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부 무능한『텅 빈 성녀』2
    2023년 09월 19일 22시 58분 5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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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3일이 지났다. 혹시라도 도망칠까 봐 방 밖에는 항상 감시자가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이 날이 왔네 ...... 아무리 부탁해도 때리기만 할 뿐,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불안과 슬픔에 짓눌릴 것 같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는다.



     그렇게 청소를 끝내고 방에서 혼자 대기하고 있자, 곧 노크 소리가 들렸다.



    "티아나 님, 준비됐습니다."

    "...... 네."



     15년을 지낸 작은 방에,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서 모든 소지품이 담긴 작은 가방과 낡은 로드를 들고 방을 나와 대문으로 향했다.



     원래 나는 자작가에서 태어났고, 부모님도 살아계신다.



     다만 내가 무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수치스러운 존재'라고 부르며 집에 돌아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신전 밖으로 나가도 아무도 배웅하러 오지 않아서, 제국의 사신으로 보이는 남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의 짐이 너무 적은 것에 대해서도 몹시 놀라워했다.



    (아마 내가 정말 성녀가 맞는지 불안해하는 것 같아)



     원래라면 무엇보다도 귀한 성녀가 이런 대접을 받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출발해도 될까요?"

    "네. 부탁해요."



     처음 타보는 호화로운 마차의 안락함에 놀란 나는, 눈앞에 앉은 여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에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녀는 마리엘 씨라고 하며 나의 시녀인 것 같다.



     매우 예의 바르고 상냥한 분위기의 마리엘 씨는, 그 아름다운 몸가짐에서 귀족 출신임을 알 수 있다.



    (나, 나한테 귀족의 시녀라니 ...... 이런 대접을 받고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들키면......)



     밖에는 호위 기사도 열 명 이상 있었는데, 나 따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듣자 현기증이 났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만 해도 무섭고 속이 울렁거린다. 배를 움켜쥐며 고개 숙인 나에게, 마리엘 씨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티아나 님, 괜찮으세요?"

    "아, 네...... 생각에 잠겨서...... 죄송합니다......"

    "부디 사과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저한테 존댓말 같은 것을 쓸 필요는 없어요."



     고개를 들어 평소 습관처럼 무심코 사과하자, 마리엘 씨는 곤란한 듯이 미소 지었다. 역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까울 정도로 친절하고 훌륭한 사람인 것 같다.



    "혼자서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시겠지요. 티아나 님께서 조금이라도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무엇이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 고맙, 습니다."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하는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그 후로 마리엘 씨는 제국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차로 이틀에 걸쳐 크리코프 왕국으로 향하고, 거기서 게이트를 통해 트로신 왕국으로 이동한 후, 다시 마차로 리비스 제국으로 향하기 때문에 총 4일 정도 소요될 것 같아요."



     게이트라는 전이 마법진을 사용하면 이동 시간이 상당히 짧아진다고 한다. 책에서 읽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처음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미 처음 보는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와아......!"



     한눈에 펼쳐진 아름다운 꽃밭과 건물에 눈길을 빼앗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성녀로서 각지를 돌아다니며 일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성전 밖으로 나간 일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신선하고 반짝거리게 보여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 리비스 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즐겨도 될까?)



     제국에 도착하면. 더 이상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거나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곧장 파론 왕국으로 되돌려 보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을 당할 것이 뻔하다.



    "티아나 님은 자연을 좋아하시네요."

    "...... 네, 그럼요."



     며칠만 더 있으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나는 흘러가는 풍경을 필사적으로 눈에 담았다.





     ◇◇◇





     출국한 지 이틀이 지났다. 기본적으로 하루 종일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지만, 마리엘과 기사들은 내 몸을 배려하며 자주 휴식을 취해주고 있다.



     도중에 머무는 숙소도 정말 멋진 곳이라서, 식사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맛있다.



     신전에서의 나는 잔반 같은 것들만 먹었는데.



    "티아나 님, 이 과일을 드세요. 이 지역의 특산품이라고 하네요."

    "고, 고맙습니다. 와, 맛있어......! 정말, 정말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아직 더 있어요."



     쉬는 시간마다 마차에서 내려서, 마리엘 씨와 함께 여러 가지를 구경하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사실은,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면 안 되는데, 너무 즐거워)



     지금은 잘 대해주는 마리엘 씨도, 내가 거의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경멸할 것이다. 착한 모두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워진다.



     다시 마차에 올라타서 숲 속을 달린다. 머지않아 게이트가 있는 크리코프 왕국에 도착할 즈음, 마리엘 씨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손을 뺨에 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티아나 님은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분은 처음 봤답니다."

    "네? 제, 제가 어떻게......"



     너무 과한 칭찬이라고 생각하며 부정했지만, 마리엘 씨는 "아니요"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후후, 티아나 님이 황후가 되면, 제국의 백성들은 모두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요"

    "...... 황후?"

    "네. 티아나 님은 황제 폐하의 신부로서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었잖아요?"



     믿을 수 없는 말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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