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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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1월 27일 21시 57분 2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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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눈을 떴다. 꿈속에서 눈을 떴다.

     

     "이제야 일어나셨나요, 여왕 폐하?"
     "사마엘......"

     내 앞에는 사마엘이 키득거리면서 서 있었다.

     

     장소는 어딘가의 맨션의 최상층.

     

     나는 여기 온 기억이 있다.

     

     멀미가 난다. 이 장소는 싫다.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아무래도, 기억의 파편은 남아있는 모양이네요. ㅡㅡ자신이 죽은 장소를."

     사마엘이 그렇게 고하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빗장을 푼 옥상의 문. 옥상의 난간. 그곳에 놓인 신발과 편지봉투.

     

     그래. 맞아. 나는 이 장소를 기억하고 있어. 여기는 내가 죽었던 장소야.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당신이 자살한 장소를."

     그렇다, 나는 자살했다.

     

     나는 아버지가 죽은 것과 어머니의 죽음을 선택한 것에 견딜 수 없었다. 내 정신은 그렇게 튼튼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생명유지장치를 멈춘 뒤 7일 후에 여기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을 죽인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세계에서는 그렇게나 삶에 집착하고 발버둥치죠? 당신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죽일 정도로 삶에 집착이 없었던 사람인데, 어째서 그 세계에서는 살아남으려 하는 건가요?"

     왜일까.

     

     어차피 자살해서 죽었으니, 또 죽어도 괜찮지 않았나.

     

     "그렇죠, 그렇죠? 한번 스스로 죽어봤으니, 저 세계에서 죽어도 되잖아요. 어차피 처음부터 죽을 셈이었잖아요."

     사마엘은 그렇게 고하고서, 나의 유서가 든 봉투를 내게 던졌다.

     

     마지막으로 PC에 대한 기억이 남은 것은, 게임을 해서가 아닌 컴퓨터로 유서를 썼기 때문이었구나. 유서는 프린터로 인쇄한 것인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견딜 수 없었다는 취지가 적혀 있다.

     

     "나는......"
     "어차피 죽을 셈이었다면, 다시 한번 죽어보는 건 어때요? 이번에는 온화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구요. 이 꿈속에서 영원히 눈을 붙인다는 죽음이."

     사마엘이 그렇게 말했을 때, 옥상의 광경이 바뀌었다.

     

     바뀐 광경은 바로 친가의 현관이었다. 부모가 죽어 아무도 없어진 친가의 현관에, 나와 사마엘이 서 있다.

     

     "어라, 어서오렴, ㅡㅡㅡ야."

     하지만, 그곳에는 나를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다. 내가 죽였을 어머니가 앞치마 차림으로 나를 맞이해주고 있다.

     

     "ㅡㅡㅡ야, 이제 저녁식사 시간이란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햄버그니까, 빨리 손 씻고 오렴."

     어머니는 싱긋 미소지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식당에 들어갔다.

     

     나도 어머니를 뒤따라 식당에 들어섰다.

     

     "우리 딸! 대학에서 공부는 잘하고 있겠지?"

     다음으로 날 맞이해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사고로 죽었을 아버지.

     

     "그럭저럭. 과락은 안 했으니 안심해."
     "그래? 그거 다행이다. 너는 고딩 시절부터 겜만 해서, 이 아빠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웃고는 티비로 시선을 향했다.

     

     티비에서는 별것 아닌 뉴스가 나오고 있다. 난 흥미 없는 세계 정세의 뉴스.

     

     "ㅡㅡㅡ, 여보, 식사 다 됐어요~"

     나는 어머니의 목쇠에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 병원에서 식물인간상태로 붕대 투성이었던 때와 다르게, 멀쩡히 살아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죽였던 어머니가 살아계신다. 이보다 기쁜 일은 없다.

     

     "자, ㅡㅡㅡ. 식기 전에 자리에 앉으렴."

     "응, 알았어 엄마."

     나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어머니가 식사를 늘어놓는 것을 도왔다.

     

     내가 좋아하는 햄버그 스테이크. 샐러드, 콘포타쥬 수프.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합장을 하며 그렇게 말하고서, 햄버그에 손을 대었다.

     

     "ㅡㅡㅡ. 게임만 하지 말고 공부도 해냐한다? 성적이 나쁘면 학비를 줄일 테니까."

     "알고 있어, 엄마. 내 성적은 좋은 편이니 안심해. 나도 겜만 하고 있는 게 아닌걸."

     이런 잔소리도 오랜만이다. 어머니는 내가 게임만 하는 것을 걱정해서, 매주 전화했었지. 얼마만이야.

     

     "ㅡㅡㅡ. 게임 이외에도 취미를 찾는 게 좋아. 대학생활은 길면서도 짧으니까, 그동안 여러 가지에 도전해두지 않으면 사회인이 된 뒤에 시간적 여유가 사라질 거다."

     "응. 다음에 여행이라도 가볼게."

     아버지는 대학생일 동안 놀아두라고 맨날 말했었지. 공부하라는 어머니와는 대조적이라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지금, 행복한가요, ㅡㅡㅡ씨?"

     

     내가 가족과의 식사를 즐기고 있자, 사마엘이 말을 걸었다.

     

     "그래, 행복해, 사마엘. 부모님이 살아계셔.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어. 이 이상 행복한 일은 없잖아."

     "그럼, 계속 여기 있도록 하시죠. 이 세계는 당신만을 위한 세계. 당신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지요. 이제 두 번 다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이 없도록. 계속 여기 있도록 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래야할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안식을 찾았다. 여기에는 나의 행복이 담겨있다. 여기 있으면 편안히 지낼 수 있다.

     

     "그래. 여기 있어야할지도 몰라."
     "맞아요 맞아. 여기 있도록 해요. 여기서 영원히 같은 시간을 지내도록 해요. 죄의식 없이, 안식의 장속에서 평온을 얻자구요."

     정말 여기 있어도 될까.

     

     나는 뭔가 중요한 일을 잊지 않았을까?

     

     [여왕 폐하! 여왕 폐하!]

     [눈 좀 떠주세요, 여왕 폐하!]

     

     목소리가 들린다. 필사적인 목소리. 여왕을, 나를 부르고 있다.

     

     "아아. 저건 무시하세요. 당신이 있어야 할 장도는 여기잖아요.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여기 있어도 된다구요."

     

     사마엘은 그렇게 말하지만, 목소리가 나를 계속 부르고 있다.

     

     "자아, 이 안식의 장소에서 편안하게ㅡㅡ"
     "거기까지다, 사마엘."

     사마엘의 속삭임이 늠름한 여성의 목소리에 가로막혔다.

     

     "산달폰......? 어째서 여기에?"
     "이 악마가 뭔가 해올 거라 생각해서 감시하고 있었지요. 이 게임에서 지게 생긴 악마가 비겁한 수를 쓰지는 않을까 싶었거든요."

     산달폰은 그렇게 말하며 새하얀 장검을 뽑았다.

     

     "이 거짓된 공간은 파괴해야만 한답니다, ㅡㅡㅡ씨."

     

     산달폰은 장검을 식당 바닥에 찔렀다.

     

     다음 순간, 이 공간에 금이 가더니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무너지자, 식당 또한 붕괴해버린다.

     

     "아빠! 엄마!"

     부모님도 붕괴해서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은 한순간의 일이라서, 나는 거의 아무것도 못했다.

     

     "아빠랑 엄마가......"
     "그것은 당신의 부모가 아니랍니다. 저곳에 있는 악마가 만든 허상. 당신을 꿈속에 가둬두고 육체를 아사시키기 위해 만든 허상이에요."

     내가 땅에 주저앉자, 산달폰이 그렇게 말했다.

     

     "당신의 부모는, 지금 천계에 있답니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부모님은 천국으로 가셨구나......"

     다행이다. 그걸 알자,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나는 천국에는 못 가? 산달폰?"

     

     "......당신은 지금, 영혼을 악마한테 붙잡혀있습니다. 거기에서 풀려난다면 반드시 제가 당신을 부모님에게 데려다 드리지요."

     "그것은 내가 자살했기 때문에?"
     

     "......무관계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네요. 연약해진 혼은 악마한테 붙잡히기 쉽거든요. 본래는 제가 인도했어야 했지만요. 죄송합니다, ㅡㅡㅡ씨......"

     

     "아니 괜찮아. 자살한 내가 나빴으니까. 하지만 악마의 손에서 도망친다면,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다 줄래?"

     "예. 물론이지요. 이번에야말로 제가 인도하겠어요."

     "정말이지. 저는 당신이 이해가 안 된다고요, 산달폰. 당신은 착한 척을 하면서, 자살한 영혼까지 천계로 끌어들이려고 하는군요. 그런 짓이 허락될 리가 없잖아요. 이 사람은 이 연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맛보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닥쳐라, 사마엘. 연옥은 네놈들 악마의 놀이터가 아냐. 연옥의 영혼도 언젠가는 구원의 대상인 것이다."

     사마엘이 한숨을 섞어 고하자, 산달폰이 그렇게 대답했다.

     

     "좋아요. 하지만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 게임에서 제가 이기면 이 아이의 영혼은 저의 것. 게임에서 제가 지면 마음대로 하시죠. 당신 마음대로 해보세요, 산달폰."

     사마엘은 재미없다는 투로 그렇게 말하고서, 빙글 스텝을 추며 어둠에 사라졌다.

     

     "ㅡㅡㅡ씨. 게임에는 이길 수 있어 보여요......?"

     

     "그래. 반드시 이기고 말게. 내게는 믿음직한 동료가 있으니까. 하지만 산달폰. 내가 떠나버리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돼?"

     "모든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어요. 이미 오랫동안 연옥에 있던 자들은 그 만들어진 세계에서 지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당신이라면 그 세계를 멋진 장소로 만들어줄 거라 믿고 있어요."

     알았어, 산달폰.

     

     "그럼, 당신의 승리를 빌겠어요. 그럼 반드시 당신을 구해낼 테니까."
     "기다릴게, 산달폰."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들은 헤어졌다.

     

     나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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