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4화 결의
    2022년 02월 15일 09시 19분 1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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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52eo/15/

     

     

     

    ㅡㅡ어쩌다 이런 일이 되어버린 거람.

     결국, 군의 사무국에서 훗날 사람을 보내겠다는 통지를 받은 쟈넷은 백작가로 돌아가게 되었다.

     순회마차가 안된다는 이유로, 하리스가 자기 마차로 보내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작은 쌍두마차이기는 하지만, 호위로 기병 두 사람이 마차의 앞뒤에 따라다니고 있다.

    ㅡㅡ숙모님이 깜짝 놀라겠어.

     쟈넷은 어깨를 으쓱했다.

     두 사람이 앉는 것을 기다린 다음, 문이 닫혔다. 천천히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말이 없는 쟈넷을, 하리스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보내주시지 않아도 괜찮았는데요."

     쟈넷의 말에, 하리스는 무심코 웃었다.

     "순회마차로 돌려보낼 수는 없어." 

     "하지만 황자님이 직접 바래다 주시지 않으셔도......"

     "내가 함께라면, 호위가 있는 건 당연하니까."

     하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보았다.

     "하지만, 나 자신도 위협받고 있으니 더욱 위험해졌을지도 모르겠다만."

     "황자님을요?"

     "뭐 그렇지. 요즘은 특히 자주 느껴......내 경우, 상대는 뻔하지만."

     그것은 [제왕]의 명령이라는 걸가.

     편자 소리가 멀게 들린다. 차내에서 바깥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쟈넷."

     하리스가 이름을 부르자, 쟈넷의 심장이 큰 소리를 낸다.

     새삼스럽지만, 좁은 공간에 두 사람만 있다는 것을 쟈넷은 의식했다.

     "난 너를 만날 때까지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하리스의 손이, 쟈넷의 손등에 살짝 포개진다. 커다란 손이다.

     "아마 폐하의 의도겠지만, 내 주변에는 현실을 가르쳐줄 인물이 없었다......단 한 명을 제외하고."

     덜컹, 하고 마차가 흔들린다. 잠깐 떠버린 몸이 의자로 돌아왔을 때, 쟈넷과 하리스를 가로막던 약간의 공간이 사라졌다.

     "레리어트 백작을 알고 있나?"

     "......화염의 체벌을 당한 분이요?"

     그 이름은, 어제 다른 남자한테서 막 들은 참이다.

     "그래. 레리어트는 발트 황자의 측근이었다. 내정에 밝은 수재라는 평판이었지만, 건국사를 편찬하는 한직으로 쫓겨났다."

     "그런가요."

     "난 역사가 좋아서 말이야. 레리어트가 제도를 방문하면 말을 걸고는 했지. 레리어트는 장래 내가 제왕이 되었을 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가르쳐줬다. 이 나라가 얼마나 성스러운 화염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하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탄식했다.

     "칠 년 전. 내가 열일곱 일 때였다. 레리어트는 반역자로서 마을과 함께 불태워졌다. 물론 국정에 대한 반발세력에 대한 본보기였지만......아마, 폐하는 내게 못을 박은 것이었겠지."

     하리스의 손이 쟈넷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 손은 약간 떨리고 있다.

     "레리어트가 정말로 반역을 꾀했는지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만일 진짜로 반역을 꾀했다면, [나]를 추대하려는 움직임 정도는 보였을 거다."

     하리스를 [발트 황자]의 자식으로서 추대한다면, 반 자네스의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레리어트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었다."

     프로파드의 마을이 불태워짐과 동시에, 반 자네스의 세력은 뿔뿔이 흩어졌다. 자네스의 권세는 공고해졌고, 성스러운 화염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불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되었다.

     "신분을 버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혼자서 기반을 얻을 수 있을까. 결국 떨쳐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마을로 나가보면, 압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싫어도 눈에 들어온다. 신분을 버리고 자기만 편해져도 좋을까.

     하지만, 자네스를 거스르면 죽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다ㅡㅡ그 사실이, 하리스의 기력을 쇠하게 하였다.

     "그런 때......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그 안에 불빛을 가져오려 하는......네가 나타났다."

     "저는......"

     쟈넷은 고개를 저었다.

     "제멋대로일 뿐인걸요. 주변이 보이지 않아서, 제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두 번째이기 때문에ㅡㅡ안다.

     아버지를 구하고 싶다며 초조해할 뿐이었고, 하리스의 입장이 미묘하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구르마스가 일을 충실히 해줬다는 점도. 그리고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도.

     하리스의 손의 체온을 느끼면서, 이전과 전혀 달라져가는 현재의 자신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쟈넷은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버지를 구하고 싶은 마음. 그건 제가 딸이라서 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알고 있다. 왕의 지팡이를 물려받지 않고 성스러운 화염을 다루는 방법은, 아마 데니스만 알고 있을 거다."

     "네?"

     하리스는 쟈넷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성스러운 화염을 계승하려면, 보석과 왕의 지팡이. 그리고 피다. 왕의 지팡이는, 지금까지 역대 제왕들이 주욱 물려받아온 것이다."

     "지팡이......"

     지팡이는 성스러운 화염을 다루는데 필요한 것이다.

     "아버지는......황자님의 도움이 되고 있는 거네요."

     그렇기 때문에......아버지는 처형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형해야만 했다는 말은, 황자에게 반기를 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말해두지만, 변혁의 힘을 갖고 있는 자는 내가 아닌 너다."

     하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쟈넷에게 손을 뻗자, 머리카락에 살짝 닿는다.

     "제게는, 바꿀만한 힘이 전혀 없는데요......"

     목숨을 걸어도, 성스러운 화염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홍련의 마술사로서 자신이 가진 힘을 전부 사용했음에도, 미래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넌 이미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무심코 바라보는 하리스의 눈동자는, 깊고 상냥하다.

     하리스의 손이 쟈넷의 볼을 어루만진다.

     "내 약혼녀는, 원래 리아나였을 것이다."

     "......그렇네요."

     쟈넷이 억지로 지원해서 끼어들지 않았다면, 이미 리아나는 하리스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리아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리자, 쟈넷의 가슴이 찌릿하며 아파온다.

     "말해두지만, 내가 그걸 원했던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저항하는 게 귀찮았을 뿐이었지."

     커브에 들어선 것일까. 마차가 흔들거리더니, 차체가 기울어졌다.

     튀어 오른 두 사람의 몸이 한쪽으로 밀려난다.

     자세를 바로 하려던 쟈넷은, 그대로 하리스에게 어깨를 안겨졌다.

     쟈넷의 가슴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하자, 몸이 확 뜨거워진다.

     "......저, 커플을 억지로 갈라서게 한 여자라고 자주 들었어요."

     화끈해진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딴 곳을 바라보는 쟈넷이 중얼거렸다.

     실제로도, 식전에서도 야회에서도 하리스와 리아나가 함께 서면 좋은 그림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건, 재상의 안색을 신경 쓰는 녀석들 뿐이다."

     하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애초에, 리아나는 제비와 같은 타입의 여자다. 좋아하는 게 아냐. 차기 제왕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회에서 하리스가 쟈넷을 끌어안고 있어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하리스의 마음이 아닌 하리스의 부인이라는 지위뿐이니까.

     "리아나가 상대가 된다면, 나는 사육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살았을 테지......나를 바꾼 것은, 너다."

     "그건, 좋은 쪽으로 바뀐 걸까요......"

     어깨를 안기면서, 하리스의 체온을 느낀다. 정말 기분 좋다. 이대로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고 원해버릴 정도의 편안함이다.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어요."

     "솔직히, 나도 몰라. 다만, 살아있다는 느낌은 들어."

     어깨를 품은 손에 힘이 깃든다.

     "나는 화염을 다스려 보이겠다."

     그것은......제왕 자네스를 쓰러트린다는 의미다.

     쟈넷은 무심코 하리스를 바라보았다.

     호흡이 느껴질 정도의 근거리. 그 깊은 눈동자 안에 쟈넷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달콤한 공기가 두 사람을 휘감는다.

     쟈넷의 턱에 하리스의 손이 닿고, 두 사람의 거리가 더욱 좁혀지던ㅡㅡ그때, 말이 울면서 마차가 섰다.

     차창으로 바깥을 보니, 백작가가 보인다.

     "하리스 님."

     창 바깥에서 황자를 부른다.

     "그래."

     하리스는 쟈넷한테서 몸을 떼고는,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어오자, 쟈넷은 달콤한 취기에서 깨어났다.

     하리스가 결심한 일은, 간단하지는 않다.

     쟈넷 자신의 힘으로 그걸 도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쟈넷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황자님."

     마차에서 내려온 쟈넷은, 하리스에게 속삭였다.

     "레리어트 백작의 자식이 살아있다고 한다면......만나보시겠나요?"

     "......뭐?"

     하리스의 얼굴이 경악에 휩싸인다.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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