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천위마술사 서열 5위(3)2022년 09월 09일 09시 43분 5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원문 : https://estar.jp/novels/22241232/viewer?page=1454
거의 기습에 가까운 타이밍에 당해버린 소스케는, 반격도 하지 못했다.
"무박자."
크롬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남과 동시에, 소스케를 주먹으로 다지기 시작한다. 연속으로 순간이동을 거듭하는 그 모습은 마치 램프의 깜빡임처럼 불규칙해서 타이밍을 종잡을 수 없다. 시점을 바꾸면 여러 명한테 멍석말이를 당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크롬의 공격은 그 정도로 극렬했다.
"사, 사토 씨!"
"괜찮으니 움직이지 마."
소스케는 후퇴하면서 딱딱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크롬의 손발은 소스케의 가드를 빠져나와 정확하게 급소만을 찌르고 있다. 이대로 대미지가 누적된다면 아무리 소스케라 해도 무사히는 안 끝난다.
"...과연.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나."
소스케는 입안에 고인 피를 뱉고서, 크롬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크롬의 기술의 자세한 원리까지는 ㅗ른다.
모르겠지만.
공간에 간섭한다는 점은 틀림없다.
그것도 시간계통의 간섭이다.
대개 미래로 날아가던가, 아니면 미래의 자신으로 변환할 수 있든가.
"뭐 좋아..."
중얼거린 소스케는, 크롬을 응시했다.
그녀가 다시 시야에서 사라진다.
다시 몇 수 나눴지만, 크롬의 접근은 기본적으로 이거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서 때린다.
대충 짐작해보자면 [접근해서 공격이 맞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생략하는 마술]이라는 걸까.
다시 말해 상대하게 되면 대응을 할 수 없다.
왜냐면 공격에 이르는 시간을 대폭 삭제시키니까 당해낼 리가 없다.
크롬이 사라진 시점에서 반응해서, 공격할 장소를 미리 예측할 필요가 있다.
소스케는 크롬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허공에 내질렀던 주먹은 정확하게 크롬의 관자놀이에 작렬. 옆머리를 얻어맞은 크롬은 약간 비명 같은 것을 흘리고서 맞은편 벽에 온몸을 부딪혔다.
".........."
운 좋게 맞아 든 점에 안도한다.
틀림없는 저스트 미트였다.
하지만 뼈가 부러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소스케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타점을 빗겨냈는지, 아니면 단순히 튼튼한 건지.
아마 후자일 것이다.
저 정도의 주먹은 웬만한 수련으로 손에 넣을 수 없다. 극한까지 육체가 강화되어 있다. 겐사이에 비견될 실력자다.
그렇다면 오래 끌지 말고 단기 결전으로 끝장낸다.
소스케는 온몸의 마력을 충만하게 만들고, 보다 강한 술식을 짜내기 시작했다.
시야는 점점 하얗게 물들고, 크롬 이외의 배경이 흐려진다. 이윽고 적만 보이게 되었을 즈음, 그녀의 눈초리도 날카로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안도 예지도 없이 이 기술에 카운터를 먹인 것은 당신이 9명째네요."
크롬은 공격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양손을 내리고, 다리도 단순한 직립. 그런 무방비한 자세의 의도를, 소스케는 재빨리 눈치챘다.
"어이어이ㅡㅡㅡ"
말을 걸자, 소스케의 등에 창으로 찔린 듯한 충격이 내달렸다. 감각으로 보아 중단 찌르기. 등뼈를 꺾을 기세로 얻어맞았다.
"윽ㅡㅡㅡ!?"
주먹을 뒤로 휘두른다.
하지만 볼에 닿기 전에 손목을 잡혔고, 주먹은 크롬한테서 멀어져 갔다.
힘의 흐름을 완전히 수중에 넣은 크롬은, 주먹의 기세를 빌어 그대로 업어메치기로 쓰러트렸다.
"실례."
유려하고도 빠른 속도로 소스케를 아스팔트에 패대기친다.
아무 특징도 없는 단판승부는, 지반을 깨트리며 소스케를 지하 깊숙하게 꽂아버렸다. 아무리 패대기치는 수준이라 해도 음속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하면 폭격과 다름없는 위력이 된다.
"ㅡㅡㅡ이 녀석...."
대지에서 기어 나오며, 손바닥의 먼지를 터는 크롬을 노려본다. 지금의 일격, 대비도 못했다. 저래서는 다음 움직임을 예측할 수도 없다.
"버티셨나요. 당신도 대단하네요."
크롬이 한걸음 내딛자,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날리는 시간을 연장시켜서 자세까지 생략시키는 건 예상 밖이었다. 그럼에도 유연하게, 때로는 무리하게 대응해야만 하는 것이 싸움의 기본이다.
크롬이 때릴 위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이제부터는 크로스 카운터를 각오하고 반격할 수밖에 없다.
혹은ㅡㅡㅡ
"풋ㅡㅡㅡ"
소스케의 볼에 미사일 같은 주먹이 명중한다.
분명한 클린 히트급의 느낌에, 크롬의 경계가 잠깐 이완되었다.
"그오ㅡㅡㅡㅡ"
목이 꺾여버릴 듯한 충격을 버티면서, 소스케는 크롬의 왼팔을 붙잡았다. 이제부터 추격타를 날리려던 크롬이 대응이 잠깐 늦어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방금 때린 것은 그 정도의 강타였던 것이다.
붙잡은 팔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또 한쪽의 손을 비틀며 배에 무릎차기를 넣는다. 그대로 짧게 기침을 하는 크롬의 뒷머리에 전력의 주먹으로 이어나가고, 무릎이 굽혀지자 턱에 손바닥을 친다.
막힘없이 들어간 3연격.
크롬은 수레바퀴처럼 회전하여, 대지를 통통 튀면서 날아가버렸다.
추격타를 날리려고 소스케가 땅을 내딛는다.
박차 오르려던 순간, 한쪽 다리에 강렬한 발차기가 들어갔다.
"아얏ㅡㅡㅡ"
축이 되는 다리를 얻어맞자, 참지 못하고 휘청인다.
어떻게든 쓰러지는 것만은 면했지만, 주춤거린 만큼 경직되고 말았다. 엉거주춤하는 소스케에게 안면을 향한 날카로운 발차기가 들어온다.
"ㅡㅡㅡ읏."
자세를 고칠 시간까지 생략하고 있다.
행동의 전후에 너무 연결점이 없다.
수많은 맹자를 쓰러트려온 소스케가 보아도, 거의 전례가 없는 능력이다. 어느 의미로 귀신의 전이보다 성가신 것일지도 모른다.
"일만오천련장.'
양손을 전속력으로 가속시켜서, 러시의 벽을 만들어낸다.
가능한 한 폭넓게 쳐서 광범위하게 주먹을 흩뿌린다.
하지만 이번의 크롬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리를 멈추고는, 소스케와 정면으로 맞서기를 선택했다.
"무박자 - 만주."
주먹과 주먹이 충돌한다.
폭죽처럼 끊임없는 파열음, 하지만 하나하나의 위력은 거대 요마도 쓰러트릴 수 있는 중격의 폭풍. 공격의 회전이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주먹 자체의 위력은ㅡㅡㅡ
'무거워...'
손을 섞을 때마다 주먹이 시큰거려서, 후퇴가 강제된다.
점점 밀리는 것이 눈에 선하다.
이유는 단순.
옆에서 보면 러시끼리의 부딪힘이지만, 사실 양측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모으는 시간의 차이다.
소스케는 회전율을 올리는 대신 한 발의 위력을 내리고 있다.
반면 크롬은 모든 일격이 풀 스윙.
다시 말해 짧게 끊어 쓰는 소스케의 주먹에 비해,
크롬은 크게 휘둘러 위력을 높인 뒤의 구타를 때릴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가 공간도약의 진수는 아니다.
풀파워의 공격을 무박자(노 모션)으로 내지르는 일이야말로, 크롬의 진짜 능력이다.
크롬은 난타의 호흡에 맞춰, 크로스 카운터의 요령으로 소스케의 볼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러고 나서 단번에 품에 파고들어서는 연환퇴로 턱을 재빨리 쳤다. 주춤거리는 소스케에게 러시를 재개. 1초도 되지 않는 빛의 구타는, 무방비한 소스케의 온몸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커헉..."
그럼에도 소스케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마치 지구에 뿌리라도 내린 것 같은 중심의 안정감.
"이 기술로 먼지가 안 된 자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사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쓰러진 인간은 요 몇 세기 동안 기억에 없다. 크롬은 그렇게 전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실력이라는 것은 변함없다.
"조금, 재밌어졌습니다."
크롬은 싱긋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
반면 소스케는 크롬의 기분 나쁜 내구력에 의문을 느꼈다.
맞았을 터다.
몇 번이고 맞았을 터.
옆에서 보면 경멸할 듯한 구타를 여러 번 먹였다.
그런데도, 크롬의 피부는 멍조차 없었다.
"후..."
순식간에 나았던지, 애초에 급이 다른 튼튼함인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소스케는 이거저거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어쩔 수 없지, 조금 도핑을 해볼까..."
"호오?"
크롬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움직이며, 소스케의 거동에 주의를 기울였다.
"들었던 대로,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거군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 검은 마력을 쓰면 끝나는 일 아닌지?"
"그건 주변의 피해가 너무 심하다고."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요?"
크롬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일일이 그런 생각을 하며 싸우다간 끝이 없을 텐데요."
"뭐,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것도 가능하겠지만..."
소스케의 눈가에 혈관이 불거진다.
혈관이라 해도 빨강이나 파랑이 아니다.
거게 변색된 선 같은 똑바로 된 문양.
얼굴만이 아닌, 소매에서 팔, 드러난 가슴에도 같은 것이 보인다.
하지만 외모보다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마력의 상승폭이었다. 마력이 작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량의 마력을 전부 술식을 변환하여, 다시금 육체를 강화시키고 있다.
"내 것은 자칫 하면 세상이 멸망해버리니까."
목을 우드득 거리고서, 소스케가 의연하게 한걸음 내디뎠다. 몸의 각 부위에 내달리는 검은 선은 두근거리며 맥박쳤고, 눈알은 완전히 칠흑으로 물들어 있다.
"이것은..."
예상보다도 심각한 증세다.
말로 듣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과는 인상이 전혀 다르다.
이걸 억누르는 것이 아닌, 의도적으로 봉인을 해제하는 술식을 새긴 자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럼, 저도 전력으로."
휴우, 하고 심호흡하면서, 체내의 마력을 증대시킨다.
"무박ㅡㅡㅡ"
퍽.
마언을 영창하기보다 빠르게, 단단한 무언가가 볼을 때렸다.
시야는 회오리에 휘말린 것처럼 어지럽다. 곧장 자세를 회복하려고 마력을 짜내지만, 공간에 간섭하기 전에 대포 같은 주먹이 배를 관통했다.
"크윽ㅡㅡㅡ"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러보지만 정작 소스케가 안 보인다.
기척의 잔향조차 안 남았다.
그 정도로 빠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동수단을 얻은 것인지.
어쨌든 1초 후에 뛰어서, 자세를 잡고 태세를 정비하기까지 시공간을 도약한다.
소스케가 눈앞에 있다.
품까지 파고든 왼발.
부서지는 대지.
크롬은 극한까지 신경을 민감하게 연마하고서, 날아오는 스트레이트에 손등을 맞대었다.
돌리고, 받아 흘린다.
공방의 이미지를 굳히면서, 주먹과 맞닿은 손목을 뒤집는다.
하지만 주먹의 궤도는 변하지 않았다.
대신 날아간 것은 크롬의 손목이었다.
"ㅡㅡㅡ읏."
몸을 숙여서, 주먹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뒤를 쫓는 머리카락에, 엄청나게 빠른 것이 통과했다.
"과...연...!"
빙글빙글 도는 손목을 공중에서 움켜잡고는, 그대로 절단면에 갖다 댄다. 1초도 지나지 않아 신경이 통하자, 아무 문제없는 수준까지 복구되었다.
"프라모델이냐고."
거리를 두려는 크롬에게, 소스케가 달려든다.
빠르다.
크롬보다 빠르다기보다,
크롬의 사고 속도보다도 빠르다.
그런 속도가 존재하나 의문으로 생각할 정도의 가동속도. 분명히 인지를 초월하고 있다.
"잘 보았습니다...
하악... 역시 디 그리피아에 선택된 신살자로군요..."
그런데다가 아직 비장의 수를 아끼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크롬은 입가를 들어 올리고는, 육체에 걸어놓았던 봉인을 해제했다.
"그럼 저도... 전력으로 상대해드리죠."
투둑투둑.
뭔가 혈관이 끊어지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린다.
잘 보니 크롬의 눈동자가 변이 되었다.
안구가 금색으로 변색되고, 가느다란 선이 세로로 나 있다. 호랑이나 고양이와 비슷한 눈이다.
"당신, 그 얼굴..."
크롬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 전보다 빠르지만, 쫓지 못할 속도는 아니다.
크롬을 선회해서 루트를 한정 짓고는, 잠깐 주춤거린 차에 손날을 뻗는다. 인체의 급소를 타격하면서, 손바닥을 가슴팍에 갖다 댄다.
"허작대포."
펑.
크롬의 내부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쿨럭..."
식도에서 역류한 혈액이 입안에서 흘러나온다.
불의의 일격, 그것도 치명적인 일격.
보통이 기술이 아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팔극의ㅡㅡㅡ
"십일만오천련장."
약간 보였던 것은 검은빛이었다.
벽과 장막 같은 미지근한 것이 아니다.
구타의 파도.
크롬은 싸울 트도 없이 홍수에 삼켜져서,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마구 두들겨 맞았다.
"ㅡㅡㅡ악...!"
러시는 단 1초.
그 사이에 몇 방을 맞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뼈가 부서졌다.
부서지면 회복하고, 다시 부서지기를 반복.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따라가지 못한다.
'아직 이 정도로는ㅡㅡㅡ'
그렇다면 더욱 봉인을 해제할 수밖에.
하지만 지금의 소스케한테서 그 틈을 찾아내기란,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했다.
"어디에도 안 보내."
밑에서 밀어 올리듯이 내지른 손바닥에, 크롬은 상공으로 치솟아올랐다. 이걸로 피해는 전무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반을 향해 쓸 때와는 주변 피해가 천지차이다.
이대로 때리고 있어도 끝이 안 난다.
복구하고 있다면 그 자체를 파괴한다.
"칠천련소작대포."
한 줌의 이물질도 없는 칠흑이, 크롬이라는 존재를 검게 물들인다. 이제 두 번 다시 서지 못하도록 면밀하게 육체를 짓이긴다. 일현의 공격이 끝날 때까지는 수 초에 불과하다. 그 사이, 소스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대기는 전부 소실되었다.
◇
이겼다.
그렇게 확실하기에 충분한 느낌이 주먹에 남아있다.
리미터까지 해제하고서 패 버린 것이다.
이걸로 전투를 속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해치웠나?
라는 플러그를 세울 것도 없다.
혼까지 조각내버린 것이다.
이만큼이나 했으면 그리 간단히 일어날 수는ㅡㅡㅡ
"... 이 정도일... 줄은..."
의외로 금방 일어난 크롬 씨를 보고 혀를 찼다.
뭐냐 이 사람 거짓말이지.
고기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날려버릴 기세로 때렸는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훨씬 괴물에 가까운 존재인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더 위험한 걸 먹여주마..."
언제까지고 질질 끌 수는 없다.
여기서 이렇게 일부러 크롬 씨가 나타났다는 것은, 견문의 탑에서 역시 뭔가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력으로 쓰러트린다.
"조천초작..."
"졌습니다. 저의 패배입니다."
크롬 씨가 양손을 든다.
기브 업인가.
생각보다 싱거운데.
뭐, 크롬 씨한테는 조금 신세 진 은혜가 있다.
아무리 적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에서 끝내도 좋을 것이다.
또다시 공격해 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다.
"이 이상 하게 되면 영맥이 다치게 됩니다.
이 정도로 해주시길."
"딱히 전 이대로 해도 상관없는데요."
"이쪽이 못 버팁니다."
그런가.
왠지 제멋대로인데 이 사람.
"그럼 구속할 테니 순순히...앗."
왜 말하는 사이에 사라졌냐고.
우와 실패했다.
먼저 손발을 날려뒀어야 했다.
◇
"...하악...하악..."
온몸에 느껴지는 둔통에 몸을 찌푸리면서, 크롬은 숲 속을 달리고 있다.
실력을 오판했다.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결코 칭찬받을 결과는 아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고, 크롬은 우뚝 정지했다. 시선 끝에는, 긴 금발의 여자가 서 있었다.
아는 얼굴이다.
"샘의...정령인가요..."
분명 이름은 엘레인.
크롬은 호흡을 정돈하면서, 눈앞의 정령을 경계했다. 하지만 본인은 싸울 생각이 없는지, 가볍게 손가락을 들면서,
"...당신, 저기, 그거죠? 이름, 뭐였더라?"
"...저는 크롬 G 로젠베르그라고 하는데요."
"크롬? 그거 언제부터 그렇게 이름을 댔지요?"
"글쎄요. 꽤 예전의 일이라서."
크롬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이 이름의 유래도, 본래의 이름도,
전부 잊어버렸답니다."
"...............그런가요."
엘레인은 약간 서글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스윽 길을 양보했다.
"...보내도 괜찮은가요? 저는 부상을 입었는데요."
"원래부터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보다 이길 수 없고요."
엘레인은 아주 조금 부루퉁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뭐라고나 할까 그, 외모가 많이 변했네요.'
엘레인의 중얼거림에, 이번에는 크롬이 갸우뚱하였다.
"그래요?"
"뭐, 저 이외에는 그다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요."
"자신의 몸가짐에는 신경을 못 쓰는 법이라서요."
뚝.
크롬의 이마에서 흐른 핏방울이 지면에 빨려들었다.
"...이야기는 끝났나요?"
달리려고 하는 크롬의 갈길을, 엘레인이 손으로 조용히 제지했다.
"...아아, 잠깐만요. 하나 여쭙고 싶은 일이."
"뭐지요?"
"이름, 떠올리는 편이 좋아요.
정말로 잊었다면 말이지만."
"..........."
크롬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거머쥔 손바닥 안에는, 아직도 미세한 열기가 깃들어있다.
"... 필요 없는 일입니다.
결국 이름 따윈 기호에 불과해요.
지금 와서는 집착도 없답니다."
"막 바꿀만한 것도 아니지만요."
엘레인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젓고서, 크롬의 모습을 품평하는 것처럼 시선을 훑었다.
"키, 자랐네요?"
"기억도 잘하셔라. 하지만, 역시 과거의 흥미는 없답니다."
크롬은 인사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서, 엘레인의 곁을 달려갔다. 엘레인은 어깨너머로 그녀의 등을 바라보고는, 작게 한숨을 지었다.
"어디서 뭘 하나 싶더라니..."
속세에 관여하기 거부하기를 수백 년.
한참 예전에 고향으로 돌아갔나 싶더니, 아직도 이 세계에 머물러 있을 줄이야.
그 이상으로, 악의 조직에 손을 빌려주고 있다는 것이 엘레인으로서는 놀라웠다. 긴 시간의 앞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식으로 추억에 잠겨있자, 엘레인의 발치에서 뇌신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야, 지금 녀석?"
"모르시는 건가요?"
"...후쨩 알아?"
뇌신은 고개를 돌려 풍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풍신도 짐작 가는 게 없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것 참, 이래서 대신재 시대의 어린애들은... 저런 것도 모르는 건가요."
"하아? 뭐야 당신.
할멈이 우쭐대지 말라고."
"죽여버립니다."
폭발한 엘레인과 뇌신을 무시하고서, 풍신은 크롬이 달려간 방향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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