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2 작은 유리병③ [팔튼 백작 시점]
    2023년 09월 08일 20시 30분 3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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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조용히 문이 열리고서, 딸인 마린을 시중드는 전속 메이드가 들어왔다.



    "마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전속 메이드는 내 탁자에 유리병 하나를 놓았다.



    "이건 ......"

    "마린 아가씨께서, 백작님의 부재 때 바꿨습니다."



     교체했다는 말에, 나는 서둘러 집무실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엄중하게 자물쇠로 잠긴 작은 상자가 들어 있었다.



     숨겨두었던 열쇠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안에는 비슷한 모양의 유리병이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건 아가씨께서 준비하신 가짜입니다. 진짜는 이쪽이고요."



     하녀가 가져온 작은 병의 뚜껑을 열자 희미하게 약 냄새가 났다. 이쪽이 진짜임에 틀림없다.



     암살자가 사용하는 무미, 무취의 독약은 은식기에 반응해 들켜버린다. 하지만 이 독은 약간의 냄새가 나지만 은식기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 귀중한 독을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지.



     이것을 조금만 더 빨리 입수했다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나는 아버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데려온 여자와 결혼해야 했다.



     아버지가 미약을 먹여 억지로 그 여자와의 아이까지 낳게 했다. 태어난 아이는 그 여자를 빼닮았다. 미운 여자가 낳은 아이가 귀엽게 느껴질 리가 없다.



     나에게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었다. 그 소망은 무참히 깨졌다. 그래서 아버지와 그 여자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간신히 구한 이 독을, 당시 팔튼 백작가의 당주였던 아버지의 식사에 매일 한 방울씩 섞어 먹었다. 독이 든 줄도 모르고 조금씩 쇠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자, 아버지가 데려온 여자의 식사에도 한 방울씩 섞었다. 사실 두 사람을 동시에 처리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의심할 것 같아 일부러 시기를 달리 했다.



     덕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 여자도 뒤를 따랐다.



     그때만큼 마음이 후련했던 적은 없었다.



     그 여자는 부유한 자작가의 딸이었다고 한다. 결혼할 때 지참금이 많아서 아버지가 만족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혼 후 여자의 부모가 사고로 죽자 자작가는 친척의 손에 넘어간 것 같아서, 여자는 친정집과 인연이 끊어졌다. 그래서 여자가 죽어도 여자의 친척들은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겨진 딸 셀레나에 대해서 여자의 친척이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걱정은 기우로 그쳤다.



     이 독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그래서 그 여자의 딸 셀레나는 마린이 결혼할 때까지는 수중에 두면서 이용하고, 나중에는 돈 많은 귀족의 첩으로 팔아넘기기로 했다.



     매수자인 귀족에게 나쁜 소문이 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 여자의 죄는 딸이 갚으면 된다.



     내 딸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낳은 마린뿐이다.



     어렸던 마린도 드디어 사교계에 데뷔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뒷사정도 알아두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순수한 마린에게는 아직 이른 것 같았다.



     독을 바꿔치기해서 가져다 놓다니, 너무 장난이 지나치다. 하지만 그런 순진한 마린을 돕기 위해 전속 메이드를 두고 있다. 이 메이드가 마린을 보살피면 된다.



     그 때문에 일부러 하급 귀족의 딸을 거금을 들여 고용한 것이니까.



     마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가급적이면 데릴사위를 들여서 마린이 팔튼 백작가를 물려받았으면 좋겠지만, 시집을 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는 마린의 아이를 양자로 들여 팔튼 가문을 물려줄 생각이다.



     그 마린의 사랑하는 상대가 발고아 영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마침 셀레나가 다쳐서 발고아 영식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를 이용해야 한다.



     그가 마린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은 두 사람에게 최고의 행복이 될 것이다.



     마린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기도 하니까.



    "백작님 ......"



     마린의 전속 메이드가 말을 걸었다. 아직 있었군.



     메이드는 고개를 숙이면서 "저기요"라고 말했다.



     아, 맞다. 마린을 잘 보필하면 돈을 더 얹어주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가방에 들어있는 은화 몇 개를 집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전속 메이드는, 바닥을 기어 다니며 흩어진 은화를 필사적으로 주웠다.



     다 주운 하녀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딱한 녀석이다. 마린한테는 평생 돈 때문에 고생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린을 확실히 지켜줄 결혼 상대가 필요했다.



    "셀레나에게 폐를 끼친 것에 대한 사과로, 우리 집에서 파티를 열어 발고아 영주를 초대할까?"



     그 파티가, 마린과 발고아 영식의 운명의 만남의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 여자의 딸도 쓸모가 있군."



     셀레나를 다 써버리면, 가장 높은 금액으로 팔아치우자. 그렇게 되면 내 복수는 드디어 끝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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