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부 354화 검은 바람이 사라질 무렵(1)

 

 '그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왕립학교의 봄방학이 끝나고, 반 군이 고등부 3학년으로 진급을 앞둔 4월 초. 한 줄기 불쾌한 바람이 브랜스턴 왕국 내에 불어 닥친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약간 등골이 오싹하다' 정도의 느낌에 불과한 '그것'.

 하지만 그 이상함을 알아차린 사람에게는 멋쩍지 않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불쾌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아 돌았을 것이다. 마치 순식간에 옷을, 아니 영혼까지 벗겨지고, 좋아하지도 않는 이성에게 알몸으로 껴안긴 것 같은 두려움. 그것이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나라의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린 것이다.

 

"도련님!　위험해!"

"우옷!?"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올리브였다. 브랜스턴 왕국 최고의 명소, 왕궁 앞 광장에서 쭉 뻗은 메인 스트리트 한 켠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골드 상회 본점 부사장실에서 올여름 골드 마트에서 판매할 신제품 디저트 및 핫스낵의 기획서를 읽고 있던 나는, 뒤에서 갑자기 올리브에게 안겨 버렸다. 뭐야!

 무슨 일이냐며 놀란 것도 잠시, 불길한 예감을 눈앞에서 미리 감지한 올리브가 쳐놓은 마법의 방벽마저도 뚫고 불쾌한 바람이 우리들의 영혼을 파고들었다. 창문이 닫힌 실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억지로 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힌 것 같은 불쾌한 느낌에,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다.

"우와 기분 나빠!　뭐야, 방금 뭐였어!?"

"모른다. 하지만 보통 일이 아니었던 건 확실하다."

 이변은 잠깐이었지만, 햄버거 반죽을 한 후 손바닥을 아무리 씻어도 고기 기름으로 인해 손이 끈적끈적한 채로 남아있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의 잔재가 온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아 매우 불쾌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올리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미안, 지키지 못했다."

"아니, 올리브의 마법 장벽을 뚫을 수 있는 위험한 상대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수확이야."

"호크짱 무사해!?　괜찮니!?"

"뭐, 뭐야!　이번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요!?"

 팡!　하고 부사장실의 문이 열리며, 안색을 바꾼 이글 아빠가 호위인 버질과 함께 달려왔다.

"우리는 괜찮아. 두 사람은 어때?　이상은 없고?"

"우리도 괜찮아!　하지만 회사 사람들 중 몇 명이 이상해진 것 같아!"

 아버지의 말대로, 본사 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마치 폐인이 된 것처럼 멍한 눈빛을 하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다. 어깨를 흔들어 봐도, 말을 걸어도, 뺨을 가볍게 쓰다듬어 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명백한 이상 상황이라 판단한 아버지는 사내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음, 아무래도 이상해진 사람은 4명뿐인가. 손님까지 포함하면 6명.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까 그 불쾌한 바람이 원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애초에 그게 뭔지 모르면 생각할 수도 없겠어."

 의무실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건강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저주를 받은 흔적도 없고, 마력의 흐름도 정상이다. 육체적으로는 완전히 건강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어떤 요인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치매 노인처럼 되어 버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의사의 판단이다. 일시적인 증상이길 바란다고도 했다.

 혹시나 해서 이그니스 님이나 로건 님에게도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마마이트 제국이나 바스코다가마 왕국에서는 그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시차를 두고 발생할 가능성도 있으니 경계만 충분히 해 두겠다는 말씀이다.

"어쨌든 일단 가게 문을 닫아라!　본사에서 긴급 통보!　브랜스턴 왕국 내에 존재하는 골드 상회 산하 모든 점포는 오늘 영업을 전면 휴업하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직원은 의무실로 오도록!　타국의 지사 지점에서도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즉시 본사로 연락을 취하도록 하라!"

 사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이상이 없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 증세를 보이는 직원 4명과 고객 2명은 경비부 직원에게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해!　경우에 따라서는 입원시켜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