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 ...... 맞다. 나는 마리안느와 함께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지]
"............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뭘 부끄러워하고 있어!? 아가씨, 역시 대악마는 그만두는 게 좋다고! 아니, 나는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이 아니지만 ......!]
[오오, 좋다. 미크리루아, 네가 할아버지 역할이고, 내가 남자친구 역할이라는 건가 ...... 알겠다]
"뭘 알았다는 거죠!? 그런 장난을 치고 있을 때가 아닌데요!"
계속 생각했지만, 이 대악마는 정말 긴장감 같은 게 없네.
행성 파괴계 라스트보스니까 당연히 생각의 스케일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평소에는 우리들에게 맞춰서 대화해 주는 만큼 이런 타이밍에도 보통의 잡담을 시작하는 게 조금 무섭다.
이런 생각을 눈치챘는지, 루시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가, 미안했다. 진지한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었는가. 그럼 나는 얌전히 물러나도록 하지]
"......거 고맙네요."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루시퍼.
젤도르가를 향해 돌아서는 나를 향해, 그는 뒤에서 말을 건넨다.
[이겨라, 마리안느.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사상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너도 그럴 테고]
"...... 세상을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남자가 할 말인가요?"
[없었던 일로 만들 생각은 없다. 죄를 속죄하는 것과 지워버리는 것은 다르다. 그것과 똑같다]
"그런가요. 그런 뜻이라면 알겠어요."
사라져 가는 그를, 뒤돌아보는 일 없이.
미크리루아의 머리에 올라타 팔짱을 낀 채, 젤도르가를 노려본다.
"그럼 보여 주도록 하죠!"
그렇게 외치고서.
나는ㅡㅡ미크리루아의 머리에서 뛰어내렸다.
[뭐라고!?]
융합이란 너처럼 물질적인 융합만을 말하는 게 아니야!
설령 물리적으로 떨어져도 링크는 끊어지지 않아! 이렇게 보여도 원거리 연애도 할 수 있는 타입이라고! 해 본 적은 없지만!
"오오오오오리야앗!!"
젤도르가의 머리에서 삐죽 솟아오른 군신에게 달려들어, 나이트메어의 불꽃을 품은 주먹으로 공격한다.
군신은 사벨을 뽑아 들고는, 그 칼날로 나의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받아냈다.
[야만적인──!]
"당신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랍니다! 얌전히 죽으세요!"
즉시 오른팔을 되돌리고, 동시에 발판을 단단히 고정한다.
추한 할멈을 흉내 낸, 근거리에서 가장 빠른 행동!
[크윽]
음속 이상으로 휘두른 왼손 훅이 군신의 뺨에 꽂힌다.
동시에 미크리루아가 젤도르가의 목에 송곳니를 들이댄다.
[아가씨!]
"알고 있어요!"
콤비네이션을 펼치자, 군신의 얼굴에 주먹이 연이어 꽂힌다.
필사적으로 사벨로 막으려 하지만, 즉시 쳐서 떨쳐내고 피해를 입힌다.
나이트메어 오피우쿠스가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있다. 질 이유가 없지!
[웃기지 마라아아아아아아아!!]
마지막 저항인지, 군신이 젤도르가를 전진시킨다.
미크리루아와 나까지 밀고 들어간다.
"쳇, 아직 여력이........ 아차!?"
노리는 게 뭔지 알겠어!
나와 미크리루아는 깜짝 놀라 바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신전이 있다. 빛을 발하는 의식장이 있다!
"그런!? 직접 만지지도 않았는데!?"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어리석은! 위치 좌표만 겹치면 의식은 시작된다!]
얼굴이 부은 군신이, 나를 밀쳐내고 승리의 선언을 한다.
내가 미크리루아로 뛰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젤도르가가 이쪽에서 떨어져 고도를 높여 나갔다.
[이런 ......! 시작됐다!]
미크리루아의 말과 동시에, 일대의 공간이 일그러진다.
의식장을 기점으로 펼쳐지는 필드는 빛을 이상하게 굴절시키고 있었다. 분명히 기존의 물리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아래를 보니, 중력이 약해진 탓인지 일행들이 땅에서 떠오르며 깜짝 놀라고 있다.
"큭, 이건 ......!?"
"봐라!"
지크프리트 씨가 가리키는 곳.
젤도르가와 군신이 하늘을 달리고 있는 저편.
하늘이 갈라지고 있다.
"미크리루아, 저건!?"
[시공의 터널이라 하면 알겠나!? 저걸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의 시초까지 갈 수 있다!]
쳇, 큰일인데. 늦지 않으려나?
미크리루아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그 순간.
"마리안느!"
"!?"
린디가 이름을 불러서 돌아본다.
공중에 떠 있는 그녀는, 필사적으로 한 소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