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부-14 찢겨나간 크리스마스 이브(1)
    2023년 06월 23일 20시 26분 0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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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마리아 씨"

     장을 보러 가던 마리아는 문득 멈칫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네?"

     뒤돌아본 마리아는 얼어붙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

     바다를 연상시키는 맑고 푸른 두 눈동자.

     몸매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검은색 드레스.

     
     우아하고도 요염하여, 여신도 질투에 미쳐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소녀가 똑바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
    "............"

     사람들이 오가는 도심 속에서 두 사람의 공간만 분리된 듯 고요함이 가득하다.

     아니, 정말 마법의 효과로 공간이 분리된 것임을 몇 초 뒤늦게 깨달았다.

    "...... 당신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만 반짝일 셈인가요?"
    "읏! ...... 네, 그래요."

     아마도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을 아는 사람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마리아는 긴장감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뜬금없는 물음에 선뜻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수수께끼의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변함없는 것 같아서 안심했네요."
    "네?"

     마리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마리아는 마리안느 피스라운드와는 다른 사람이며, 한때의 친구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그것이 옳은 일인 것처럼, 수수께끼의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역시 변하지 않네요.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둘째 치고, 자신이 정한 길을 절대 양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
    "......고, 고맙습니다?"

     소녀가 다가온다.

    "그래서 저도 당신의 빛에 매료되었지요. 자아, 기억을 잃은 당신은 얼마나 빛날지........"
    "그 정도로 해둬."

     갑자기 소녀의 머리에 손날이 떨어졌다.

     어느새 나타난, 이상한 안경을 쓴 청년이 범인이었다.

    "어, 저기 ......?"
    "아얏......뭐하는 건가요, 알트리우스."
    "상대는 이제 일반인이잖아. 겁을 주는 듯한 등장뿐만이 아니라 내용의 전개까지 최악이야...... 자신과 악연이 있다는 어필이 너무 지나쳐."

     훈계하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남자에게서, 마리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서운 기운을 느꼈다.

     간신히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으로 막고 있지만, 그마저도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ㅡㅡ그렇게 마리아는 이상하게도 남자를 경계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고 있었다.

    (처녀자리로 막을 수 있으려나 ......?)

     하지만 이곳은 도심지, 극성신장의 발현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며 마리아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 기척을 알아차렸는지,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모자를 다시 썼다.

    "그럼, 이만 물러날게. 우리 일은 잊어버려도 돼. .....우리 음습한 빠순이가 폐를 끼쳤어."
    "방금 뭐라고 했나요, 방금!"
    "음습음험 빠순녀."
    "점점 많아지고 있잖아욧!"

     말다툼을 하면서, 소녀와 남자는 마리아의 곁을 지나쳐 뒤로 빠져나갔다.

     겁에 질려 뒤돌아보니 어디에도 은발은 보이지 않는다.


     거리는 평소처럼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달이 물 위로 떠오르는 순간 사라져 버린 듯한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사건이었다.

     

     

     

     ◇

     

     

     

     대예배 당일.

     슈텔트라인 왕국 전체가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고, 열성적인 사람들은 밤 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하루 종일 기도를 드리는 유서 깊은 기념일.

     왕도에 우뚝 솟은 총본산인 대성당도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 당일이라 여기저기서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소란스럽다.

     그런 와중에도 차기 성녀인 유이는 대성당 최상층에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 교황님. 어째서 저를 발견해 놓고도 류를 끌어들이셨나요)

     유이에게는 가증스러운 기억.

     살인 기계로서의 기술을 익히게 된 최악의 과거.

     그런 와중에도 확실하게, 자신에 따라붙는 소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른 사범들에게도 기량을 인정받고 있었으며, 그와의 대련을 할 때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나와는 달리 ...... 도망친 곳에서도 악연에 휘말렸어. 나는 교회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그것은 매우 운이 좋은 일이었고)

     신부님들로부터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윤리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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