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8 한담 마이아 시점으로 본 아가씨2021년 01월 10일 19시 15분 0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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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스타 왕국. 백년 전까지는 대륙에서도 중규모의 국가였지만, 당시에 일어난 마족과의 전쟁에 의해 주변의 소국을 병합하여, 현재는 대륙의 강대국이 되었다.
세 마족국가와 수십 년 전쟁의 끝에 인간국가들은 두 마족국가를 정벌하였고, 마지막 남은 마족국가가 남은 마족들을 모아서 격퇴한 형태로 전쟁은 종결되었지만, 영토를 빼앗긴 일을 싫어한 마족들은 점령당한 영토에 마물을 풀어놓는 바람에, 결국 인간 뿐만 아니라 마족조차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마의 영역으로 변해버렸다.
인간국가는 전쟁에는 이겼지만 영토를 빼앗지도 못했고 배상금도 없었기 때문에 쇠퇴하였지만, 그걸 재빨리 한데 모아서 다시 부흥시킨 것이 케니스타 왕국이다.
다른 국가에선 이럴려고 구 케니스타 왕국이 병사와 자금을 내놓았던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지만, 전쟁종결 후로 몇 세대가 지나자 자연스레 잊혀져 갔다.
케니스타 왕국 동쪽에 위치한 변경백령 아르세이데스는 이전엔 독립된 소국이었지만, 마족국가 중 한 곳과 인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토의 절반을 잃고 군의 파견과 지원을 얻기 위해 케니스타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예전에는 아인도 많고 목가적이었던 그 토지는 왕국의 귀족이 들어오는 것으로 꽤 모습이 바뀌어서, 이 땅에 사는 귀족들에게는 이미 인족지상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과거엔 아르세이데스 공국의 왕족이었지만 현재는 선선대에 케니스타의 왕녀와 혼인도 했던 케니스타의 상급귀족인 것이다.
그런 아르세이데스 변경백 가문에 '격제유전' 인 하프엘프의 '금기의 아이' 가 태어났다.
모친은 낳은 순간부터 키우기를 거절했고 귀족 유모조차 정해지지 않았던 이 아이는, 고용된 평민 여성들에게서 젖동냥을 받으며 평민 하인들 손에서 커왔다.
가족 채로 고용되어 다섯 살 무렵부터 이 성에서 잡일을 해왔던 평민 소녀 마이아는 10세가 되자 견습메이드가 되어, 이 금기의 아이ㅡㅡ캐롤을 모시는 메이드가 되었다.
어머니인 메이야는 이전부터 캐롤의 수발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은 마이아는 그 아가씨를 모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케니스타 왕국의 귀족들은 마족의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인족지상주의' 에 박차를 가했지만, 거리의 주민들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구 왕국이 있었던 왕도 부근에선 그다지 찾아볼 수 없지만, 전쟁 시 아인 용병과 모험가가 마물을 많이 사냥해 줬다는 이유로 왕도 이외의 평민들은 아인을 평범하게 받아들여 줬다.
물론 마이아에게도 편견이 없었고, 그 뿐인가 숲의 주민이라고 불리는 엘프는 모험가 이외에는 그리 인간의 마을에 오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하프엘프인 아가씨에게 동경심조차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저, 아가씨를 모시는 게 기대돼요!"
"마이아, 일하는 중엔 어머니라고 부르면 안된다? 그리고 캐롤님은 약간 가엾은 분이란다....."
처음으로 캐롤을 본 마이아는 정말 놀랐다.
분명 엘프족은 모두 용모가 예뻐서 그 피를 이은 하프엘프도 예쁜 이목구비를 한 자들이 많았지만,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피가 들어갔기 때문에 오히려 친근해지기 쉬운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캐롤은 부모 중에 엘프가 없는 '바뀐 아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아가 마을에서 봤던 어느 엘프보다도 에쁘게 보였다.
구름 하나 없는 신월의 밤하늘같이 빛나는 흑발. 비뚤어짐 없이 정돈된 예쁜 이목구비.
어느 토지에서도 순수한 인간은 없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혼혈이 진행된 이 대지에서, 순혈 엘프인 하이엘프와 순혈 인간에게서 태어난 하프엘프라면 이런 미모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세 살인 이 아이는, 웃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차가운 '인형' 인 것 처럼.
마이아는 어머니가 해주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했다.
가족에게도 모친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아이. 모든 귀족들이 꺼려하는 아이.
귀족의 자녀일 뿐이지 상급시녀에게 마구 다루어지고, 명백하게 모멸당해도 소리하나 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인 인형.
오히려 외모가 좋았던 만큼, 마이아에겐 그 모습이 정말 애처롭게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변했다. 아주 약간의 변화였지만, 매일 구멍날 정도로 아가씨를 바라보았던 마이아는 그걸 알 수 있었다.
호박색이라고 생각했던 유리의 눈동자는 황금색으로 빛났고, 메이아와 마이아를 포함한 모든 것을 흥미깊게 바라보았다.
제대로 캐롤을 돌보지도 않았던 상급시녀 이라이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만일 눈치챘다면 그 귀여운 목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이아는 그 심술맞은 이라이아에게 우월감을 느꼈다.
아주 약간......약간의 움직임이지만, 그 몸짓은 번민이 들 정도로 귀여워서, 마이아는 무심코 끌어안고 싶어지는 것을 참는데에 막대한 노력을 들였다.
차가워지고 만 식사여도 맛있다는 캐롤을 기특하게 생각하며, 무심코 눈물을 짓는 것과 동시에, 그 이라리아가 식사를 운반하는 도중에 다른 상급시녀와 수다라도 떨지 않았다면, 하고 거머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방 청소 때는 어머니인 메이야가 아가씨를 욕조에 들이고 그 사이에 마이아가 청소를 했는데, 어머니가 대역을 바꿔 줘서 함께 산보하러 나갔을 때는 무심코 들떠버려서 깡총깡총 뛰어버렸습니다.
캐롤의 그 홍차같은 손은 보통의 세살배기보다도 작게 느껴졌지만, 포동포동하고 매끈매끈해서, 흘끗 마이아를 올려다보며 꾸욱 손을 쥐는 자그마한 손의 온도에 마이아는 괴성을 지르고 싶은 걸 참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가씨는 의외로 호기심이 왕성해서, 꽃과 식물의 이름 등을 알고 싶어했다.
역시 엘프족이라서 초목을 좋아하는 것일까. 단어 수는 많지 않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기뻐지는 바람에, 온실에 흥미를 가진 모양이지만 그곳을 안내할 수 없었던 것이 가슴 아팠다.
그 온실은 대대로 이 성의 부인이 미용과 건강을 위해 약초와 허브를 키우는 곳이었지만 왕도의 귀족이 들어왔을 때부터 점점 부인은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의 부인이 시집오고 나서는 성의 부인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고 온실을 관리하는 정원사 할아버지가 말해줬다.
설령 쓰지 않게 되었어도 손질을 안 할 수도 없었고, 그럼에도 일반 하인은 들어가는 것이 주저되는 그 장소에 눈독을 들인 것은, 이 성이 후계자인 틸크였다.
마이아는 틸크가 껄끄러웠다. 마이아보다 두 살 연하인 8살이지만, 몸이 크고 힘이 강하며, 나이가 비슷한 마이아에게도 자주 장난을 쳤다.
때마침 온실이라는 놀이터를 손에 넣은 틸크는, 맛과 향이 강한 허브 등을 하인의 식사와 침대에 넣는 장난을 자주 치고 있었다.
온실에 독성이 강한 약초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상급하인과 비교해서 질이 떨어지는 평민들의 식사에 그런 짓을 하는 건 마이아로서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분했다.
틸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캐롤을 욕하고, 평민인 마이아를 비웃었다. 평민의 대부분은 무속성의 생활마술 밖에 쓰지 못했지만, 속성을 가진 귀족이 보기엔 마술을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틸크는 그걸 더러운 피의 탓이라고 매도했다.
마이아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외모는 인간이었지만 약간은 수인의 피가 섞여있다. 그 탓에 마력이 얼마 없는 마이아를 더러운 피라고 욕하는 티르크를 보고 마이아는 입술을 깨물며 견딜 수 밖에 없었지만, 그 틸크가 갑자기 떨어진 돌멩이에 발을 헛디뎠다.
마이아는 캐롤이 몰래 조약돌을 버리는 걸 보고 놀랐다.
이 자그마한 아이가 '주인' 으로서 자신을 지켜줬다고 이해하고, 마이아는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그 자그마한 손에 이끌리면서 울고 있던 마이아는, 캐롤이 어떤 입장이 되어도 마지막까지 모시고 무슨 일이 생겨도 믿자고 마음 속으로 맹세했다.
하지만 그 시련은 바로 찾아왔다. 그 안주인님과 심술궂은 이라이아가 식사에 심한 장난을 쳐버린 것이다.
엘프족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죽은 피를 더럽다고 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만일 고기를 내놓는다 해도, 베이컨과 햄처럼 가공된 걸 소량. 혹은 장시간 쪄서 떫은 맛과 지방을 조심스레 제거한 것만 내놓을 수 있다.
아무리 캐롤이 엘프보다 덜한 하프엘프라 해도, 피가 차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거기에 불만을 말해버리면 마이아의 가족은 이 성에서 내쫓긴다고 들었다.
마이아도 어머니인 마이야도, 그렇게 된다 해도 멈추고 싶었지만, 요리사인 아버지가 "그렇게 되면 누가 캐롤 아가씨를 지키겠느냐" 라고 설득해서, 슬펐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이아의 아가씨는 어리지만 보통이 아니었다.
동화에서도 나오듯이, 이 나라에선 여러 마력속성을 가진 자는, 정령에게 사랑받는다고 일컬어진다.
특히 정령은 '순진무구' 한 마음을 지닌 소녀를 마음에 들어해서, 그 마음에 든 자에게 위해가 가해지면 가호를 주어서 반격조차 한다고 한다.
무리하게 고기를 먹게 되었던 아가씨의 옆에 뭔가 '검은 것' 이 나타나자, 포효를 하며 이라리아의 머리카락을 찢었다.
이라리아는 '저주' 라고 외치며 도망가 버렸지만, 마이아는 그걸 '어둠의 정령' 의 가호라고 확신하고, 아연실색한 어머니의 뒤에서 작게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어둠의 정령은 드물기도 하고, 인상 때문에 귀족들은 꺼려하고 있지만, 평민이 보기엔 모든 정령은 동등하게 경배할 만한 존재로, 어둠의 정령은 밤의 안식을 주는 중요한 정령이다.
엘프 종족은 정령과 사이가 좋았고, 캐롤에게서 느껴지는 어렴풋이 졸린 듯한 분위기는 분명 어둠의 정령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귀엽고 훌륭하고 정말 사랑스러운 캐롤 아가씨가 귀족들이 못살게 굴고 싫어하다니 세계의 손실이다.
마이아는 견습메이드가 된 기념으로 산 일기장에 아가씨의 대단함과 귀여움을 글로 썼고, 내일부터 모두에게 이야기해 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가씨의 꿈을 꾸기 위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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