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부 사랑스러운 옛 모습을 쫓아서 4
    2023년 09월 21일 01시 29분 3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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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펠릭스의 침실 소파에서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내 동요가 가라앉기를, 그리고 펠릭스가 평온한 마음을 갖기를 기도하며 끓인 오렌지플라워의 차가 둘 놓여 있다.



    "............"

    "............"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야? 오히려 무서워)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펠릭스는 침묵을 지켰다. 불안해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멋대로 행동해서 정말 죄송해요. 아시겠지만, 저는 마력이 별로 없어요."

    "네."

    "그런 와중에 그런 상황을 되어서 치유 마법을 썼지만, 금방 마력이 떨어져서...... 절망하면서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했거든요."



     여기까지는 모두 사실다. 거짓말을 잘하는 비결은 진실을 섞는 것이라고 하니, 사실도 제대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생각난 것이 바로 그 로드였어요. 쌓여있다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나서요."

    "왜 막대에 마력이 들어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었습니까? 저조차도 몰랐습니다만......."

    "그건...... 실비아 님께 여쭤봤어요."

    "── 실비아에게?"



     물론 거짓말이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다른 성녀와 대화하는 것을 들었어요. 대성녀님들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마력을 쌓아두고 있다고요."



    (펠릭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지만...... 이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걸)



     엘세는 생전에 실비아와 정말 친하게 지냈다.



     같은 성녀의 입장이었으니, 펠릭스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왕국과 제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두 사람은 지금은 절대 접점이 없을 거야. 들키지 않아)



    "제가 그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여부는 도박이었지만요."



     여기까지 오기까지 생각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는 왜 파론 왕국에 간 걸까? 15년 전에는 이미 그곳에 있었다는데).



     그녀에게 있어 모국인 제국에게 저렇게 대하는 것도 사실 이상했다.



     성격이 썩어버린 실비아의 심정 따위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 그렇군요. 애초에 성녀의 로드라는 것은 본인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 그건 ...... 대성녀님의 것이니, 역시 특별했던 것 아닐까요?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궁색한 변명이었지만, 다른 이유나 증거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펠릭스는 분명히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른 화제를 던져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뭐지요?"

    "만약 또 다친 사람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마력량의 한계가 있지만, 조금은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의 나라도 자연치유보다는 확실히 낫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자, 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훗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 대신에, 뭐든지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십시오."

    "네, 꼭 그렇게 할게요."



     어찌저찌해도, 이 나라에서의 내 비중은 있으나 마나 한 느낌이다. 비상시를 위해 주저하지 말자.



    "...... 죄, 죄송하지만, 체력적으로 좀 힘들어서 이제 방으로 돌아가서 자려고요."

    "예. 그럼 푹 쉬세요."



     사실 이야기 도중부터 시야가 흔들려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뛰어다녔던 데다, 치유 마법을 그렇게나 많이 썼으니 당연한 일이다.



     15 년 이상을 지나며 연약해진 몸이 건강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 윽."

    "티아나? 괜찮으신가요?"



     일어섬과 동시에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한 나를, 펠릭스가 바로 잡아준다.



     그리고 그대로 그가 가볍게 안아 들었다.



    "열이 심하군요. 일단 방으로 옮기겠습니다."

    "...... 죄송해요."

    "아뇨."



     계속 어지러운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열까지 날 줄은 몰랐다. 황제인 펠릭스에게 안겨서 미안하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조용히 몸을 맡기고서 눈을 감는다.



    "곧 의사를 부를 테니까요."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좀 더 운동해야겠다며 반성했다.



    (그래, 맞아. 이것만은 펠릭스에게 건네줘야 해)



     내 방의 침대에 눕혀진 후,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보석을 내밀었다.



    "이 보석을 저에게?"

    "네. 분명 대성녀님도, 당신이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이것만은 나 자신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봉에 달린 붉은 보석을 받아 든 펠릭스는, 애절한 눈빛으로 손바닥의 안을 바라보았다.



    "...... 감사합니다.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다행이야. 아, 정말로 이제 한계다......)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펠릭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





     의사를 불렀더니, 티아나가 너무 무리한 것 같다고 했다. 놀라울 정도로 야위어 있어서 오랫동안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시녀들에게 맡기고 집무실로 돌아갔다. 항상 시야에 들어왔던 로드가 사라지자, 마치 다른 공간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걸로 다행이다)



     다 부서진 그녀의 막대를 계속 장식해 두다니, 뭔가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래도.



     ㅡㅡ어떻게든 그녀와 관련된 것들을 주변에 두지 않으면,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서 두려웠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잔인해서, 아무리 잊고 싶어도 조금씩 나에게서 엘세를 빼앗아 간다.



    (...... 예쁘군)



     방금 전 티아나가 건네준, 로드에 달려있었던 보석을 꺼내어 바라본다. 그 눈부시게 선명한 붉은색은 엘세의 아름다운 빨간 머리를 연상케 한다.



    "티아나 에버렛인가."



     그녀는 도대체 무엇일까. 왕국의 사람이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 나라의 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에 '저주'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나라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피노 님의 말씀과 방금 전의 모습을 보면, 정말로 이 나라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 무엇보다 티아나와 함께 있으면, 이상해져)



     그녀는 언젠가 내가 타인과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어설 것 같아서,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티아나가 기절하기 전, 의식이 흐릿한 상태에서 중얼거렸던 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그건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몸의 열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것 같다. 그녀와는 약속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알면서도, 그 후 한동안은 묘한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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