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5부-6 가열차기 때문에(후편)
    2022년 10월 26일 04시 29분 3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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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투는 사교계의 꽃이다.

     새삼스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서라는 미친놈이 상식을 조작하여 이식한 이상한 가치관인데...... 뭐,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 결투는 죄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1대1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좋은 수단을 놓칠 수는 없지.

     

     

     1대1 힘내 볼 테니...... 잘 부탁해요~!

     

     

    red moon 제시……서브퀘에서 확실히 이름이 나왔었던, 옛날에는 강했던 녀석?

    화성 시나리오라이터 공인의 속사 최강 캐릭이라고

    〇적절한 개미지옥 불량 폼은 안 써?

     

     

     뭐? 쓸 리가 없잖아요.

     

     

    우주의 기원 어이어이 얕보는 플레이냐고?

     

     

     반대라고요. 불량 폼의 은총은 어디까지나 기동력과 완력의 향상. 속사 하나만 집중한다면 오히려 방해돼요. 최고속도로 쏘기 외해서는 온 신경을 갈고닦으며 눈앞의 상대를 노리는데만 극한까지 집중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체내에서 출력을 늘리는 불량 폼은 기본적으로 속사와는 상성이 많이 안 좋다고요.

     

     

    〇우주의 기원 헐~……이해했어, 쓸데없는 말해서 미안.

    〇고행 무리 이 녀석 진짜 전투가 관련될 때의 능지만 딴 사람 같아

     

     

     시끄러워요! 어쨌든 이 싸움, 정말 기합을 넣고 갑니다!

     

     

     

     

     

     

     영빈관에서 두 레이디가 불꽃을 튀긴다.

     한쪽은 신동이라 불리며 틀림없이 이 나라의 차세대를 이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재녀ㅡㅡ마리안느 피스라운드.

     한쪽은 한때 속사 부문에서 천하무쌍을 자랑했으며 지금은 레벨바이트 가문에 시집간, 틀림없는 여걸ㅡㅡ제시 레벨바이트.

     나이는 많이 차이나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에게 배려도 겸손도 없다.

     

     "이 저에게 속사로 도전한다고요?"
     "네. 말했사와요ㅡㅡ당신의 장기 분야로 당신을 쓰러트리겠다고."

     

     불쾌함을 숨기지도 않고, 제시는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잊었나요? 피스라운드...... 어전 시합에서는 신동이라 불리는 당신을 누구도 당해내지 못했죠. 미리온아크 녀석들을 필두로 황금시대로 불렸으며...... 반대로 저희들은 그늘의 시대로 불렸지요."
     "그렇사와요. 저희가 너무 강했거든요."

     마리안느의 발언은 정말 불손함 그 자체였다.

     일단은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제시는 기분을 다잡고 조소하며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패배를 잊을 리가 없겠죠. 속사는 저의 영역. 그곳에서는 당신조차도 한 수 접게 되는데요."
     "시험해보실래요? 올드 타입 씨. 이제 그 시절의 제가 아니랍니다."

     한층 격해진 불꽃이 튄다.

     이제 이래서는, 친한 사이인 로이로서도 막을 수 없다.

     몇 초 간의 침묵 끝에, 양측의 오른손이 번쩍이며ㅡㅡ

     

     "자 스톱ㅡㅡ이번 결투, 외람되나마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

     

     격돌 직전이었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자는, 황금의 망토를 두른 제3왕자 그렌이었다.

     그렌 왕자가 솔선하여 심판을 맡기로 한 것에, 일동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규칙은 매우 평범한 속사....... 사출 규칙은 제가 만들도록 하지요."

     속사ㅡㅡ마법사끼리의 결투로서 비교적 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수법이다.

     화려한 마법 간의 격돌에 더해, 무엇보다도 빨리 끝난다는 점에서 관객도 당사자한테서도 인기가 높다.

     마력으로 짜낸 레일을 미리 설치하고서,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서 준비. 3의 카운트가 지난 직후에 돌아보고 그 레일을 향해서 마법을 쓴다.

     

     "뻔뻔하게도 잘도...... 울상을 짓게 만들겠어요, 피스라운드."
     "기대하고 있사와요. 하지만 알고는 있겠죠?"
     "뭐를요?"
     "귀족과 귀족의 결투란 다시 말해, 서로의 긍지를 건 싸움이랍니다. 져버리면 패배자가 되는 것이와요."
     "......흥."

     

     험악한 음성의 제시에게, 마리안느는 우아하게 드레스를 나부끼며 미소 지을 뿐.

     그렌 왕자가 재빨리 레일을 짜는 사이, 파티에 찾아온 귀족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다.

     

     "......어이, 미리온아크. 피스라운드는 이길 수 있는 거냐고. 역시 불리한 거 아냐?"

     자기 일과는 관계없을 텐데도, 아키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로이가 무슨 말을 하는 것보다 먼저, 두 사람의 옆으로 나른해하는 얼굴이 쑥 나왔다.

     

     "승부도 안 돼."
     ".......읏, 미스투르틴 씨인가."

     루거 미스투르틴은 의욕 없는 삼백안으로 결투장을 둘러보더니, 품고 있던 병에서 바로 와인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입술에서 흐르는 와인이 셔츠에 자국을 내는 모습에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승패는 뻔히 보입니다."
     "그, 건......"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걸지 확인하기 전에, 그렌 왕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마리안느와 제시 사이에, 짙은 감청색을 띤 마법진이 7개 정도 전개된다. 마력을 전달하는 레일이다.

     레일은 마법끼리 격돌한 지점을 기록하여 어느 쪽이 빨랐는지 명확하게 표시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준비는 되었군요. 그런 양측, 준비를."

     왕자의 목소리를 듣고, 결투자 두 사람이 등을 향한다.

     마침 마리안느의 시선 끝에는 로이 일행이 있었다.

     

     

     "1"

     

     

     로이와 루거는 시선으로 묻고 있다ㅡㅡ의미가 있는 싸움인지를.

     마리안느는 조용히 긍정했다.

     

     

     "2"

     

     

     그렌 왕자의 목소리에 주저함은 없다.

     제시는 왕자의 눈앞에서 왕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기색의 영애에게 수치를 안겨줄 수 있음에 내심 미소 지었다.

     

     

     "3"

     

     

     시선이 얽힌다.

     마리안느와 제시가 몸을 돌린 것은 동시.

     양측의 오른손이 번쩍이면서, 레일의 양끝을 향해 마법진을 전개한다.

     

     

     "blaze."
     "fall."

     

     서로가 쓴 마법이 레일 위를 질주ㅡㅡ하지 않았다.

     파직! 하고 불꽃이 튀기자, 제시는 순간 얼굴을 감쌌다.

     양팔을 뻗은 상태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몇 초 뒤에서야 깨닫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마법의 격돌은, 불꽃이 제시의 코를 간지럽힐 정도로 근거리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결과는 레일을 볼 것까지도 없다.

     

     "속사의 제시, 격파했사와요."

     

     말 그대로 승부조차 안 되었다. 왕국 안에 이름을 떨쳤던 명수가 한방 먹었다.

     그 결과에 귀족들은 말문을 잃었다.

     

     "......그런, 말도 안 돼...... 그런, 그런! 어째서!?"
     "속사라면. 자신의 장기부문이라면. 그 안이한 생각이야말로 당신의 약점인 것이와요."

     팔을 내리며 혼란스러워하는 제시.

     그녀에게 마리안느는,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고했다.

     

     "제시 씨. 다시 한번 기초부터 시작하세요."
     "......! 뭘 잘난 듯이......"

     "진지한 이야기라고요!"

     

     일갈이었다.

     벼락처럼 울리는 그것은, 제시의 입술을 순식간에 꿰매버렸다.

     

     "기초에 문제가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의 실력은 진짜랍니다. 한 끗만 잘못했다면 승패는 반대였겠죠."
     "......하지만, 당신이 이겼어."
     "네. 당신의 마음가짐의 문제예요. 교만함, 방심, 허영으로 온몸을 치장한 당신은...... 예전처럼 바르지 않았답니다."

     도도하게 말하면서, 마리안느는 제시를 가리켰다.

     

     "당신 이렇게 생각했죠. 이겨서 뭘 명령할까. 뭘 손에 넣을까. 명성이 얼마나 높아질까. 이름 뿐이라고 깔보던 녀석들한테 한방 먹일 수 있을까를."

     "............윽."
     "이전의...... 저와 찰나의 세계에서 싸웠던 당신은 그런 생각 하지도 않았답니다. 단지 눈앞의 상대를 노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요."

     대답할 수 없다.

     아아 그래, 그 말대로다.

     

     (나, 는......나는! 뭘 하고 있었담! 속사조차도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이를 악문다.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의 굴욕이었다.

     속사라면 자신 있었다. 절대적인 장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름 뿐인 부인으로 몰락해도 견딜 수 있었다. 진정한 자신은 대단하다며. 그 장소에서 죽치고 있을뿐이지, 퇴색한 일상은 거짓이라며.

     

     하지만 달랐다.

     

     (정말로 나는...... 전부 다. 긍지조차도, 잃고 있었어)

     

     예전의 영광이 사라진다.

     정면에서 서 있는 영애의 안광은 속일 수 없다. 떨리는 무릎에서 힘이 빠지며 무너지려고 한다.

     그때.

     

     "자, 여기서부터가 본론이에요."

     결투는 끝났을 텐데.

     마리안느는 결투의 자세를 잃지 않고, 그리고 다시 그렌 왕자도 다음 레일을 준비했다.

     

     "......뭐?"
     "뭘 멍하니 있나요. 말했잖아요. 이건 긍지를 건 싸움."

     "......그래. 맞아요, 완패예요. 지금의 저한테는 긍지조차도......"

     "그럼 할 일은 하나잖아요!"

     

     연회장 안을 뒤흔들 정도의 기백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제시의 정면에서, 마리안느는 오른 주먹을 자신의 가슴에 치며 외쳤다.

     

     "제시 레벨바이트! 존엄성을 빼앗겼다면! 긍지를 잃었다면! 목숨을 걸고 되찾으세요!"
     "......!"
     "당신의 적은 지금 여기 있어요! 정말로 패배자가 되고 싶다면, 부디 여기서 나가지 그래요!? 하지만 만일ㅡㅡ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마음 밑바닥에 불타오르는 뭔가가 휘몰아치고 있다면! 되찾으세요! 지금 여기서, 모든 것을!!"

     

     

     

     

     

     

     

     자, 쓸 수 있는 패는 전부 썼다.

     내 눈앞에서, 제시는 얼굴을 깔며 어깨를 부르르 떨고 있다.

     이런데도 일어서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여기까지. 아키토는 계단을 혼자서 오를 수 없는 몸이 되어줄 수밖에 없다.

     주사위는 던졌다. 나온 숫자는?

     

     "......좋아."

     

     제시가 고개를 들자, 정면에서 시선이 맞부딪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금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아아 그래. 저 얼굴이야 제시. 한때 나를 이겼던 여자의 얼굴.

     초라한 널 쓰러트려도 의미가 없어.

     

     "그래. 그래, 그래그래! 그래야죠! 그렇지 않고선 의미가 없답니다, 제시 레벨바이트! 자 그렌 왕자 빨리 레일을!!"
     "이미 다 되었거든요."
     "역시! 안경 주제에 일처리는 잘하네요!"

     그렌 왕자는 싱긋 미소 지었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만, 지금의 그대의 말투는 완전히 아웃이군요. 단두대 갈 겁니까?"
     "......지성과 품위가 느껴지는 얼굴에 걸맞게, 훌륭한 일처리였사와요."

     좋습니다, 라고 왕자가 수긍한다.

     안경 녀석......!! 왠지 완전히 주도권 주고 있잖아, 맘에 안 들어......!

     

     "갑니다, 피스라운드."
     "덤벼보세요, 제시 씨."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왕자의 쓰리 카운트가 끝남과 동시에.

     

     "blaze."
     "fall."

     

     격돌의 불꽃이 튀긴다.

     마법진에 새겨진 충돌흔은, 서로를 연결하는 레일의 거의 한가운데. 완전한 호각.

     .......어, 거짓말? 전과는 너무 딴 사람이잖아?

     봐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일격에 승부를 결정 내려고 했다.

     

     "그래요, 피스라운드. 당신의 말대로. 저는 확실히 패배자예요. 하지만! 불평과 불만은 있을지라도! 잘못은 아니었다고 확신하고 있답니다! 아아 정말 방금 전까지의 자신이 부끄럽네요!"
     "아, 아니 저기....... 그렇게까지 각성하지 않아도 된다고나 할까..... 저기 말이죠......"
     "과거의 제게 가슴을 펼 수 있는 자신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런 일보다도! 하필이면 속사에서, 아들이 보고 있는데도 져버릴 수는 없잖아요!"

     

     뒤에서 아키토가 숨을 삼키는 소리.

     응. 다행이다. 생각할 수 있는 한에서도 가장 좋은 대사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거는 그거, 이건 이거ㅡㅡ지고 싶지는 않았는 데에! 이거 완전히 각성해버렸어!

     

     

    〇타로 자업자득……

    〇잠자리 헌터 오늘은 패배영애를 볼 수 있나요!? 앗싸!

     

     

     그렌 왕자가 다음 레일을 설치한다.

     내 직감이 속삭이고 있다.

     조금 전처럼 하면, 진다는 것을.

     여기서 이기기 위해서는, 나 또한 한 꺼풀 벗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럼 준비하세요."

     등을 마주 한다. 보이지 않아도 안다. 지금의 제시는 한없이 전성기에 가까운..... 아니, 지금이야말로 전성기다.

     뒤를 보자, 아키토가 믿기지 않는 것을 보는 눈으로 의모의 등을 보고 있다. 이건 OK인 모양. 하지만 로이와 루거 씨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마리안느. 알고 있는 거냐? 너 못 이긴다고."

     놀리는 듯한 대사를 던지는 스승.

     젠장. 그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마리안느. 좋은 장작이 될지도."

     

     로이 또한 자리의 흐름이라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한 모양이다.

     지금, 여신이 미소 짓는 쪽은 제시 레벨바이트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1"

     

     

     시간이 느리게 느껴진다.

     극한까지 집중한다.

     

     

     "2"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싫어. 감동적인 장면이겠지만 지고 싶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제시가 이기고, 아들의 앞에서 자존심을 되찾는 걸로 일단락 나는 흐름이 되고 있어.

     하지만 싫다, 싫어! 어떤 상대라도! 절대 난 지고 싶지 않아!

     

     

     "3"

     

     

     돌아본다.

     번쩍 하고 빛이 시야를 가린다. 너무 늦다. 속도가 너무 늦다.

     이미 제시의 오른손에서 마법이 나오고 있다. 시작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젠장.

     슬로우 모션의 세계 속.

     

     

     명백하게, 문이 보였다ㅡㅡ문?

     

     

     (......읏! 이건......!?)

     

     

     나와 제시 사이를 가로막은, 쇠사슬로 묶인 문.

     거대한 문이었다. 청동색의 그것은 내 키의 3배는 넘어 보인다.

     아연실색한 사이에, 목소리가 들린다.

     가속되는 의식이 그 존재를 느끼게 해 준다.

     

     

     [ㅡㅡㅡㅡ내 힘이 필요하지 않나? 마리안느......]

     

     

     바로 옆에, 있다.

     등 뒤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존재가.

     

     

     [나는 거울이다. 힘을 원한다는 무의식적인 외침을 대변해주는 거울...... 마리안느. 반드시 지지 않을 힘이 필요하지?]

     

     

     ......기지 마.

     ......방해, 하지 마.

     

     

     [왜 그래. 겁먹었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넌 어둠의 힘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고]

     

     

     등 뒤에서 뻗어온 하얀 손이, 내 입술을 스윽 어루만지면서 볼에 머물렀다.

     알고 있어. 난 이 목소리를 알고 있어.

     

     

     [마리안느. 어둠의 힘은 훌륭해...... 너도 마음에 들 거다ㅡㅡ]

     

     

     (ㅡㅡ겨우 대악마 주제에! 물러나세요, 루시퍼!)

     

     

     돌아보지도 않고.

     통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나는 가슴속으로 외쳤다.

     

     (이건 내 싸움! 멋대로 손대면 분쇄시켜버릴 거예요!)

     [.....호오. 그렇기 때문이다, 마리안느. 역시 너는..... 너야말로ㅡㅡ]

     

     목소리가 단번에 멀어진다.

     온몸을 순환하는 마력, 그 전부를 오른손에 집약.

     정체되었던 시간이 가속한다.

     

     "blazeㅡㅡ!"

     "fallㅡㅡ!"

     

     혼신의 유성이, 눈앞의 문을 사슬 채로 분쇄했다.

     그리고ㅡㅡㅡㅡ

     

     

     

     

     

     

     나도 제시도, 마법을 사용한 자세 그대로.

     따가울 정도의 정숙.

     누구도,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하는 정숙.

     

     "..........."

     그렌 왕자가 레일로 걸어가서, 결과를 확인한다.

     깔린 레일의, 미세하게 절반에서 벗어난 지점이 부서져 있다.

     중심점에서 아주 약간, 정말 조금ㅡㅡ제시 쪽으로 다가간 포인트였다.

     

     "마리안느 피스라운드의 승리입니다."

     그렌 왕자가 고함과 동시.

     영빈관이 환호성에 울려 퍼졌다. 건투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떠들썩함 속에서, 나는 제시에게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GG."

     "엥 그거 무슨 말?"
     "앗차 착각했사와요. 좋은 결투였답니다."

     얼버무리면서 악수를 교환한다.

     졌는데도, 제시의 표정에는 후련함이 느껴졌다.

     

     "되찾았나요?"
     "......흥."
     "뭐 그거는 그거, 이거는 이거. 제 승리네요."
     "분하지만 그래. 불만은 없어......하지만."

     "다음은 없다, 네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답니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긴다, 겠지?"

     담대한 미소를 지으면서,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귀신이 떨어진 것처럼 딴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다른 쪽은 어떻게 되었나 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내 옆에 남자가 서 있었다.

     아키토다.

     

     "아......저기."
     "......아키토. 나는ㅡㅡ"
     "...............멋, 있었, 잖아. 그....."

     

     .......아~ 싫다 싫어. 사춘기냐고. 20세가 넘어서 그렇게 갈팡질팡하냐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모자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 자리를 물러나기로 했다.

     

     

     

     

     

     "이겼다......"

     로이 미리온아크는 놀라고 있었다.

     승부에 집착하는 기질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때에서도 이겨버렸다.

     

     "이야~ 통쾌하네~ 왠지 벽을 하나 뛰어넘었다는 느낌이잖아. 저 녀석 이후로도 팍팍 성장할 거라고."

     

     근처의 테이블에서 와인잔을 하나 들어서는, 미성년자용의 주스를 마시는 마리안느를 보면서.

     루거는 옆의 로이를 향해 놀리는 듯한 말을 던졌다.

     

     "약혼남 씨도 큰일이셔. 저건 확실히 아름다운 여자지만, 어쨌든 가열차단 말이지."
     "아아......그거 반대입니다. 그녀는 가열차기 때문에 아름답지요."

     로이의 즉답에, 루거는 쓴웃음을 지었다.

     

     "부모가 정한 약혼자라고는 들었지만......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구만."
     "물론이죠."

     젊음이란 좋구나, 하고 루거는 병을 기울였다.

     하지만 병은 이미 비어있어서,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ㅡㅡ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제3왕자 주최의 파티에서 돌아가는 길.

     어머니인 제시를 마차에 태우고 배웅한 뒤, 아키토는 혼자서 밤길을 걷고 있다.

     바람이 기분 좋았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는 말해도. 유품인 반지를 돌려받지 못했잖아)

     

     팔짱을 끼고 신음소리를 내며 길을 걷고 있던, 그때.

     턱, 하고 도로에 천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키토는 눈앞에 떨어진 천조각을 주워 들어서 풀었다. 그 안에는 금색의 반지가 부드럽게 감싸여 있었다.

     

     "이건......!?"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틀림없다.

     아키토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어머나, 떨어트리고 말았사와요."

     그곳에, 달을 등진 그녀가 서 있었다.

     2층 건물의 여관 옥상에, 수상쩍은 가면을 쓴 여괴도가 바람에 흑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렇다ㅡㅡ피스라운드 가면을 쓴, 나다.

     

     "저도 참 칠칠맞네요. 들켜버렸고, 신고당하면 성가셔지니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겠사와요."
     "기, 기다려 피스라운드...... 가면!"

     

     등을 돌리고 호쾌하게 떠나려고 할 때.

     아키토가 날 불러 세웠다.

     

     "......너한테는 감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라라. 저는 당신의 소중한 걸 훔친 강도인데요."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그렇게 했어야 했다, 고 생각했어. 사교계에서 결투라니 생각도 못했다고."

     켁 들켰어!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걸 스스로도 알겠다. 엥 큰일인걸, 어떻게 알았담?

     

     "왠지 모르게..... 생각했었어. 왜 유품을 빼앗았는지."
     "전리품인데요."
     "어머니의 증명은, 물건에 깃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 마음이야말로 본질이라고 가르쳐주려던 것 아냐?"
     "아뇨, 전리품인데요."
     "......훗, 그럼, 그런 걸로 쳐둘까."
     "아니 정말로 그런 건데요!? 뭐야 그 [난 알고 있다구?] 같은 표정!"

     

     비지땀이 솟구친다.

     왜 착한 사람처럼 취급받지. 농담이 아냐, 이쪽은 엄청난 각오로 악역영애를 하고 있다고!

     그야 뭐, 반지가 없는 상태로 제시의 활약을 본다면, 심경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아아, 걱정 마. 누구한테도 말 안 해. 하지만 공방에 올 때에는 말해. 네 상대라면 아낌없이 최고의 장비를 마련해줄 거라구. 그렇게는 말해도 필요 없지 않나 싶지만."

     거기까지 말하고서, 아키토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아 맞다! 마침 그게 있었다!"

     "?"

     "그 촌티 나는 가면보다 나은 걸 만드는 편이 좋지 않겠어?"
     "당신 정말로 죽여버립니다!"

     

     분함에 유성을 전개한다.

     아키토는 무섭네 무서워라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반지를 품에 넣고서 이쪽에 등을 향했다.

     

     "하아......"

     삼남의 등을 바라보면서, 바람에 흑발을 나부끼게 하며 한숨을 짓는다.

     뭐 어떻게든, 생각하고 있던 골에는 도달한 모양이구나.

     

     "......이걸로 봉사활동은 끝이에요."
     "그렇습니까."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건다.

     로브의 남자가 뒤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스라운드 씨. 제3왕자 전하의 전언은......"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판단을 맡길게요, 제3왕자 전하."

     그렇게 부르자, 로브의 남자는 움직임을 멈췄다.

     천천히 후드를 벗자, 달빛에 안경을 빛내는 그렌 왕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언제부터 눈치챈 거지요."
     "처음부터.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방금 후드를 벗었을 때부터네요."

     "예?"
     "아니, 왠지 당신, 중요한 장면은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분이 풀리겠구나 싶어서요. 적당히 말해봤을 뿐인걸요."
     "전, 미끼에 낚여버린 겁니까......!?"

     놀라는 기색의 그렌 왕자가 어깨를 떤다.

     

     "전령은 이렇게 말했었죠. [공방의 가동률이 낮아지고 왕국의 위신에 먹칠을 한다면, 아키토 레벨바이트의 존재가치는 마이너스입니다. 처리하세요]ㅡㅡ 전제조건을 제거했답니다. 아키토 레벨바이트의 존재가치는 아직도 마이너스인가요?"

     

     

    〇일본대표 오오, 그러네

    제3의 성별 마이너스 가치의 아키토는 확실히 처리했지

     

     

     "ㅡㅡ불만 없습니다. 사회 봉사 활동으로서 만점을 드리지요."

     "......감사해요."
     "흐음. 최고의 평가인데도 꽤나 의심하고 있군요. 전 슬픕니다."

     흑흑흑, 하고 그렌 왕자가 우는 시늉을 한다.

     이 녀석 혹시 S가 아니라 뻔뻔한 캐릭 아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외네요. 부정은 싫어하지 않았나요?"
     "제가 미워하는 부정이란, 악인이 선인의 가죽을 뒤집었는 일이지요."

     이상적인 대화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ㅡㅡ숨길 수 없는, 들끓어 오르는 증오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지으시면, 당신도 마찬가지가 된다고요."
     "글쎼요. 다만, 이 세상에서 부정을 근절할 수만 있다면 저는 그렇게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아...... 정말이지, 바보는 가족력이네요......앗." 

     

     이런 잘못 말했다! 진짜 왕자한테 바보라고 말해버렸어!

     어떻게든 수습을......아니......이제 귀찮아. 안경이라면 대부분 뭘 해도 용서해주잖아.

     조금 화가 나 있는 그렌 왕자에게,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건다.

     

     "화장이라는 걸 아세요?"
     "무시하는 거군요 그거. 식전 때는 저도 화장을 합니다만."

     "좋아요. 그럼, 화장을 하는 의미란?"

     왕자 전하는 턱에 엄지손가락을 대고서 몇 초 간 생각에 잠겼다.

     

     "그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예절을 위해, 자기주장을 위해....."

     "예.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험악한 색을 지우고, 자신이 수라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제동을 것이기도 한답니다."

     

     나는 왕자의 바로 옆까지 걸어가서, 그 얼굴을 꾹 움켜잡았다.

     

     ".....!?"
     "조금은 편하게 있지 그래요. 제가 보기로, 당신은 좀 더 느긋하게 움직일 수 있을 터. 의도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건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힘을 빼는 것이랍니다. 그것은 전투도 마찬가지고요."
     "......아니, 모든 이야기를 전투로 몰고 가는 건 좀 어떤가 싶은데요."
     "시끄럽네요! 사람이 모처럼 진지한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

     발을 구르며 분노를 표현한다.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렌 왕자는 얼굴을 다잡다가, 견딜 수 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후훗......과연. 힘을 빼는 법, 입니까......"
     "네. 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네요!"

     "흐물흐물하게는 되고 싶지 않군요."

     누~가 무척추동물이냐!

     

     

    〇무적  정말 그래. 네 수준으로 척추니 뭐니 하는 생물은 좀처럼 없다구.

     

     

     너어 진짜 한대 팬다!

     

     

     

     

     

     

     

     왕성, 식사의 방.

     아침 일찍 부자가 모여 아침식사를 먹는 것이, 아서가 정한 유일한 규칙이었다.

     제1~제3왕자와 아서가 식탁에 나란히 앉아 아침식사를 먹고 있다.

     

     "그래서, 어땠었나."

     아서가 그렌에게 말을 걸었다.

     마리안느 피스라운드의 심문 결과가 어젯밤 나왔다고만 보고받았다.

     

     "100점 만점의 120점이라고 해야겠군요."
     "호오. 웬일이래. 그렌이 그렇게나 높게 평가하다니."

     흥미롭다는 듯이 제2왕자가 소리 낸다.

     제1왕자는 흥미 없다는 듯 식사를 계속하고 있다.

     

     "일처리에 약간 난폭한 면은 있었지만, 효율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로서는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또한 관계자 누구한테도 쓸데없는 피해를 끼치지 않은 점이 큽니다."
     "전날의 선발 시합 때에는 정말 난폭한 여자다 싶었지만...... 그런 스마트한 면모도 있었을 줄은."
     "아뇨, 난폭한 여자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런가......"

     대체 어느 쪽이냐며, 제2왕자는 당혹해했다.

     왠지 기쁘게 말하고 있는 그렌에 반해, 아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흠. 귀족 간의 문제로 발전시키지 않고 레벨바이트 가문의 문제를 수습한 것은 훌륭하다. 그럼 100점이라는 것은 알겠지만.....추가점인 20은 어찌하여?"
     "아아, 그 20점은 저의 호의 때문이지요."
     "뭐?"

     진지한 그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에, 아서와 제2왕자는 입을 떠억 벌렸다.

     

     "피스라운드 씨는 재밌는 사람이더군요. 정말 재밌는."

     재빨리 식사를 끝내고서, 마지막으로 냅킨을 이용해 입가를 닦은 그렌은 일어섰다.

     

     "그렇게 되었으니, 아바마마. 언젠가 혼담 이야기를 꺼냈었지만, 전부 백지로 해주시길. 지금은 솔직히 피스라운드 씨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어? 뭐? 뭐? ......아아아아아니!?"

     아서가 식탁을 치며 일어선다.

     

     "죄송합니다, 아바마마......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기다려! 아니 정말로 기다려라! 설마 자식이 그런 말을 하는데 전력으로 반대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거늘!"

     

     온화한 표정까지 짓고 있는 삼남에게, 참지 못하고 아서가 절규한다.

     동시에, 제2왕자도 안색을 바꾸었다.

     

     "기, 기다려라 그렌! 이건 형으로서 간과할 수 없어! 너, 그런 야만족이라는 개념으로 들어찬 여자의 어디가 좋은 거냐!?"
     "어디라니, 그런 점인데요."
     "야만족 여자가 취향인 거냐!?"

     아침 식사 자리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서 있던 메이드들도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 볼일이 있어서 이만."
     "앗 잠깐......"

     호쾌하게 그 자리를 떠나려는 그렌의 등을 보며.

     아서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여자를 보는 눈도 교육시켰어야 했나."
     "그렌 녀석한테만 필요합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지요?"

     제2왕자가 고개를 돌리자.

     제1왕자는 아침식사를 먹던 자세 그대로 콧구멍을 팽창시키고 있었다.

     

     이제 이 나라는 끝장이 아닐까, 하고 메이드들은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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