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는 아직 모른다. 연극 대본에 따라서는 악마의 습격을 받았다고도 하고, 유빙에 부딪혔다고도 하고, 해적의 습격을 받았다고도 한다. 배가 가라앉은 것 자체보다 가라앉는 배 안에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키워가는 남녀의 비극을 그리는 것 자체가 주제인 것 같아."
"응? 그럼 혹시 이 배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우리가 남자 화장실 앞에서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지진일 리가 없지. 여긴 바다 위니까.
"호크!"
"폐하!"
순식간에 날개를 펴고 카펫을 걷어찬 폐하의 가슴에 뛰어들어 안기는 동시에, 아까까지 서 있던 발판이 크게 기울어진다.
"역시 가라앉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빨리 가라앉아! 우리를 침몰에 휘말려 익사하게 하는 원혼이 있을지도?"
아마도 침수되고 있는 것 같다. 크게 흔들리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배의 유리창이 크게 깨져 파편이 튀고, 천둥의 마법으로 켜져 있던 조명이 깜빡거리며 복도에 걸려있던 그림과 항아리가 떨어져 부서진다. 여기저기서 이 배의 승객으로 추정되는 남녀노소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45도 가까이 기울어진 배의 위쪽에서 붙잡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굴러 떨어진다.
"꺄!"
"싫어!"
"우왓!"
"도와줘!"
"미안, 지금은 무리!"
"단단히 붙잡고 있으라고, 호크!"
도와주는 것 이전에, 아마 너희들은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가라앉는 배의 밑바닥에서 점점 더 밀려 올라오는 극한의 바닷물. 무참히 그 바닷물에 휩쓸려 가라앉아가는 승객들. 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날아가며 상승하는 폐하였지만, 머리 위에 있는 깨진 창문에서 대량의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온다. 저런 것에 짓밟히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이그니스님! 그대로!"
"괜찮아!"
나와 폐하의 몸을 감싸는 정팔면체의 마법 장벽을 만든다. 피라미드를 위아래로 붙인 듯한 형태의 장벽은 뾰족한 끝에서 사방으로 수류를 분산시켜 그대로 바닷물의 폭탄을 뚫고 하늘까지 날아가 버린다. 장벽을 뚫고 쏟아지는 대량의 바닷물에 섞여 수많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다가 내가 쳐놓은 마법의 장벽에 부딪혀 그대로 튕겨져 심연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줘요!"
"제발! 죽고 싶지 않아!"
"엄마! 엄마!"
"거짓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아이가 다음 변경백이 될 뻔했는데!"
마치 대량의 망령들이 장벽의 표면을 주먹으로 치면서, 손바닥으로 쳐대는 것처럼 비명과 단말마가 고음량으로 메아리치나. 원혼만 어쩌고 저쩌고 할 때가 아니야! 그건가, 혹시 자신들이 이미 죽었다는 자각도 없이 침몰과 익사를 반복해서 반복해서 당하고 있는 패턴인가?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97년 동안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 정말이지 너무 심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마의 안갯속에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일단 정의감을 발휘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결국은 그대로 망령선에 끌려가서 불쌍한 시체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면, 그건 죽어도 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죽어도 풀려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내 아이만이라도 살리려고 가라앉는 극한의 바닷물 속에서 두 손으로 아이를 열심히 끌어안고 수면 위로 밀어내는 엄마. 여자아이를 밀어내고도 먼저 도망치려는 남자. 혼란을 틈타 주인의 브로치를 뜯어내는 시녀. 다음 생에도 함께하자고 서로 맹세하며 탁류에 휩쓸려 가는 노부부. 생전에 무슨 일로 이런 지옥에 빠졌든, 사후에 이런 식으로 영혼을 놀려도 되는 이유가 되지 않겠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둘이서 호화로운 파티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흘러나오는 음악,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 밝은 조명. 잔을 들고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신사 숙녀들 사이로 방금 전까지 해저에 잠겨있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인다. 오가는 사람들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자각도 없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서 정말 안타까웠다. 그래, 그랬어.
"어이 호크"
"뭔데요 폐하."
"이런 악취미스러운 곳, 얼른 나가자."
"우연이네요. 나도 방금 같은 말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틀림없다. 이 배는 몇 번이고 침몰을 반복하고 있다. 이 배는 침몰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이 현상을 유발하는 어떤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그놈을 찾아내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아니, 차라리 이 악마의 마법을 힘껏 깨뜨리는 게 빠를까?
"빛이여"
"흑염이여!"
신성한 빛과 불길한 어둠의 불길. 방향은 다르지만, 갇힌 망자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발산된 따뜻한 빛과 차가운 정화가 우리 둘을 폭심지로 삼아 넓은 지역을 휩쓸 듯이 빠르게 퍼져나간다. 모든 기믹을 무시해 버려서 미안하지만, 재미로 이런 유령선 탐사에 동참해 주려고 했던 마음은 이미 날아갔기 때문이다. 나도, 폐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