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3부 09 미안해
    2023년 09월 19일 20시 47분 3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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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을 빠져나온 라일리우게 자작은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참석자들을 모두 세뇌시켜 자기 뜻대로 할 예정이었다.

     대중의 앞에서 나로우 왕자를 시켜서 단죄하고, 클로이 매드니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그녀를 노예로 삼아, 부려먹으려고 했다.





    (그랬는데! 젠장! 그 계집이! ㅡㅡ하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





     다리가 엉켜 넘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르는 것처럼 복도를 달리고 계단을 뛰어내려 간다.

     돌로 된 지하로 내려가서는, 그저, 똑바로 달린다.

     그리고 지하실의 맨 끝 문을 열더니, 자작은 어깨로 숨을 몰아쉬며 카펫을 들췄다.



     카펫 아래에서 나온 것은 커다란 미닫이 문.

     자작은 팔에 힘을 주어 미닫이문을 열었다.



     '끼이이' 소리를 내며 미닫이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는 옆에 있던 마도 램프에 불을 켜고,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는 돌로 만들어진 넓은 공간인데,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이 여러 개 나 있다.

     중앙에는 검은 천이 걸려 있는 사람 키만 한 길쭉한 무언가가 놓여 있다.



     자작이 달려가 떨리는 손으로 천의 일부를 걷었다.





    "그 녀석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마!"





     그리고 레버 같은 것을 조작하려고 손을 뻗다가, 겁에 질린 듯 몸을 움찔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마도 랜턴을 들고 있는 클로이와 그녀를 겨드랑이에 낀 오스카의 모습이 있었다.



     클로이가 오스카의 품에서 내려와서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자작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드디어 찾았어요. 그렇군요, 이런 곳에 있었네요."







      *







     ㅡㅡ십여 분 전.



     라일리우게 자작이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클로이와 오스카는 행동에 나섰다.

     복도로 나가서 감시하던 기사들에게 "저쪽으로 갔습니다."는 말을 들으며 서둘러 길을 떠났다.



     도중에 하이힐로 뛰는 것이 한계에 도달하는 바람에 안겨서 가게 되었만, 두 사람은 무사히 지하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네요."



    "아마도 직계 왕족들만 아는 전용 통로겠지."





     그리고 오스카가 클로이를 안고 아래로 내려가자 그곳은 넓은 석실이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라일리우게 자작과 검은 천에 싸인 상자 같은 것이 서 있었다.



     저것이 그거냐며 작은 목소리로 묻는 오스카에게, 클로이는 틀림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카가 내려주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자작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드디어 찾았어요. 그렇군요, 이런 곳에 있었네요."



    "큭!"





     정신을 차린 자작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상자 옆에 붙어 있는 무언가를 만지려고 했다.

     그러자 오스카가 순식간에 자작에게 몸을 날렸다.





    "꾸엑!"





     공처럼 굴러가는 자작을 바라보며, 클로이는 상자에 다가가 검은 천을 잡아당겼다.

     나타난 것은 가만히 서 있는, 은빛으로 빛나는 상처투성이의 네모난 상자.



     클로이는 그 표면을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훑어보았다.





    "오래된 상처와 최근 생긴 상처가 있네요.

     최근의 상처는 무리하게 분해하려고 한 느낌인 걸로 보아, 납치한 마도사들에게 조사하게 한 것 같네요, 라일리우게 자작님........"





     그녀는 말을 끊고서, 일어선 자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ㅡㅡ아니, 리엘가(Lieluge) 자작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



    "설마 리엘가 제국 황제의 후손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너, 너는! 어떻게 그걸!?"





     공포와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는 자작.



     클로이는 "글쎄요, 왜일까요?"라고 중얼거리며 오스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데려가도 괜찮아요. 뒷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젠장! 놔라!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놔! 놓으라고 했다!"





     오스카가 무표정한 얼굴로 난동을 부리는 자작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지 클로이를 바라보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클로이.

     상자를 향해 돌아서서는, 상자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전생의 언어로 그리운 듯이 말을 건넨다.





    "혹시나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너였구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듯 빛나는 상자.

     그것은 전생의 클로이가 만든 상자 모양의 마도구였다.



     그녀는 마도구에 뺨을 대며 애틋하게 중얼거렸다.





    "설마 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후후, 상처투성이네. 역시 천 년이 지나면 늙는구나."





     클로이는 마도구를 만들었을 때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때는 리엘가 제국의 고위층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병사들에게 의사를 믿게 하는 마도구를 만들어 달라'라고 해서 너를 만들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세뇌에 사용되었겠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빛나는 마도구.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마도구의 차가운 벽면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 미안해, 내가 어리석어서 네가 이렇게까지 망가질 때까지 심한 짓을 시켰어. 나는 부모 자격이 없어."





     그녀는 젖은 시야로 마도구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만나서 즐거웠어. 이제 쉬어."





     벽면에 마력을 흘려보내어, 튀어나온 자폭 스위치를 떨리는 손으로 누른다.

     그러자 마도구가 작별인사를 하듯 잠시 작게 울리더니, 천천히 멈춘다.



     쪼그려 앉아서 멈춰버린 마도구에 기대는 클로이.



     그리고 그녀는, 홀로 마도구에 손을 얹고는 오스카가 마중올 때까지 눈물로 볼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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