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9. 아들
    2021년 12월 05일 18시 57분 4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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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71/

     

     

     그것은 조용한 것이었다.

     비팅이 빛속성이 되겠다는 것을 정하고, 1학기의 종합성적이 아가씨보다 웃돌아야 한다는 과제가 나왔다. 아직 속성이 정해지지 않아서 실기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려운 상태에서도, 약간이지만 순위가 아가씨보다 올라간 그녀는, 분명 상당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아가씨가 봐줄 리도 없었을 테니,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위 50위까지 내걸린 게시판에서, 비팅은 아가씨의 친구들과 함께 기뻐하였다.

     성적이 발표된 그날, 아가씨와 레오는 파혼의 수속을 밟았다. 준비하고 있던 서류에 사인을 할 뿐, 이라는 간단한 것이었다.

     몰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대적으로 노출시키지도 않은 파혼 절차는, 학생회실에서 조용히 끝났다. 내가 그 자리에 입회한 것은, 아가씨가 먼저 나가기 위한 구실을 위해서였다.

     전 약혼자 끼리 미소 지으며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그게 두 사람답다고, 바라보던 나는 그런 감상을 느꼈다.

     돌아가자면서 늠름히 미소짓는 아가씨를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고 머리 한쪽에서 생각하였다.

     

     

     기말시험이 끝나자, 경기대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도학교 부지 내에 병설된 기사훈련교와의 교류 시합을 하는 것이다. 공부로 지친 학생들의 스트레스의 발산을 목적으로 한 체육제 같은 것이다.

     

     "저기, 정말 나도 참가해야만 해?"

     

     "에룬스트 가문 사람이 싸우지 않고 도망치다니, 언어도단인데요."

     

     "그래! 하인츠 씨의 제자라면 우승을 노릴 정도의 기백을 보여!"

     

     아니, 확실히 에룬스트 가문의 하인이지만, 난 단순한 견습정원사인데.

     아가씨의 호위인 반장과 포치가 주는 압박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둘 다 스포츠 모드로 스위치가 들어갔다. 역시 기사 훈련생은 체육계가 많은 모양이다.

     

     "켁."

     

     일단 되도록 다치지 않게 힘내자, 라면서 토너먼트 형식의 첫 대전 상대를 보고, 무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경기장은 원형의 사발 모양인데, 전생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로마 제국이 무대인 영화에 나왔던 원형경기장으로만 보이는 구조였다.

     

     "설마, 이런 기회가 올 줄이야."

     

     희희낙락하며 미소 짓는, 쾌청한 하늘과 같은 눈동자. 기뻐 보이네.

     

     "꽤 진심으로, 살살해줘."

     

     "봐주기는 잘하니까 안심해."

     

     심판이 준비하도록 호령을 하자, 레미아스는 빼든 도신에 푸른 화염을 두른다. 그거, 아무리 봐준다 해도 최소한 화상인데.

     레미아스는 기합을 가득 넣고 검을 들었고, 나는 모습만 그럴듯한 자세를 취했다.

     심판이 신호를 준 순간, 나의 목이 있던 곳에 푸른 일섬이 들어왔다.

     

     "역시 피하는가."

     

     "아니, 너, 목......."

     

     거합베기 정도의 속도로 목을 노린다면, 누구든 피할 거잖아. 레미아스는 피한 것이 재미있다며 웃지만, 난 전혀 재밌지 않다.

     

     "....... 안심하라고 말했잖아."

     

     "저, 정말로 잘하네. 봐주기."

     

     눈 깜빡이는 사이에 도신을 둘렀던 화염은 사라졌고, 검끝이 목구멍에서 불과 몇 cm앞에서 딱 정지해 있다.

     경기장에 몇 초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심판이 승패의 결과를 선언한 순간, 환호성이 솟아올랐다. 레미아스에 대한 칭찬의 세례였다.

     승자인 레미아스가 검을 칼집에 넣고는, 패자인 나에게 손을 내민다

     

     "어울리게 해서 미안. 하지만, 즐거웠어."

     

     "넌 그렇겠지."

     

     좋은 시합이었다며 싱긋 웃는 레미아스의 손을 빌어서, 난 일어섰다. 코니의 말대로, 레미아스는 그 나름대로 성장한 모양이구나.

     그런 감상을 느끼면서 퇴장한 나는, 관전석으로 향했다.

     

     "...... 뭐야, 이거??"

     

     관전석에 도착하자, 아가씨를 비롯한 에룬스트 가문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부상은 입지 않았겠죠?"

     

     "그래. 조금 열기를 쐰 정도고, 괜찮아."

     

     "그럼, 됐어요."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자리에 앉았다.

     니코가 한 칸 비워서 아가씨의 옆에 앉아서, 필연적으로 나는 아가씨의 옆에 앉게 되었다. 내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포치가 1회전의 출전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포치를 배웅하고 관전이나 할까 생각하자,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자크."

     

     "벨, 너도 참가했었어?"

     

     나와 같은 실기용 교복을 입은 벨을 보고, 약간 의외로움을 느꼈다.

     

     "그래."

     

     수긍하는 벨의 모습에서 긴장된 모습이 엿보인다. 그것에 위화감을 느낀다.

     

     "어머, 이미 져버려서 장기인 마법을 쓸 수 없게 되기라도 했니?"

     

     니코가 농담으로 물어보자, 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1회전은 이겼다."

     

     "그럼, 왜?"

     

     내가 말을 건 이유를 묻자, 주저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 다음을 이기면, 레미아스와 시합하게 돼. 이자크, 내가 이기든 지든, 그 뒤에 좀 어울려주지 않겠어?"

     

     "그래."

     

     "그럼, 퇴장구에서 기다려줘."

     

     "그래."

     

     그 약속만 나누고, 벨은 발걸음을 돌려 떠나갔다. 분명, 지금은 여유가 없을 것이다. 떠나는 벨에게 니코가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아가씨는 걱정하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아 주었다.

     벨의 2회전 상대는 몇 분만에 승부가 났다.

     레미아스는 레미아스대로, 상대에게 전력을 덤벼서 순식간에 이겼다.

     그렇게 맞이한 3회전. 불과 물, 제각각의 마력량이 많은 자들의 승부라는 점도 있어서, 전 학생들의 주목을 받으며 레미아스와 벨은 마주 섰다.

     

     

     

     "...... 네 본심, 확실히 느꼈다."

     

     "...... 하지만, 나는 졌어."

     

     레미아스의 손을 빌려 일어선 벨은, 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주변의 목소리에 묻혀버릴 듯한 그 목소리에, 레미아스는 환성을 이겨낼 성량으로 선언했다.

     

     "귀공의 결의는 진짜다. 그러니, 예레미아스 폰 슈타덴의 이름 하에 나는 약속을 지킨다!"

     

     선언한 시선 끝에는, 관객석에 있는 코니의 모습이 있었다.

     얼마 안 지나, 퇴장구로 물러난 두 사람의 앞으로 코니가 달려왔다.

     

     "레미아스, 벨 군, 다치지 않았어? 왜 그렇게나....."

     

     "벨은 무사해. 난 생채기 정도는 있지만, 핥으면 나아."

     

     "얼굴의 상처는 핥을 수 없잖아요."

     

     코니는 약간 어이없다는 소리를 내며, 레미아스의 볼에 생긴 붉은 선을 손수건으로 눌러주었다.

     

     "그래서, 벨 군은 왜 그렇게 무리했어?"

     

     "레미아스와 내기를 했었다."

     

     져버렸지만, 하며 쓴웃음을 짓는 벨에게, 코니는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두 사람이 내기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기면, 코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히 말해주기로 했지."

     

     "왜, 그런 뻔한 말을......"

     

     "코니는 모르니까."

     

     힘없이 미소 짓는 벨은, 코니의 의견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방금 전의 싸움으로 벨의 진심이 전해졌으니, 난 이기든 지든 관계없이 그 조건을 듣기로 했다."

     

     "어. 잠, 잠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코니는 이제야 동요했다. 하지만, 그런 코니에게 레미아스가 무자비하게 고한다.

     

     "나는, 코니와 함께 있는 미래를 의심한 적은 없어."

     

     ".............에."

     

     "부모가 정한 약혼자니까, 그것만으로도 나는 코니와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든 상관없었다면, 굳이 코니와 놀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코니는 내가 모르는 일도 알 수 있도록 가르쳐주잖아. 벨도 놓친 것을."

     

     "그, 건."

     

     "나한테는 코니가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게 코니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벨한테 혼났다."

     

     미안하다며 직각으로 몸을 굽혀 머리를 숙이는 레미아스를 보고, 물어보기 어려워진 코니는 벨을 바라보았다.

     

     "벨 군."

     

     "계속 보고 있었으니, 알아차렸어. 적당히 좀, 눈치채. 이런 바보의 상대를 해줄 수 있는 거, 코니뿐이라고."

     

     상황과 들은 말은 이해한 코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썹을 내렸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코니는 계속 자기가 말했던 대로, 형식뿐일 약혼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 하지만, 난, 아싸고, 그것도 폐녀자고, 그리고 외모도...... 레미아스도 여자로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꼴리면 안 되었냐?"

     

     퍽, 하고 벨이 레미아스의 옆머리에 주먹을 꽂았다.

     

     "말을 좀 가려서 해, 바보!!"

     

     여자로 인식했다는 좋은 말도 있었잖아, 라며 레미아스의 낮은 어휘력을 벨이 탓했다.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깨지는 느낌이 대단하다. 레미아스로 보면 매우 진지했을 테니, 더욱 그렇다.

     

     "왜, 코니는 예전부터 여자의 몸이 되었다고!"

     

     "그러니까, 왜 그렇게 동물적인 표현만 하는 거냐!! 근육뇌는 이래서 안 돼! 코니가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코니가 이 정도로 싫어하겠어?"

     

     "너, 그 자신감이 문제라고 눈치채라고!"

     

     "...... 후후."

     

     평소대로의 대화에, 무심코 재밌어진 코니가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검승부를 하던 두 사람이 잘 아는 모습으로 코니의 있는 걸 확인하자 안심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응. 이게 레미아스야."

     

     싫어하지 않는다며, 코니는 소녀답게 웃었다.

     

     "벨은 너무 마력을 많이 썼을 테니, 선생님이 만일을 위해 양호실에 들르래."

     

     퇴장구로 이어지는 복도 구석에서 대기하던 나는, 기척이 희박해진 막을 풀고서 벨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알았어."

     

     벨은 알았다고 하며 레미아스와 코니와 헤어졌다.

     

     "벨 군을 걱정해준 모양이라, 미안. 고마워."

     

     "나도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유니의 감사에, 벨은 싱긋 웃었다. 그것이 아픔을 조금 견디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복도의 모퉁이를 지나던 차에 벨이 약간 휘청거려서, 나는 두 팔을 붙잡아서 지탱해주었다.

     

     "타이밍, 그걸로 괜찮았어?"

     

     "그래. 덕분에 살았다."

     

     그 이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은 한계였다며, 벨은 비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정신을 붙잡을 기력도 다한 모양인지, 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보이면 곤란할 상대는 이제 없다.

     

     "...... 그 녀석, 시력이 좋아서 나보다 먼저 코니를 발견했었지. 항상, 꼭."

     

     "응."

     

     "제일 먼저 코니를 찾아냈던 걸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 바보잖아."

     

     "그래."

     

     "코니도 흥미 없는 상대한테는 정말 무관심해.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레미아스를 돌봐주고는 해. 그런데도, 계속 자기 따위한테는 눈길을 안 준다면서......"

     

     나도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지, 하며 벨은 자조하였다.

     

     "레미아스는 바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코니는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돼. 그러니, 이걸로 잘 된 거야."

     

     납득하고 바랬던 결과라며 벨이 말한다. 나도 그걸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아파. 정말."

     

     "좋아했으니까."

     

     "응."

     

     고개를 끄덕인 벨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아픈 만큼 눈물을 흘리는 벨을, 한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아픔을 받아내는 각오로 승부를 건 벨은 대단해. 그런 벨을 존경한다.

     

     며칠 뒤에 열린 경기대회의 결승전은, 제2왕자이며 뇌속성인 볼프와 기사단장의 아들이며 화속성인 레미아스라는 빅매치가 열렸는데, 그 결과 올해의 우승자는 레미아스가 되었다.

     표창을 받는 레미아스에게 부럽다는 눈으로 박수를 보내는 벨을, 난 잊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종업식 날, 나는 불려 나왔다.

     

     "자크."

     

     "코니."

     

     말을 건 사람은 코니였다. 용건은, 벨이 기운을 차렸다는 것과 양호실로 데려간 것에 대한 감사다.

     벨은 어제 낮까지 누워있었던 모양이지만, 식욕도 생겼고, 오늘은 제대로 등교했다고 한다. 상심 때문에 밥을 못 먹는 타입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가르쳐 줘서, 땡큐."

     

     "아뇨."

     

     미소 짓는 코니를 보고, 나는 약간 눈을 부릅떴다. 그걸 눈치챈 코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런가요?"

     

     "전보다 표정 변화가 생겼구나 싶어서."

     

     "전에는..... 꽤 포기하고 있어서요."

     

     "무엇을?"

     

     "엑스트라 영애라서요."

     

     "코니는 코니잖아."

     

     "네, 그걸 요즘 깨달았지요."

     

     레미아스의 안에서 계속 코니라고 인식되었다고 알고서, 자기가 전생의 지식이 있는 탓에 엑스트라라는 역할에 사로잡힌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에르나도 비슷한 일로 고민하고 있었지."

     

     "자크 씨도 그래요."

     

     "뭐? 난 엑스트라조차 아닌데?"

     

     "그거예요."

     

     코니는 자주 보던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가서, 나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게임 바깥의 존재라는 인식 탓에, 이자크 씨는 자기를 왜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남의 일을 뭐라 할 주제는 안 되지만, 분명 뭔가를 놓치고 있다고요."

     

     "그, 래.......?"

     

     "네. 경험자가 말하는 거라고요."

     

     "잠시 생각해볼게."

     

     내 대답에 만족한 코니는, 좋은 여름방학을 보내라고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다.

     

     그런 과제를 품은 채 맞이한, 여름방학.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에룬스트 가문의 정원 작업을 돕는 나날을 오랜만에 보내고 있다.

     며칠 후의 휴일. 나는 비트 후작가를 방문하였다. 다니엘 님이 편지를 보냈는데, 시즌 오프로 귀향하기 전에 한번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입학 전에도 정기적으로 만났으니, 귀향 예정이 틀어지지 않도록 가장 빨리 휴일을 알렸었다.

     

     "오랜만이네, 이자크. 많이 자랐구나."

     

     "오랜만이에요. 그거, 전에도 말했었는데요. 다니엘 님."

     

     "그랬었나?"

     

     "말했었어. 하지만, 네 아버지를 닮아서 정말 커졌네."

     

     "아버지를 제치지 못한 것이, 조금 분하네요."

     

     "그러면 너무 커지는걸."

     

     재밌다는 듯이 웃는 아니카 님을 따라서, 마주 웃는다.

     식후의 차가 나올 무렵, 다니엘 님이 진지하게 말한다.

     

     "우리들도 이후의 일을 생각해서, 조만간 가문을 동생에게 맡기고 영지로 물러날까 생각 중이다."

     

     "그런가요..... 그거 섭섭하네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친구한테 은혜를 갚아주고 싶어서 말이야."

     

     상냥하게 미소 짓는 다니엘 님의 말의 의미를 몰라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자크, 우리의 양자가 않겠어?"

     

     "엥."

     

     "물론, 우리들에게 있어 이자크는 소중한 친구다. 가족이 되자고 생각한 전제로 그랬던 건 아냐."

     

     "그럼, 어째서......"

     

     "그렇게 하면, 같은 신분에 설 수 있어. 고백할 권리를 주고 싶은걸."

     

     아니카 님의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그리고, 찻잔을 놓고, 예절에 어긋난다고는 알고 있지만, 양팔을 테이블에 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 그런, 너무 알기 쉬웠나요?"

     

     "뭐, 그렇지."

     

     "류디아의 일만 이야기하던걸."

     

     우와. 들켰다. 부끄러워.

     

     "마음, 은 기쁩니다. 하지만 제게 갚아줄 은혜는 없다고 생각하고, 귀족이 된다니 그리 간단히 해도 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너와 이렇게 보낸 나날은 우리들에게 정말 훌륭한 것이었지.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들한테는 갚아주고 싶을 정도의 은혜였단다."

     

     "그리고, 이자크 군. 너 정도 나이의 자식을 양자로 들이는 건, 그만한 자격을 갖고 있지 않으면 제안도 할 수 없어."

     

     "어, 하지만......"

     

     "글자가 정말 예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전교 30등이 되었다고 들었어. 우리들과 식사하기 위해 배운 예절과, 에룬스트 가문에서 받은 종자로서의 교양도, 네가 배웠던 모든 것은 귀족이 되어서도 통하는 거란다."

     

     "저는, 정원사, 로......"

     

     그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원사가 되고 싶었다. 내가 꾸민 정원에서, 아가씨를 미소 짓게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아가씨가 다른 녀석에게 시집가면 그것도 볼 수 없게 되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자크, 차가 식겠어."

     

     듣고 나서야 찻잔의 존재를 떠올렸다. 다니엘 님의 권유에 따라 홍차를 한입에 들이키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두 분을 이용하게 되는 짓은, 싫어요."

     

     "응, 이용하렴."

     

     "그래. 우리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거니까."

     

     "그런.......!?"

     

     "귀족이 되려면 그런 일도 필요하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어도, 다니엘 님은 후작이라는 귀족이라고 이해했다.

     

     "그렇지만 바로 정하지 않아도 돼. 이자크가 졸업할 때까지는 기다릴 테니까, 제대로 생각해 봐라."

     

     "부모님 하고도 제대로 상담해야 해. 가족이니까."

     

     "예."

     

     하지만, 집에 돌아갔을 때에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결국 그날은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나는 아직도 부모님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크."

     

     "아가씨......."

     

     여름의 신기루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아가씨라고 깨닫자, 내 심장은 이미 약간 지쳐버렸다. 그걸 목소리로 내고 말았다.

     

     "왜 그래요?"

     

     내가 지친 목소리를 내어서 그런지, 아가씨는 걱정하면서 쓰고 있던 양산을 기울이며 고개를 가까이하였다.

     

     "잠깐 여름 태양이 원망스러워서."

     

     "잡초 뽑기가 힘들지요?"

     

     "그렇지는."

     

     내 적당한 대답에 납득하는 아가씨의 순수함이 무섭다.

     익숙한 나무 사이를 둘이서 걷는다. 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조금 앞을 나아가고, 뒤를 따라오는 아가씨가 가끔 내 콧노래에 맞춰 콧노래를 부른다.

     담장을 지나치자, 익숙한, 하지만 조금 그리운 광경이 펼쳐졌다.

     올빼미의 석상이 자리 잡은 자그마한 분수만 덩그러니 있고, 잔디만 펼쳐진 작은 광장. 내가 입학한 뒤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얀의 자습에 써도 좋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이 최초의 상태가 되어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작아졌구나, 여기."

     

     "우리들이 커진 거예요."

     

     "그렇긴 해."

     

     몇 걸음만에 분수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서, 역시 작아졌음을 느낀다. 아버지한테서 여기를 받았을 때는, 더 넓은 느낌이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저도 분수가 귀엽게 느껴지네요."

     

     지금은 아가씨의 시선 조금 아래에 있는 높이의 올빼미 석상. 예전에는 나도 아가씨도 이 올빼미를 올려다보았었다.

     

     "변하지 않았지만, 변했구나아."

     

     "그렇네요."

     

     왠지 이상해서, 조금 우습다. 누구가 먼저랄 것 없이, 미소가 배어 나왔다.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자, 아가씨가 가진 양산이 흔들렸다. 양산이 날아갈 것 같자, 아가씨는 양산을 든 팔이 이끌려서 자세가 무너졌다. 넘어지려는 아가씨를 지탱해주려고, 나는 순간적으로 아가씨의 양산을 든 손을 거머쥐며 또 하나의 손으로 몸을 부축했다.

     

     "위험했어."

     

     "조금 놀랐네요. 고마워요, 자크."

     

     넘어질 뻔했던 것이 부끄러운지, 더위 탓인지 약간 볼을 붉힌 아가씨가 수줍어한다.

     지탱한 탓에 가까이에서 그걸 본 나는,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동요에 휩싸여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아가씨를 세우고는, 한걸음 물러나 거리를 벌리고는 안도했다.

     

     "...... 아가씨의 남편이 될 녀석은 힘들겠어."

     

     이렇게 귀여운 아가씨의 옆에 있으면 몸이 버텨낼까.

     

     "에......?"

     

     "아."

     

     무심코 입밖에 내고 말았다.

     

     "아니, 그게, 아가씨는 인기가 많으니 슬슬 약혼을 신청하는 녀석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중에서 아가씨의 남편이 되다니, 분명."

     

     또르르 흐르는 눈물에 시선을 빼앗겨서,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가씨가 울고 있다고 인식하자, 사고가 정지된다.

     

     "......째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아가씨가 중얼거린다.

     

     "어째서, 자크는 그런가요!?"

     

     "뭐?"

     

     마지막에는 질타로 진화한 말을 듣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크...... 이전, 저를 울리는 자가 있으면 때려준다고 말했었지요......?"

     

     "아, 응."

     

     꽤 예전에 했었지만, 잊을 수 없는 약속을 확인하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의 양산을 들지 않은 쪽의 손이 올라가더니, 다음 순간 짝~ 하고 경쾌한 소리가 작은 정원을 독점했다. 내 얼굴에 아픔이 달린다.

     

     "됐네요! 이렇게 스스로 때릴 거니까."

     

     때리기보다는 싸대기였다는 건 둘째 치고, 내가 아가씨를 울리게 한 사실을 들이밀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가씨는 왜 지금 울며 화내는 걸까.

     

     "저, 자크가 저를 우선해서 자기를 무시하는 게 싫어요.....!"

     

     싫다고 처음으로 들었을지도. 나, 드디어 아가씨의 미움을 사는 건가.

     

     "어째서,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없는 것처럼 이야기 하나요!?"

     

     아가씨의 연청색 눈동자에는, 얼빠진 표정을 한 갈색 머리와 눈동자의 남자가 비치고 있다.

     

     "아무리 자크라 해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짓은 용서할 수 없어요!"

     

     아가씨의 눈동자에 비춰지고 있는 자는 나다.

     아가씨는, 나를 제외하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단순한 서민이고 마력도 적고 미남도 아닌 나는, 아가씨의 안중에 들어있지 않을 텐데.

     하늘색 눈에 비친 남자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하지만, 하지만, 여성향 게임의 엑스트라조차 아닌데...... 아.

     

     코니가 가르쳐 줬던 빠트린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눈치챘다. 나도 코니와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얼마나 아가씨를 좋아한다 해도, 나는 아가씨의 세상에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가씨의 세상에는 계속 내가 있었는데.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해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무심코 웅크렸다. 양손을 맞잡고는 엄지 부근으로 기울어지려는 턱을 밀어 올린다.

     그보다, 아가씨는 방금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정말?"

     

     "정말이에요."

     

     정말인지 물어놓고는 놀라버린 나.

     

     "아가씨, 너무 무방비하다고. 난 지금도 심장이 위험해."

     

     "그, 그건 이쪽의 대사라고요! 매번 심장에 안 좋았던 건 자크 쪽이라고요!!"

     

     그만 여태까지의 불만을 말했더니, 오히려 더욱 비난받았다.

     

     "아.....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 할 일인 것은 알겠지만, 지금은 하나만."

     

     내가 고개를 들자, 여자아이가 있다.

     나의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아이.

     

     "나도 아가씨를 좋아해. 정말, 기뻐."

     

     아가씨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물든다. 그 이유를 알자, 귀여움이 배가되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보니 저녁식사로 내가 좋아하는 스튜가 나왔다.

     저녁식사를 끝낸 후, 나는 결심하고서 말을 꺼냈다.

     

     "두 사람한테 할 말이 있어."

     

     "할 말이라니?"

     

     아버지는 일어서려다가 잠자코 다시 앉았고, 어머니는 식기를 물에 담가 두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저기......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아가씨를 좋아해. 그리고 아가씨도 좋아한다고 말해줬고."

     

     "그랬니? 잘 됐네."

     

     "그, 렇긴 한데..... 나 마침 비트 후작가 사람하고 아는 사이고 친하게 지내기도 해서, 양자가 되지 않겠냐고 들어서, 그..... 고민하고 있어."

     

     나, 설명 참 못한다.

     

     "그 비트 가문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니?"

     

     "아, 응. 정말 좋은 사람들."

     

     "그럼, 자크의 마음에 따르렴."

     

     내 설명으로도 전해진 모양인지, 어머니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뭘, 고민하지."

     

     아버지가 묻자, 난 어깨를 움찔거렸다.

     

     "정원사가, 되고 싶어, 서......"

     

     "왜 정원사가 되고 싶지."

     

     "정원을 만드는 게 좋아, 서."

     

     내 대답을 듣고,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정원사는, 본래 고용주의 소원에 맞춰 정원을 만든다. 에룬스트 가문처럼 우리들끼리 마음대로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그건 나도 아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사가 아니어도, 정원은 만들 수 있지."

     

     왜일까. 귀족이 되어도 정원을 만들면 되지 않냐고 말해주는 아버지의 말이 기쁘지 않다.

     

     "나,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이었어......! 하지만, 나, 아가씨를 좋아해서...... 그냥 정원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가씨를 웃게 해주고 싶어서....."

     

     "자크."

     

     흐르는 눈물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만 나는,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들었다.

     

     "뭘 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책망하는 일 없이 물어보았다. 그냥 심플한 대답을 말하라면서.

     나는, 이자크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만든 정원으로 아가씨를 웃게 해주고 싶어."

     

     "그게 가능해지려면?"

     

     "다니엘 님의 양자가, 돼야 해."

     

     눈물은 멎었다. 내가 대답을 내놓은 것을 확인하고서, 아버지는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자라고 나서는 거의 해주지 않았었다.

     

     "넌 내 자식이고, 정원사다."

     

     지금까지 중 가장 기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날 인정해주었다. 기뻐서 어찌할 도리도 없이, 볼에 홍조가 핀다.

     

     "나, 아버지의 아들이어서 다행이야."

     

     어디로 가든, 나는 데니스 바움가르트너의 아들, 이자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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