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까 그 잎사귀, 검은 반점이 있는 줄 알았는데 ...... 없어?)
그레이스가 씹고 있던 잎사귀에는 검은 반점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것일까?
(착각이려나? 그건 그렇고, 밀이 흉작인 데다 다른 채소까지 병 같은 것이 번지다니, 어떻게 된 일이람?)
무심코 눈살을 찌푸린 멜로디는, 천천히 얼룩덜룩한 잎사귀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었다.
(만약 병에 걸렸다면 어쩌면 밭을 전부 처분해야 할지도 몰라. ...... 이런 것, 그냥 사라졌으면 좋았을 텐데)
잎사귀를 노려보며 잡고 있던 엄지손가락으로 얼룩덜룩한 부분을 짚었을 때였다.
슈우욱, 파직파직파직, 펑!
"어?"
손가락으로 짚은 반점이 잎사귀에서 솟아오르더니,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져 버렸다. 무심코 잎사귀에서 손을 떼는 멜로디. 산산조각이 난 반점은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고,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시 잎사귀로 시선을 돌렸을 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잎사귀에서 얼룩이 사라져 있었다.
(...... 음, 이게 무슨?)
"응? 무슨 일이야, 멜로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일단 이 밭의 일도 촌장과 숙부님에게 보고해 두자.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오늘 하루는 이대로 둬. 더 퍼진다면 숙부님께 부탁해서 모두가 힘을 합쳐서 제거하도록 하자."
"감사합니다."
"좀 더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빨리 돌아가서 숙부님께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멜로디, 돌아가자 ...... 멜로디?"
"아, 네. 바로 준비할게요. 루크, 가요."
마차로 돌아가기 직전에, 멜로디는 다시 한번 잎사귀를 보았다. 얼룩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인은 ...... 내 마력? 아가씨의 말로는 왕국 최고라던데, 혹시 내 마력이라면 저 얼룩을 없앨 수 있으려나?)
멜로디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류크와 함께 마차로 향했다.
(아아, 맛있어. 이 얼마나 순도 높은 부정한 마력의 결정체인가. 더 많이 먹여줘~!)
루시아나의 품 안에서 그레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
"어? 다낭 마을과 테논 마을에도 그 반점이 생겼어?"
"그래, 루시아나가 그루주 마을로 향하고 얼마 후, 각 마을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시찰을 마치고 돌아온 루시아나는, 저녁 식사 후 휴버트에게 동쪽 그루주 마을의 밀밭과 채소밭의 일을 보고했다. 그랬더니 그루주 마을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증상이 다른 두 마을의 밭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루주 마을과 마찬가지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더군.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밭을 보니 채소 열매와 줄기와 잎에 그 반점이 떠다니고 있었다더라. 마을 사람들이 일단 맛을 보았는데, 역시 떫고 쓴맛이 심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해."
"...... 왜인지는 몰라도 그레일은 맛있게 먹어치웠지만요."
루시아나와 휴버트는 식당 한쪽에 놓인 바구니에서 곤히 잠든 그레일을 보았다. 배를 드러낸 채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은 멍청한 강아지로만 보인다.
"식물 특유의 유행병일지도 모르니, 며칠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 조심할게. 아, 맞다. 그레일만큼은 아니지만 멜로디도 한 입 먹었잖아. 몸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바로 보고해 줘"
"네, 아가씨."
마침 식후의 차를 가져온 멜로디에게 주의를 주는 루시아나. 멜로디는 빙긋이 웃으며 승낙했다. 홍차를 받은 휴버트는 찻잔을 입에 대며 가볍게 눈을 부릅떴다.
"이거, 맛있는데?"
"웅, 멜로디가 끓여주는 차는 항상 맛있어."
"그럼, 이것은 루시아나가 가져온 찻잎으로 만든 건가. 어느 상표인데?"
"벨스위트인데?"
"뭐? 정말?"
"멜로디는 차를 아주 잘 끓여."
루시아나는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홍차를 마셨다. 휴버트는 찻잔 속에서 흔들리는 홍차의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멜로디를 바라보았다.
"멜로디, 괜찮다면 우리 집에다 벨스위트를 맛있게 끓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다들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맛있게 만들지는 못해서. 루리아, 멜로디한테서 배워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멜로디, 지금부터 해도 될까요?"
"네. 아가씨, 잠시만 실례할게요."
멜로디는 우아하게 인사를 하고서 루리아와 함께 조리장으로 사라졌다. 이를 지켜본 휴버트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멜로디의 홍차가 오늘 유일하게 좋은 일이었어."
"...... 숙부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귀여운 조카의 모습에, 휴버트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우선은 현황 파악부터 하자. 내일 이후에도 반점이 채소에 퍼져나간다면 병일 가능성이 높아. 오염된 것들만 제거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
"밭을 다 없애야 할지도......?"
루시아나가 겁에 질려서 묻자, 휴버트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쓰라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