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에필로그 4년 후의 약속(1)
    2023년 03월 23일 16시 00분 3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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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리 씨의 질문에 내가 떠올린 것은, 그녀였다.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다.

     나의 이 기묘한...... 광산 붕괴 사건으로 시작된 일련의 소동 속에서 조금씩 그녀에게 끌렸던 것 같다.

     하지만 젤리 씨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 감정을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젤리 씨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와 나의 관계를...... 지금과 같은 편안한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 나는 살아갔을 테니까.




     그 방을 두드리자, 확실히 그녀는 실내에 있었다.

     방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호위 기사들뿐만 아니라 크루반 성왕국에서 데려온 문관들도 있었다.

    "...... 어라, 레이지. 무슨 일인가요?"

     양손에 서류를 들고 있던 에바 아가씨는, 나를 보자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가슴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어리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철부지였던 아가씨.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어른인 문관들을 상대로 대등한 토론을 하고 있다.

     아가씨를 이렇게 만든 계기가 나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아가시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성장하고 있다.

    (ㅡㅡ자칫 잘못하면 내가 어른 행세를 할 수 없게 되겠구나.)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아가씨, 드릴 말슴이 있습니다."
    "지금? 글쎄......이제 이쪽을 떠나야 해서, 정리해야 할 안건이 많은걸요."
    "그렇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헤어질 거라면 지금 얘기해야만 해.

    "............"

     아가씨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정갈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한결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기품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알겠어요. ㅡㅡ여러분, 절차는 계속 진행하세요. 레이지가 이쪽으로."

     나는 아가씨와 함께 방에서 발코니로 나갔다.

     지상 3층에 있는 이 방은 눈앞에 큰 정원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수도의 거리가 펼쳐져 있다.

     햇볕이 비춰서 오늘은 따뜻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앞으로 할 이야기를 생각하자, 내 체온은 아까부터 계속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사람들의 앞에서는 백작영애 같은 말투를 쓰는 판에 박힌 아가씨지만, 나와 둘만 있을 때는 이렇게 편한 말투를 쓴다.

     그것이 기뻤다.

    "저기...... 아가씨, 이제 성왕국으로 돌아가시는군요."

     갑자기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는 우회로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래. 아버지가 내무대신으로 발탁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지금 살인적으로 바빠."
    "쉬리즈 백작님을요?"
    "지금까지는 일부러 드러나는 직책을 피해왔는데, 이제 그럴 수도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백작님이라면 가볍게 처리할 수 있겠지요?"
    "정말 레이지까지. 다들 그렇게 기대하니까 아버지가 일을 너무 많이 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나도 가능한 한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 이제야 아버님도 빨리 돌아와라며 나를 의지하게 되었다니깐."
    "그, 그렇군요 ......"
    "그래서, 레이지 치고는 심각한 표정이었는데, 무슨 일이야? 아버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
    "예."
    "혹시 동료가 걱정돼서 그래요? 너는...... 영웅이 되는 선택을 하지 않았지? 사실 동료들은 영웅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면서 고민하는 거 아냐?"
    "그건......"

     내 마음의 고민에는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었다.

      내 의사로 모두의 미래와 관련된 일까지 결정해 버려도 되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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