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부 298화 카가치히코와 메밀소바2023년 04월 12일 00시 57분 4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까마귀 수인의 피를 이어받은 반 조인, 아니 그보다는 타락천사 같은 검은 날개와 눈처럼 하얀 피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모. 그리고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태도가 특징인 여주인 사사메가 운영하는 작은 요리점 '시라유키'. 브랜스턴 왕국의 고급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담한 이 가게는, 카가치히코의 단골집이다.
"어머, 선생님! 어서 오세요!"
"가까이까지 들렀다가 왔스므니다. 사사메 공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므니다."
하늘이 파란색, 연보라색, 연주황색으로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으로 물드는 해 질 녘. 저녁 식사나 술 한잔을 하려는 손님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가게 안. 카운터석 가장자리에 앉은 카가치히코가 주문한 것은 따뜻한 메밀국수다.
"자, 드세요"
"고맙스므니다."
시원하게 식힌 냉주로 목을 축이고, 안주로 나온 가지 절임을 씹으면서 마도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와 가게 안의 손님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메밀국수 한 그릇이 눈앞에 놓인다.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메밀국수에는 고소한 튀김이 올려져 있고, 카가치히코가 튀김을 국물에 잠시 담그고서 바사삭한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한다.
메밀국수나 우동 위에 올려진 튀김을 어떻게 먹는지는 사람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카가치히코나 호크처럼 바삭바삭한 상태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버질이나 오레가노처럼 튀김옷에 국물을 듬뿍 묻혀서 바삭하게 부풀려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튀김을 1/3 정도 먹은 후, 국물이 묻지 않도록 그릇 가장자리에 올려놓으면 이번에는 메밀국수를 먹을 차례다. 장난스럽게, 그러나 정식 매너에 따라 카가치히코는 메밀의 향이 잘 살아 있는 메밀국수를 맛있게 먹는다.
고향인 재패존에 있을 때 즐겨 찾던 시내의 유명 가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맛의 국수를 이렇게 먼 이국땅에서 맛볼 수 있다니, 참 좋은 시절이 왔다.
"선생님, 맛있어요?"
"음, 맛있스므니다."
"다, 다행이다. 그럼, 이건 제가 주는 특별 서비스."
싱긋 웃으며 사사메가 카운터에 올려놓은 것은, 무를 갈아서 얹은 계란말이이다. 아직 따뜻한 계란말이와 차가운 무의 조합은 그가 좋아하는 조합이다.
"고맙스므니다."
"괜찮아요. 그럼 편히 드세요."
입맛을 다시는 카가치히코에게 손을 흔들며, 사사메는 다른 손님들을 부르며 자리를 뜬다. 여주인이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래도 식사 시간에는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미모의 여주인을 재촉하는 무뚝뚝한 손님은 없다.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고급 주택가라는 입지적 특성으로 인해 어느 정도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 신사 숙녀들이 모이는 차분한 가게다, 이곳은.
술에 취한 사람이 큰 소리로 떠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며, 그런 무례한 손님이 와도 단골손님들의 손에 의해 자연스럽게 퇴출된다. 가끔은 소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고급 주택가에 사는 정치인이나 경찰 관료, 때로는 귀족들이 드나드는 가게에서 그런 만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카가치히코는 아래쪽이 국물에 너무 많이 잠겨서 부서지기 시작한 튀김의 잔여물을 단숨에 먹어치우고, 그다음에는 깔끔하게 세 갈래로 나뉜 계란말이의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우선 그대로 한입. "음, 맛있스므니다."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반쪽을 메밀국수 국물에 담가 맛이 조금 배어든 부분을 입에 넣는다. 뜨겁게 달아오른 입 안을 시원한 술로 식히며 한숨 돌린다.
사실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계란말이 서비스가 나오는 것은 '오늘 저녁은 어떠세요'라는 신호다. 일본식 건축 양식의 가게 2층에는, 술에 취해 잠든 손님이 어쩔 수 없이 머물게 하기 위해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 작은 방이 있다.
의외로 사사메는 손님과의 교류에 적극적인 타입인 것 같으니, 아마도 카가치히코 외에도 친숙한 상류층 손님들과 남녀 혹은 여여의 관계를 맺고 있을 것임을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른들의 놀이인 만큼, 카가치히코도 다른 손님들도 그것을 알고 그녀의 권유에 응하고 있고, 그녀도 그런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둔감한 손님에게는 처음부터 권유를 하지 않고 있다.
"오, 카가치히코 선생님이 아니십니까?"
"토나스 공. 우연이므니다."
술친구인 너구리 수인의 행상인이 말을 걸자, 카가치히코는 옆의 빈 의자를 잡아당겨 준다. 토나스라고 불리는 건장한 노령의 다람쥐 수인은, 실례한다면서 허겁지겁 그 자리에 앉았다.
"오, 메밀국수입니까. 그거 좋지요. 요즘 비만 내리니 국수도 뜨거운 게 좋을지 차가운 게 좋을지 고민이 되어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사사메 씨, 저한테도 뜨거운 키츠네 국수 한 접시 주시시요. 그리고 뜨거운 술도."
"하아, 다녀왔습니다."
카가치히코는 적당히 취한 채로 토나스와 소소한 잡담을 즐긴다. 술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만난 단골들끼리 편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국수를 먹는다. 이것도 하나의 재미다.728x90'판타지 > 모에 돼지 전생~악덕 상인이지만 용사를 내버려두고 이세계무쌍해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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