세 명 정도의 기사가 적들의 눈앞까지 달려갔을 때, 창을 든 기사의 부름을 받은 한 남자가 바인 왕국군 안에서 검을 뽑아 들고서 팔리츠 기사들 앞에 섰다.

     고급 갑옷을 입고 있던 기사가 그 남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빠르게 아래에서 쳐올린 상대의 검에 반격당하자 오히려 자세가 흐트러진다.



     자세가 흐트러진 그 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좌우에서 또 다른 기사가 앞으로 나왔지만, 그 두 사람에 대해 겟케는 주저 없이 공격을 가했다. 오른쪽의 남자가 휘두른 검을 피하고, 그 팔에 자신의 검을 휘둘러 상대의 손목을 통째로 잘라버렸다. 전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몸을 반 바퀴 돌리며 왼손의 남자에게 날카롭게 검을 꽂았다. 검 끝이 등을 관통하자 검을 뽑은 갑옷 틈새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순식간에 좌우의 두 사람이 쓰러지자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은 기사가 무심코 멈춰 섰다. 그 순간 겟케가 땅에 떨어진 적의 검을 발끝으로 가볍게 튕겨 올려 재빠르게 검을 집어 들더니, 고급진 갑옷을 입은 기사의 투구 위에 검면을 내리쳤다.

     

     "윽......"



     왼손으로만 한 번 치는 것이지만, 검의 위력이 다르다. 검이 크게 휘어짐과 동시에 투구로 얻어맞은 기사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인 왕국군의 대열에서 달려 나온 기사들이 상대방의 무기를 빼앗아 구속했다.

     다가오는 상대 기사에게는 사격을 계속하라고 주변에 지시하고, 저 기사는 신분이 높아 보이니 죽이지 말고 구속해 달라고 겟케에게 부탁했던 베르너가 그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역시 겟케 경, 훌륭하다."

     "이 정도면 문제없어."



     별거 아니라는 태도에, 베르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 명의 기사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라니 베르너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의외로 이 사람은 그 괴물폭주에서도 살아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겟케의 본심은, 저렇게까지 냉정함을 잃은 상대라면 그다지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베르너의 지휘 아래 있으면 대부분 상대가 본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르너 경과 함께 있으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흥미진진하지는 않아."

     "개인적으로 흥미진진한 적과 싸우는 건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해."

     "너, 너희들,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는 거냐!"



     전황을 확인하면서도 크게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한 베르너가 바르케이에게 사격 지휘를 맡기고서 겟케와 대화를 이어가자, 마침 의식을 되찾은 듯한 고급진 갑옷의 기사가 구속된 채로 소리를 질렀다.



     "나, 나는 팔리츠의 제4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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