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부 빙글 돌아서, 어머 큰일이네 2
    2023년 09월 21일 20시 18분 3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그들은 나를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무시하면서, 제국의 귀족 여성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고 은근히 무시하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괴롭힘 같네, 귀여워).



     하지만 그녀들보다 정신연령이 높으며, 현세에서 대부분의 삶을 학대받았고 전생에 여러 가지 수난을 겪은 나로서는 귀엽기만 했다.



     나는 미소 짓고서, 가장 적대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던 영애의 손을 꽉 잡았다.



    "아뇨,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있었네요. 죄송해요."

    "네? 그, 그런가요 ......"

    "그래서, 찻잎에 대한 이야기였죠? 여러분은 정말 잘 알고 계시네요. 전 황후께서 좋아하셨던──......"

    "네?"

    "그리고 마수정에 관해서는 아리아네 상회가ㅡㅡ"



     유행은 20년 단위로 반복된다고 해서 그런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잘 아는 것도 많았다.



     그렇게 내가 전혀 무지하지 않다고 전하자, 그녀들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잘, 잘 알고 계시네요......"

    "아니요, 아직 부족해요. 그러니 앞으로도 많이 알려주세요."



     딱히 적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고, 얕보임 당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웃어 보이자, 그녀들은 조금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티아나? 무슨 일이시죠?"

    "...... 어머, 폐하. 말씀은 다 끝나셨나요?"

    "예."



     이윽고 펠릭스가 오자, 그녀들은 거북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뿔뿔이 흩어졌다.



    "이런 자리에 익숙하시군요."

    "아니요, 여러분들이 친절하셔서 그래요."



     기억을 되찾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무도회는 최악의 분위기가 되었을 것이다.



    "티아나 님, 안녕하신가요."

    "루피노!"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새하얀 정장을 입은 루피노의 모습이 있었다.



    (우, 우와아...... 이쪽도 너무 아름다워......)



     펠릭스의 아름다움도 뛰어나지만, 루피노는 신들린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주변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내 곁으로 다가와 내 귀에 입을 가까이했다.



    "──전의 조사 말입니다만, 그 마물에 관한 문헌은 모두 불태워졌다고 합니다."

    "네?"



     놀라서 고개를 드는 나에게, 루피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짓을......)



    "또 뭔가 알게 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별일 아니었습니다. 그럼 나중에."



     살짝 미소를 짓던 루피노는, 역시나 신분상 바쁘다는 듯이 금방 자리를 떠났다.



    (왠지 묘한 일들만 일어나네...... 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펠릭스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루피노 님과 사이가 좋으시군요."

    "네, 아주 잘해주세요."

    "그럼 갈까요?"



     갑자기 손을 잡혀서, 걸어가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 급한 용무가 있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 펠릭스의 손, 그렇게나 작았는데)



     내 손을 꼭 감싸는 그 손은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부드럽고 작았던 손은, 어느덧 큼직한 남자의 손이 되어 있었다.



     따뜻하여,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폐하와 성녀님은 정말 사이가 좋으시네요. 정말 뜨겁고 부러울 따름이에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 손에, 따뜻한 시선이 쏟아진다. 얼마나 더 친밀감을 어필해야 펠릭스의 마음이 풀릴까?



    (이제 손에 땀도 나니...... 슬슬......)



     이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슬며시 손을 떼려고 한다. 하지만 잠시 떨어지려던 손바닥이 다시 단단히 잡혔다.



    (어, 왜?)



     놀라움에 심장이 크게 뛴다.



     놀라서 옆에 서 있는 펠릭스를 올려다봤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눈앞의 귀족 남자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뭐, 뭐야,...... 연기라 해도 정도가 있잖아)



     불안해져서 빨리 이 모임이 끝나기를 바라며 웃고 있자, 앞쪽에서 한 쌍의 남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어머, 반가운 얼굴이네?)



     두 사람은 펠릭스에게 인사를 한 후,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녀님. 저는 롭 슈리스라고 합니다."

    "네. 후작님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오, 저를 알고 계셨군요. 대단하십니다."



     그는 전생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제국에서 슈리스 후작 가문은 꽤나 힘 있는 가문이다. 인사나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다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을 수 없었어)



    "이쪽은 제 딸인 자라입니다."

    "성녀님, 처음 뵙겠습니다."



     후작의 소개를 받고, 예쁘게 무릎을 굽힌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숨이 멎었다.



    (어머, 엄청난 미인. 얼굴이 주먹만 한 것 같아)



     모든 부분이 잘 정돈되어 있으며, 작은 얼굴 안에 올바르게 정렬되어 있다. 정교한 인형 같은 그녀의 느슨하게 물결치는 밤색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네, 안녕하세요. 티아나 에버렛입니다."

    "설마 성녀님이 이렇게 아름다우실 줄은 몰랐습니다. 폐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도 납득이 가는군요."



     그렇게 말하며 웃은 후작은, 펠릭스에게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덕분에 겨우 손이 떨어져서 안도하며 멀리 이동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 자라 님이 이름을 불렀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대화하시겠나요?"

    "그야 물론이죠."



     미녀는 목소리까지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급사가 가져온 샴페인 잔을 받아 들었다.



     가볍게 건배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그녀의 이름을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펠릭스 님의 과거의 약혼녀 후보요? 예전에 슈리스 후작가의 자라 님과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듯한......]



    (맞아, 펠릭스의 약혼녀 후보!)



     가문과 외모는 물론이고, 조금만 이야기해도 교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다.



     약혼자 후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제 주변에서도, 모두 성녀님이 제국에 오셔서 안심이 된다고 기뻐하고 있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자라 님은 약간 처진 자수정 같은 눈동자를 부드럽게 가늘게 뜨고 있어서, 마치 요정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성이라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야. 펠릭스는 그녀에게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자라 님은 계속 말했다.



    "하지만 전 알고 있어요."

    "뭐를요?"



     그녀는 빙그레 웃더니, 내 귀에 입을 가까이했다.



    "...... 티아나 님이 '텅 빈 성녀'라는 것을."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