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장 79 용과 오니, 제물과 잘못(1)
    2023년 03월 09일 14시 52분 4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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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간 곳은, 독서대가 놓여 있고 마도 램프가 은은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아담한 방이었다.

     펼쳐진 책은 한 페이지가 1미터 정도 되는 정사각형으로 엄청나게 컸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인물이 있었다.

     덥수룩한 백발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고, 눈썹과 수염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전혀 알 수 없다.

     입고 있는 옷은 안내해 준 남자와 같았지만, 양손과 양발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이 왠지 섬뜩했다. [삼라만상]에 따르면 그 금속은 천은을 함유한 합금으로, 신비한 마력을 발산하는 것 같다고 한다.

    "현자님, 데려왔습니다"
    "............"

     남자가 말하기 전부터, 그 작은 노인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덥수룩한 눈썹 아래로.

    "레이지라고 합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자가 방에서 나가자, 현자님은 독서대의 의자에서 훌쩍 내려왔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걸어서 책장이 있는 벽으로 향했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 있는 2미터도 안 되는 폭의 벽면에 손을 대자, '쓱'하고 벽이 사라지고 길이 생겼다.

     힐끗 돌아보기만 하고서, 현자님은 이미 앞서 가버렸다.

    "...... 따라오라는 말씀이신가요?"

     나의 [삼라만상]은 현자님에 대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ㅡㅡ[이해불능].

     인간족이 아닌 것은 딱히 상관없지만, 라이브러리안 같은 반응도 없었고, 그저 [이해불능]이라는 오류 판정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 여기서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

     나는 현자님이 사라진 통로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ㅡㅡ엥?"

     어느새인가 그곳은 초원이었다.

     밖으로 나갔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주변이 온통 초원이고, 하늘을 찌를 듯한 산도, 울창한 숲도 없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붉은빛과 푸른빛, 그리고 밤의 어둠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하늘이었다.

     현자님은 초원을 쏜살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내가 따라올 것을 확신하는 듯이.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나는 현자님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니 초원 끝자락에 네모난 천이 깔려 있는 곳이 나타났다. 돗자리 같은 그것은, 모자이크 무늬로 짜인 알록달록한 천이었다.

     현자님과 비슷한 옷을 입은 노인이 이미 그곳에 앉아 있었는데, 그 노인은 흰머리를 깎고 수염도 없었으며 눈썹도 덥수룩하지 않았다.

     얼굴이 깊게 파인 얼굴에는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있다.

     하지만 특징적인 것은 이마, 아니, 이마 끝이었다.

     그곳에 두 개의 돌출부가 있었는데, 마치 '뿔'처럼 보였다.

    "...... 여기까지 데려오다니, 무슨 생각인가?"

     뿔의 노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삼라만상]은 이 노인에게도 [이해불능]의 오류를 토해내고 있지만, 나는 그가, 아니, 그들이 누구인지, 이미 짐작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 혹시 환상귀인인가요?"

     그래, 맞다, 뿔의 노인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


     '뒷세계'에서 사람흉내는 이렇게 말했다.

     ㅡㅡ"우리는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태어난 ...... 말하자면 기둥이야. 여신이 갈라놓은 두 개의 세계. 이 세계는 환상귀인에게 맡겨졌고, 그들이 우리를 만들어냈다.

     '조정자'라고 불리는 존재, 검은 사람 모양의 녀석들은 환상귀인이 만들어낸 자동인형이라고 한다.

     그가 환상귀인이라면, 처음의 현자님은.

    "...... 앉아라. 대접은 할 수 없겠지만."

     덥수룩한 수염 아래의 입이 꿈틀거리며 말을 내뱉는다. 그 말투는 노인의 말투였지만, 그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젊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신발을 벗고 양탄자 위에 앉았다. 환상귀인은 흥미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고로 그도, 현자님도 맨발이었다.

    "짐작했겠지만, 나는 용이다."
    "!"

     내가 묻기도 전에 현자님이 먼저 말했다.

    "이 모습은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뿐이다. 자세한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라이브러리안에게 용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도 설명할 필요는 없는 건가요?"

     나는 라이브러리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인간족과 다른 점, 즉 용과 같은 기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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