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부-16 피할 수 없는 속죄(전편)(6)
    2023년 06월 25일 23시 39분 2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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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방비한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다. 아주 쉽게 죽일 수 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료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놓았다.

     죽이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아서.

     얼마든지 상냥히 대해주거나, 또 어디론가 데려갈 수도 있었는데.

     그저 손을 잡고 싶었을 뿐인데 등을 떠밀다니, 너무 이기적이지 않냐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 갈까."

     일어섰다.

     료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둥글게 말아서, 소녀의 머리 아래로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소녀가 누워 있는 곳만 빛이 비치고 있다.

     거기서 한 발짝 물러섰다. 같은 빛을 받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빛을 받으면 미련이 생길 것만 같았다.

     미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그것이 왜 그런지 료는 몇 초간 생각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이건 첫사랑이 되는 건가? 이루어지지 않고서야 자각한다더니 ......"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이 지저분한 지하공간에는 없다.

     공허한 미소를 지은 후, 료는 지하 어둠 속으로 홀로 걸어 나간다.

     자신이 달리기로 마음먹은 길을 달리는, 적어도 그것만은 해내기 위해.

     

     
     ◇
     

     

     어둠 속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뒤로한 신부복 차림의 선생ㅡㅡ진이 미소를 짓고 있다.

     자신의 피웅덩이에 빠져 있는 유이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엉덩방아를 찧은 자세로 물러났다.

    "시, 싫어 ...... 오지 마 ......"

     적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유이에게 그는, 적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직 인간이 아니었을 때.

     자신이 생명의 소중함을 이해하지 못하던 때.

     살인의 기술을 배워 다행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는데도.

     갈고닦은 기술이 있었기에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만, 눈앞에 그 상징과도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이렇게나 무섭다.

    "이곳은 태고의 성당 ...... 옛날에는 대륙 자체가 더 낮았습니다."

     일어나려는 유이 앞에서 진이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그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벽면에 놓여 있던 횃불들이 저절로 불이 켜졌다.

     빛이 비치자, 비로소 성당 곳곳에 섬뜩한 모습의 여자들, 즉 로이 일행이 지상에서 싸우고 있는 천사의 군대가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슈텔라인 왕국이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던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곳 ...... 신부가 아닌 신관들이 신과 교시하던 곳입니다."

     진은 천천히 유이와의 거리를 좁혔다.

    "힉...... 시, 싫어어! 오지 마, 오지 마 ......!"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이야. 교육자로서 아직 미숙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나날이었지만, 이건 꽤 힘들군요."
    "오지마 ......! 아, 아니! 나는, 나는 이제, 살인마가 아냐 ......!"

     어느새 유이의 눈앞에 진이 있었다.

     비통한 외침을 듣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텐데."

     말을 끊은 후, 진은 고개를 저었다.

    "뭐, 인간이 아니니 당연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두려움과 당혹감이 뒤섞인 채 유이가 입을 열었다.

    "...... 네?"
    "그대와 료가 서로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야마토』의 각성자로서의 권위가 흔들렸습니다. 제1후보와 제2후보를 서로 죽이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지만 ...... 결과적으로 이렇게 제가 가로챌 수 있게 되었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는 거죠."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쪼그려 앉아 유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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