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잔잔한 태도(3)2022년 08월 22일 11시 09분 3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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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 넌 여기서 도망치는 것만 생각하면 돼. 너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지?]
"구해준 모두를 놔두고...?"
[그 '모두'라는 건, 네게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데?]
"..........."
대답은 바로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어중간한 마음으로 돕고 싶다면 그만둬. 그래선 누구도 구할 수 없으니까]
"...아니."
[뭐?]
떨리는 입술로 자아낸 말은, 의외로 열기가 깃들어 있었다.
"확실히 전 아무것도 못하고, 가도 걸림돌만 되는 건 알지만... 어중간히 결정한 건 아...니에요."
아니, 어중간해서는 안 된다.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는 것 정도, 알고 있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은 있다.
[타인을 이유로 몸소 나서려는 건가?]
"...생소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
그 한 마디를 어떻게 알아들었을까.
미녀는 의외라는 얼굴로 눈썹을 찌푸리더니, 시선을 맞추지 않고 대답했다.
[...너, 역시 저 녀석과 좀 비슷하네]
"그 녀석이라뇨...?"
[나인을]
"나인쨩과...?"
[뭐, 조금이지만]
말을 끝내고서, 미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어딘가 기쁜 듯한, 혹은 그리워하는 눈동자로 미코를 바라보면서,
[...한 가지, 방법이 있다]
"............"
[일반인인 네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죽을 정도로 뒤가 켕기지만, 뭐 할배가 나온 시점에서 다른 방법은 없나...]
미녀는 포기한 것처럼 탄식하고는, 천천히 거머쥔 주먹을 바라보았다.
[...어이 미코]
"네."
[그만한 각오가 있다면, 내가 조금만 힘을 빌려주마]
"저, 정말이요....?"
[하지만 그 방법은, 이번엔 네가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괜찮겠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모를 정도로, 미코는 무지몽매하지 않다.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그걸 충분히 이해한 다음, 미코는 조용히,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로 모두를 구할 수 있다면, 할게요. 하게 해 주세요."
◇
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히 울리고 있다.
"의외로 버티는구먼."
겐사이는 혹강을 휘둘러 붉은 피를 떨구면서, 빈사 상태인 소스케와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기세가 좋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전혀 없다. 엘리제를 비롯한 약자들을 감싼 탓에, 본래라면 피할 부상을 입어서다.
하지만, 그렇게 전국을 움직이게 한 것은 겐사이였다.
그럼에도 아직도 서 있다는 것은, 겐사이가 보기에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봐줄 생각은 없다. 그들은 공격을 막을 만큼의 대책을 짜고서, 최소한의 마력으로 그때그때 버텨온 것이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쇠한 것은, 내 쪽인가."
애초에 적의 태반은 그로기 상태였다.
설령 수가 많다고 해도, 이래서는 체면이 안 선다. 늙었다는 것은 이렇게나 무섭다. 겐사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칼끝을 향했다.
"항복해라. 이 이상은 소용없다."
최후통첩을 내뱉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동자는 지금도 불타오르기만 할 뿐.
특히 소스케는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인지, 초점이 안 맞는 눈동자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안 끝났다고."
"그런가."
그 정도로 단호한 의지로 막아선다면, 이쪽도 상응하는 힘으로 쓰러트려야만 한다. 그림자를 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빅토르도 같은 기백이리라.
"그렇다면 그 투지에 응해, 나도 전력으로 너희를 쓰러트려 주지."
혹강을 칼집에 되돌린다.
그리고 조용히.
천천히.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겐사이는 또 한쪽의 칼ㅡㅡㅡ백도 유운의 손잡이에 손을 대었다.
자세는 낮은 하단.
도신을 칼집에 넣은 채, 칼을 뒤로 흘리는 독특한 자세.
침묵ㅡㅡㅡㅡ
"오."
갑자기 마린의 어깨가 떨렸다.
조각상처럼 굳어있는 겐사이는, 어딘가 식물과 비슷했다. 분재라고 예를 들어도 좋을까. 생명이 깃들었음에도 너무나 정적인 몸을 하고 있는 그것은, 일종의 예술품과 통하는 면이 있다.
"흠..."
여기선 떠나는 편이 좋다.
무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이제 0호밖에 없다. 그리고 애초에 이런 것은 전문 외다. 싸우는 건 싸울 수 있는 자들만 하면 된다.
마린이 한걸음 물러선다.
거의 동시에, 소스케와 빅토르가 대지를 박찼다.
"힉.'
그에 따라 생겨난 폭풍이, 마린의 몸을 강타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 죽어가는 몸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뒤에서는 두 사람의 동료들이 지원의 태세에 들어가 있다.
아마 이걸로 끝낼 생각인가 보다.
"잔잔한 태도 - 진."
그리고, 소리가 멎었다.
왜 멎었는지는 모른다.
모르지만, 갑자기 멈췄다.
겐사이에게 움직임은 없었다.
그런데도, 사라졌던 두 사람은 갑자기 나타나더니 지면에 풀썩 쓰러졌다.
파리채에 맞은 파리처럼.
그것만이 아니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위도, 늑대 신수도 한꺼번에 쓰러졌다.
그런데다가 뒤의 벽에는, 한 줄기의 깊은 흠집이 새겨져 있다.
길고 긴 흠집ㅡㅡㅡ 대체 얼마나 깊게 벤 것인가. 아무래도 이 층계 전체를 절단한 모양이다.
그리고 어떻게 베었는지, 쓰러진 자에게 출혈은 없다.
여기까지 오면 머리가 아파온다.
"...........어?"
유일하게 서 있는 자는 시키가미 코즈미 뿐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다.
"아직이다..."
마린의 등줄기에, 방금과는 다른 의미로 오한이 달렸다. 모두가 조용히 쓰러진 와중에서, 거의 노타임으로 일어서는 소스케의 모습은 좀비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네놈."
이것만은 겐사이도 예상 밖이었는지, 그 얼굴은 경악에 차 있었다. 겐사이는 진심을 낸다고 말했다. 그래서 비장의 무기를 써서 진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도 쓰러트리지 못했으니, 동요도 무리는 아니다.
"소 군...그 이상은 이제..."
새파란 얼굴로 그를 말리는 시키가미 코즈미였지만, 그것은 마린도 약간 공감할 수 있었다.
"코즈미의 말대로, 그 이상 움직이면 목숨이 위태로울 게다."
"...그런 걸로, 내가 죽겠냐고."
피투성이인 상태로 웃는 소스케에, 마린은 광기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 정신이 돌아버린 게 아니라면, 빈사상태에서 저렇게 웃지는 않는다.
"죽고 싶은 겐가?"
"...날 죽이고 싶다면, 어딘가의 마왕이라도 댓고 와."
".........."
겐사이가 눈을 내리깐다.
그리고 본 적 없는 얼굴로, 다시 유운에 손을 댔다. 끝장낼 셈이다.
그 모습이 시키가미 코즈미한테는 사신처럼 보였는지, 그녀는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갑자기 소스케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할아버님... 이 이상은 이제...!"
"비켜라."
"말에는 따를게요! 그러니...!"
"비키라고 말했다."
어딘가에 불이 붙었는지, 겐사이는 공격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내버려 둬도 끝나겠지만,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기보다 먼저, 소스케 쪽이 쓰러질 것 같았지만.
"...어이 코즈미, 그만둬."
"싫어요...!"
"...괜찮으니까ㅡㅡㅡ"
감싸는 코즈미를 말리려고 앞에 나선다.
빙글 하면서, 세상이 일그러진다.
'이런...이제 피가ㅡㅡㅡ'
시야가 돈다. 이제 한계다.
아니, 한계는 이미 넘어섰다.
그래서 소스케는 의지로 버티고 있다.
단 한 마디를, 겐사이에게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자기 손녀딸 정도는 사이좋게 대하라고.
소중히 하는 방법은 비뚤어진 방법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최소한, 가족의 인연은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도 이룰 수 없는 모양이다.
의식이 어둠에 물들어간다.
점점 기울어지는 새빨간 몸이, 곧장 지면에 빨려 들어서ㅡㅡㅡ
"사, 사토 군!"
그걸 지탱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나긋나긋한 양손으로, 쓰러지려는 소스케를 안아준 사람이.
가느다란 팔.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몸을 제대로 받아내주고 있다.
코즈미ㅡㅡㅡ는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떨면서 소스케를 안아주고 있다.
"이, 이제 괜찮으니까...!"
안심시키려 했는가.
쥐어짜내듯이 내놓은 그녀의 말은, 역시 두려운 기색을 띠고 있다. 애써 지은 미소도, 장난감 가면처럼 어설프다.
"이, 이제는 내게 맡겨...!"
이를 딱딱거리면서, 사사미네 미코는 확실하게 단언했다.
◇
소스케를 바닥에 내려놓고서, 사사미네 미코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
예상 밖의 사태에, 겐사이가 눈썹을 찌푸린다. 그림자가 풀렸다? 아니. 빅토르는 그런대로 마력을 담아두었다.
저것이 해제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저곳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이다.
"사사미네 씨...어째서 여기에...!"
그리고 그 경악은, 코즈미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인인 미코가, 설마 스스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 안 돼요! 빨리 그림자에..."
"괘, 괘괘괜찮아... 그러니...!"
미코는 지금이라도 졸도할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뭐하러 왔나?"
"다, 당신들을, 말리러 왔습니다!"
순간, 겐사이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사사미네 씨! 부탁이니 그만두세요!"
코즈미가 핼쑥한 표정으로 미코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미코는 말없이 고개 저었다.
"..시키가미 씨. 나 말이야,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어."
".........."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모두를 도울 차례라고 생각해."
"사사미네 씨..."
코즈미의 팔을 살짝 떨쳐내고서, 미코는 다시 굳세게 한걸음을 내디뎠다. 나아가는 쪽은 겐사이. 그제야 겐사이는 처음으로, 미코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허튼 놀이가 아니라면, 이쪽도 상응하는 태도로 임해야만 한다.
"소녀여. 그 행동에는 실력이 따라야 하는 법."
"....알고 있어요."
"그런가."
혹강에 손을 댄다.
그와 거의 동시에, 미코는 정면으로 손을 들었다.
"...............?"
겐사이의 움직임이 멎었다.
미코가 이제부터 무엇을 할지, 정말로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ㅡㅡㅡ
[여...열려라, 개척하라, 아뢰어라]
순간,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 자리에 폭풍이 몰아쳤다.
[시원을 엮는 개벽의 왕]
[종국을 담당하는 시간의 문]
천천히 자아내는 2절에 응해서, 미코를 중심으로 마법진이 전개된다. 회중시계를 본뜬 백과 흑의 술식은 단번에 확대되어서, 층계 전체를 감쌌다.
'뭐냐, 이건ㅡㅡㅡ!?'
겐사이는 당황했다.
눈부실 정도의 마력의 격류는, 분명히 미코 본인한테서 발생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있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큰 경악은, 미코가 자아낸 영창 자체에 ㅇㅆ다.
[운하를 삼키는 봉우리]
[지평선을 뒤덮는 구름]
[한 줌의 바다가 그릇을 채운다]
다시 이어지는 3절이, 겐사이에게 결정적인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 노래 같은 독특한 영창ㅡㅡㅡ 틀림없다, 이것은ㅡㅡㅡ
'천언술식ㅡㅡㅡ!?'
경악에 휩싸이는 동안에도, 미코가 내뿜는 마력은 제한 없이 증가하였다. 마치 지하에서 솟아나는 물처럼, 혹은 막힘없이 떨어지는 폭포처럼.
[군림한다]
[계약에 따라 나의 혈육은 나무인형이 되어]
[그 영혼에ㅡㅡㅡ]
"그만!!"
아무 주저 없이 발도한다.
저것이 발동되는 이상, 이제 일각의 유예도 없다. 겐사이는 이 이상 없이 가속하여, 검봉으로 미코의 옆구리를 쳤다.
"우웃!?"
하지만 그것은 사이에 끼어든 하얀 미녀에 의해 막혔다. 방치 시간이 너무 길었나. 방금 전까지 죽어갔던 나인이, 직전에 자기 몸으로 미코를 감싼 것이다.
"나인쨩!"
"계속하라구!!"
일갈하면서, 나인이 겐사이에게 달려든다.
그것이 결정적인 틈이 되었다.
[구, 군림한다!]
마법진이 더욱 격하게 빛을 낸다.
요동치는 마력은, 이제 인지가 측정할만한 영역을 뛰어넘었다.
[계약에 따라 나의 혈육은 나무인형이 되어]
[그 영혼에게 건네줄지니!]
그리고 드디어 완성되는 영창.
그에 비례해 눈이 충혈되는 겐사이가, 달라붙는 나인을 재빨리 베어버렸다.
아니, 베어버렸을, 터였다.
칼을 휘두른 직후.
뒤늦은 타이밍에, 겐사이는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얻어맞고 날아갔다.
"크으ㅡㅡㅡㅡ윽!!?"
겐사이는 트럭에 치인 듯한 기세로, 뒹굴거리며 벽면과 격돌했다.
하지만 나인은 그걸 바라보지도 않고, 단지 눈앞에 선 여성에게 눈길을 빼앗겼다.
"......아."
나인은 물어보았다.
"........선, 생, 님?"
그러자 미코는 대답했다.
"여어 나인. 오랜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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