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5화 회담
    2022년 02월 15일 11시 45분 1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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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52eo/16/

     

     

     

     구름 하나 없이 청명한 하늘이다.

     아주 조금 피부가 시리지만, 이 시기로서는 따스한 편이다.

     "좋은 날씨라서 다행이네요."

     "맞아."

     희고 커다란 모자를 손으로 받쳐 들면서, 쟈넷은 플로라에게 대답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려 살랑거리고 있다.

     마련된 마차는, 쌍두사륜마차. 사고 났던 것과 같은 크기다.

     "소풍하기 좋은 날이라 다행입니다."

     여자치고는 키가 큰 시녀가, 커다란 바구니를 품으며 웃는다.

     "네."

     쟈넷은 싱긋 웃었다.

     채굴장에 돌아오고 나서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일이다.

     오늘은 현장도 쉰다. 쟈넷과 플로라는 캐주얼한 드레스를 입고 마차에 올라탔다.

     "부탁해."

     쟈넷이 문을 닫으려는 구르마스에게 부드럽게 미소 짓자, 구르마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부석에는, 구르마스 외에도 새롭게 시녀 라스아가 앉아있다.

     라스아는 하리스의 명으로 쟈넷을 호위하러 온 군인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시녀]로 되어있다. 제왕 자네스한테는 아마 쟈넷의 감시라고 전해놓았을 것이다.

     라스아를 만났을 대, 쟈넷은 그녀가 지난번에도 자신의 저택에서 일했음을 깨달았다.

     그때는 하리스의 명으로 호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경계하며 가능한 한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라스아는 귀여운 얼굴이지만 방심할 수 없는 눈초리를 하고 있고,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다. 반면 시녀로서의 스킬은 약간 낮아서, 그런 부분이 [그야말로] 스파이입니다, 하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 쟈넷이 마음을 허락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조금 생각한다.

     그렇지만, 채굴장으로 돌아가서 일을 재개하고 나서, 쟈넷은 몇 번이나 사고를 당했다.

     라니아스 대신으로 온 남자는, 표면은 온화하지만 항상 날카로운 눈으로 쟈넷을 보고 있다.

     하리스가 호위로 보낸 라스아가 없었다면, 저택의 안전조차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마 지난번에도 그녀의 도움을 꽤 받았을 것이다.

    ㅡㅡ한마디 해줬더라면.

     지난번 그렇게나 고독에 내몰릴 일도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말수가 적은 것은 하리스 뿐만은 아니다. 쟈넷도 마찬가지다.

     차창의 풍경이, 편자소리와 함께 흘러간다.

     마차는 천천히 산길로 들어갔다.

     "언니, 길이 다른데요."

     플로라가 놀라며 쟈넷에게 고한다.

     "아니. 이게 맞아."

     쟈넷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오늘은 프레이벨의 호구에 갈 거야."

     "예? 오늘은 스사라 천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

     플로라가 놀라서는 눈을 휘둥그레 한다.

     "미안. 실은 황자님과 약속이 있어. 방범상 비밀로 하고 싶어서 말이야. 넌 바로 얼굴에 드러나잖니."

     "어머. 전하와의 약속인가요."

     쟈넷의 말에, 플로라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네요. 요즘은 왠지 뒤숭숭하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비밀의 만남이라니, 로맨틱하네요."

     "......그렇네."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는 플로라에게, 쟈넷은 애매하게 수긍했다.

     가슴이 고동이 빠른 것과 평소보다 긴장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다ㅡㅡ하지만 그걸 플로라에게 솔직히 말할 필요는 없다.

     이윽고 숲의 나무들 저편에, 푸른 수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프레이벨 호는, 꽤 커다란 호수다.

     꽤 멀리 있는 건너편 강가는 언덕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백아의 커다란 성이 있다. 황족의 휴양지인 [남쪽 별궁]이다.

     목적지는, 그 건너편의 깊은 숲 쪽에 있는 바위굴이 있는 만(灣)이다.

     바위굴은 숲과 물의 신 메사를 모시는 신전이기도 하지만, 일부의 나무꾼을 제외하고는 기도하는 자도 없고, 신관도 없다.

     풀이 무성한 공터에 마차를 세운 쟈넷 일행은, 호수의 만이 있는 쪽으로 들어갔다.

     이 주변은 숲과 바위가 빽빽해서 건너편 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새의 지저귐이 이어지고, 태양은 머리 위에서 빛난다.

     "플로라. 넌 여기서 라스아하고 점심 준비를 해줄래?"

     "네. 언니."

     쟈넷은 라스아에게 눈짓을 하고서, 구르마스와 함께 말의 울음소리가 난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모래톱에서 한걸음 숲으로 들어간 길의 옆에 있는 나무에 말 두 마리가 매어져 있고, 그 옆에 두 남자가 서 있다.

     "오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쟈넷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쪽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하리스가 싱긋 웃는다.

     "표정이 딱딱해."

     어깨를 탁 두들기자, 쟈넷은 마지못해 미소 지었다.

     "역시, 긴장되네요."

     "홍련의 마술사공으로서는 약한 모습입니다."

     하리스의 뒤에 서 있던 루드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저 혼자의 일이라면 이렇게나 긴장하지는 않아요."

     휴우~ 하고 쟈넷은 한숨을 쉬었다.

     "이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으니까요."

     말하면서, 쟈넷은 바위굴 쪽으로 걸어갔다.

     "그쪽의 몸상태는 어떤가, 구르마스."

     쟈넷을 안내하던 구르마스는, 잠깐 황자 쪽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사유는 보고드린 대로입니다. 안전하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와일은 그렇게나 노골적인가?"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교활합니다. 거기다 확실하게 쟈넷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가......"

     쟈넷은 언짢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지난번]보다 잘 굴러가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라니아스가 부상당한 탓에, 새롭게 쟈넷에게 온 군인 와일은, [자객]이다.

     누가 보냈는지는 모른다.

     지금은 [사고]를 가장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언제 직접 칼을 들이대도 이상하지는 않다.

     오늘의 외출 장소를 거짓으로 말한 것도, 와일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리스 님이 결정한 이상, 이의를 제기하는 건 본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두 분의 약혼에는 반대입니다."

     구르마스가 투덜거린다.

     "그래."

     쟈넷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황자님의 약혼녀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고생할 일도 없었긴 해."

     "......일에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불필요하게 풍파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구르마스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입을 닫았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안내할게."

     쟈넷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에 작은 불빛을 만들어냈다.

     바위굴의 입구는 사람 1명이 들어갈 정도의 높이인데, 안쪽까지 나 있다.

     길이 구불거린 모양인지, 조명을 비춰도 안쪽이 안 보인다.

     "하지만, 쟈넷 님."

     "괜찮아."

     쟈넷은 그렇게 말하고서, 조명을 켠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동굴로 들어갔다.

     이윽고, 동굴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광장이 나왔다.

     커다란 폭포다. 천장 쪽에서 물이 떨어져서는, 바위 사이를 흘러간다.

     숲과 물의 신 메사의 석상 앞에 작은 불빛을 비추며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세 남자였다.

     "비즐님."

     쟈넷은 가장 앞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를 끼쳐드렸습니다."

     "아니......네쪽이야말로, 잘 결단했구나."

     나이든 대지의 마술사는, 쟈넷의 뒤에 있는 남자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황자님."

     쟈넷은 하리스를 보호하는 위치에 서면서, 비즐 쪽으로 안내했다.

     기다리고 있던 세 남자들 중, 가장 젊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하리스는 눈을 부릅떴다.

     "이쪽이, 레리어트 백작의 영식입니다."

     쟈넷의 말에, 남자는 공손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프레드릭이라 하옵니다ㅡㅡ지금은 은룡이라고 자칭하고 있습니다만."

     "너는......"

     "예, 야회에서 뵈었습니다."

     주눅 들지 않고, 은룡은 하리스를 올려다보았다. 도전적인 눈이다.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

     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본다.

     공기가 팽팽해지자, 폭포 소리가 더욱 시끄럽게 느껴진다.

     "......쟈넷한테 말을 건 것은, 귀공의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괴롭힘이었나?"

     "설마요. 제정의 근원을 동요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은룡의 입가가 들린다.

     "실제로도, 전하의 마음에 폭풍을 일으켰을 터. 다릅니까?"

     "그만둬, 프레드릭."

     은룡의 옆에 있던 신관복의 남자가 무릎을 꿇으면서, 서둘러 하리스에게 머리를 숙인다.

     "전하, 이 남자가 뭔가 실례되는 짓을 했다면,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너는?"

     "저는 멘켄트. 불의 신을 모시는 신관입니다."

     "절 구해주셨던 분이에요."

     쟈넷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쟈넷으로서도, 두 남자가 반발하는 일을 원해서 만나게 한 것은 아니다.

     "은룡. 내 마음에 폭풍을 일으켜서 뭘 하려는 거지?"

     "홍련의 마술사공은 변혁의 깃발. 그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제가 받아도 문제는 없지 않을까 해서."

     "프레드릭!"

     멘켄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든다. 하지만 은룡은 신경 쓰는 기색 없이 하리스를 올려다보고 있다.

     "마술사공은 누구보다도 화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변혁]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서요."

     "저는."

     쟈넷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게는......성스러운 화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쟈넷은 한숨지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요."

     화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도, 가장 중요한 성스러운 화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불은 쟈넷의 몸을 불태울 뿐이었다.

     "마술사공은 이미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멘켄트가 고개를 들더니 그렇게 고했다.

     "아마 마술사공이 없었다면, 전하께서 여기에 오는 일도, 저희들이 여기에 오는 일도 없었겠지요."

     멘켄트는 쟈넷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당신으로 있으면 그걸로 됩니다. 전에도 그렇게 말씀드렸듯이."

     살짝 미소 짓는 멘켄트.

     "비즐 공을 통해 전하께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확신했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저희들은, 성스러운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치세를 원할 뿐입니다."

     은룡은 하리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제왕 자네스에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제당하며 괴로워하는 한 여성을 구해주지 못한다면, 제왕이 바뀌어도 시민들의 생활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겁니다."

     "황자님은 자네스와는 달라."

     쟈넷이 무심코 끼어든다.

     "아양 떨고 꼬리 칠 뿐의 귀족과는 달라. 내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황자님 뿐이었으니까."

     쟈넷이 싱긋 웃으며 하리스를 본다.

     "아버지가 붙잡혔을 대. 난 죄인처럼 취급받았어. 수갑이 채워지고 재갈을 물려서, 제왕의 앞으로 끌러 나왔어."

     "......모두, 쟈넷의 힘을 두려워했으니까."

     하리스의 목소리는 씁쓸했다.

     "황자님은 [아버지가 제왕의 옆에 있는 이상, 채굴장의 책임자에 어울리는 대우만 해준다면 이 여자는 폐하께 충성을 맹세할 겁니다] 라고 말씀해주셨어."

     쟈넷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난 제왕의 개로 일하기보다, 차라리 죄인으로서 처형당하고 싶다고 생각했어......하지만 아버지나 플로라의 일을 생각하면 이걸로 잘됐다고 생각해."

     "쟈넷."

     당혹의 표정을 지은 하리스에게, 쟈넷은 미소로 돌려줬다.

     "나의 일 뿐만이 아냐. 황자님은, 제왕한테 큰 이견을 내놓지는 않았어. 하지만 아주 조금씩이지만 사람들의 생활을 지키려고 해왔어. 그것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구르마스나 루드 쪽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름이 불린 구르마스와 루드는 쟈넷의 얼굴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꿔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황자님의 약혼녀로 지원했어. 황자라는 지위라면 어떤 사람이든 괜찮았던 게 아냐."

     은룡의 소리 죽여 웃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남편 자랑을 할 줄이야."

     "네가 이상한 도발을 했으니까."

     질린 것처럼, 멘켄트가 중얼거렸다.

     "잘 됐습니다, 하리스 님. 마술사공이 싫어하지 않아서."

     놀리는 것처럼 루드가 말하자, 하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럼 홍련의 마술사공을 믿고, 전하 당신에게 걸어보지요."

     은룡이 싱긋 웃었다.

     "좋아."

     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룡에게 손을 뻗었고,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했다.

     "일단, 아버지를 구출해야만 하겠네요."

     쟈넷이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그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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