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민들레2021년 12월 02일 20시 06분 0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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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끝나려는 시기, 수업의 진행에도 익숙해진 나는 학교의 조경 관리소를 방문하였다.
학교의 부지가 넓은 탓에, 사무소의 옆에 정원사들의 숙소와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가 병설되어있다. 공동주택과 비슷한 구조의 이 숙소는, 다시 말해 사원 기숙사 같은 것이다. 그중 창고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사무소로 쓰고 있다.
"실례합니다. 누구 안 계신가요?"
사무소의 문을 노크해봤지만, 대답이 없다. 작업하러 나가버린 모양이다. 어쩔까 하고 조금 고민하다가, 수업이 끝난 다음에 오자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마침 돌아온 모양인 정원사 할아버지가 짐수레를 몰고 왔다.
"학생이 이런 곳에 무슨 볼일이여?"
학생이 오는 것은 드문 일인지, 할아버지가 의아해한다.
"저기, 전 이자크 바룸가르트너라고 합니다. 이후에 조금 작업을 돕고 싶은데요."
"도와준다니......? 아아, 네가 길드에서 말했던 꼬마인가."
말이 통한 모양이어서 안도하였다.
정식으로 입학이 결정되었을 때, 정원사 길드에 마도 학원에서 정원 일의 알바를 할 수 없을까 타진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업을 얼마나 받을지 들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수업에 익숙해질 무렵에 면접을 보러 가겠다고만 사전에 전해뒀던 것이다.
"나는 야코프라고 혀. 공부도 힘들텐데, 대견하구먼."
"몸이 둔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어느 정도 할 셈인댜?"
"1주에 3번을 몇 시간만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상관읍서."
"....... 정말인가요!?"
"그려. 노인네들 뿐이라, 높은 곳은 작업하기 어려웠던 참이었지 먼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알바의 허가를 받아서, 나는 표정을 빛내었다.
"하지만,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려면 조금 귀찮겠구먼."
작업하는 장소에 따라서는 사무소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일이 사무소에 들르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야코프 할아버지의 우려는 합당하다.
"아, 그거라면 괜찮아요. 이건 위에서 입을 수 있어서요."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꾸러미에서 위아래가 이어진 기다란 옷을 꺼내보였다.
그 자리에서 입어보자, 야코프 할아버지는 그거면 됐다며 웃었다.
알바를 하는 날의 작업장을 확인하고서, 나는 야코프 할아버지와 헤어졌다. 다른 정원사와는 작업할 때에 소개해준다고 한다.
학교 건물로 돌아가고 있자,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교복 차림의 영애가 3명 정도 대화하고 있었다. 착용한 리본은 없었고 손수건의 색으로 같은 1학년이라고 판단했다.
"그 애, 조금 뻔뻔하지 않아요?"
"아무리 무색의 그대라고 해도, 평민 출신이잖아요."
"류디아 님의 친구인 것을 빌미로, 왕자 전하한테 접근해서는......"
"그 애, 마력량은 많지만 속성이 발현되지 않아서 마법을 쓸 수 없는 모양이래요."
"그거라면, 몇 가지 방법이 있사와요."
"주제를 알려줘야겠네요......"
영애들이 미소를 흘리던 차에, 뚝 하는 소리가 나자 그녀들은 반사적으로 소리 난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옷이 든 꾸러미를 발치에 떨어트린 소리다.
"누구죠.....!?"
누군가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고, 근처의 나무 밑동가에 핀 민들레를 한 송이 꺾었다. 이 민들레를 든 채로 영애들의 앞까지 가서, 리더로 보이는 사람의 눈앞에 민들레를 내밀었다.
"이 꽃을 어떻게 생각하지요?"
"어....... 귀, 귀엽네요."
"그럼, 당신한테는 꽃을 짓밟는 것보다, 꽃을 사랑하는 편이 어울립니다."
"에."
민들레를 내밀자, 영애는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당신의 손은 꽃을 꺾기 위한 것이 아닌, 건반에서 나오는 소리를 음악으로 바꾸기 위해 있는 거잖아요?"
"앗......"
자신의 취미이며 특기를 꺼내자, 영애는 눈을 치켜떴다.
"당신의 바이올린과 함께라면, 사뭇 훌륭한 소리를 내겠죠."
"어, 떻게......"
또 한 사람의 영애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한걸음 물러선다.
"당신의 자수는 정말 섬세하다고, 당가의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설마, 당신......"
"당가의 아가씨를 흠모해준 만큼,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갈고닦는 편이 아가씨께서 더욱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미소 지었지만, 견제로만 들였는지 영애들은 입을 다물고는 떠나고 말았다. 그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탄식했다.
"아가씨는 정말 인기도 많아."
노력가인 아가씨는 여자한테도 인기가 있기 때문에, 팬이라고나 할까 친위대 같은 것이 생겨난 모양이다.
"광견 씨 치고는 의외로 과묵한 분이네요."
갑자기 등 뒤에서 소리가 나서, 나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다.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쭈뼛거리며 돌아보자, 풀숲에 숨은 것처럼 안경을 낀 영애가 손에 책을 들고 앉아 있었다. 나무의 기둥에 등을 기댄 것으로 보아, 누가 보아도 독서 모드다.
"주먹으로 협박하는 주의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니...... 난 딱히 여자를 두렵게 만들고 싶은 게....."
"그렇겠죠."
바른말을 했을 뿐이다, 라며 평탄한 음성으로 안경을 낀 영애가 내 의견에 동의했다.
"독서의 방해를 했다면 미안. 저기."
"저는 코르네리아 폰 쿤[각주:1]이에요. 바움가르트너 씨."
분명, 쿤 가문은 후작가이며 그녀는 같은 반 아니었나.
"죄송하지만, 하나 여쭈어도 될까요?"
"뭐, 뭔데?"
"만일 아니라면, 저를 망언을 하는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전제를 말하고서, 그녀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들어 올렸다.
"전생에 일본인이었나요?"
"응."
숨길 일도 아니라서 긍정하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 전생의 기억이 있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좋은가요."
"대략적이지만 기억하고 있어. 쿤도 그래?"
"네. 여기가 게임의 세계라는 것도 아시나요?"
"그런 것 같더라."
"그럼, 그대의 별과 상황이 다른 것은, 당신의 의도에 의한 것인가요?"
"아니? 에르나한테서 듣지 않은 한, 나는 그대의 별의 이야기를 거의 모르는걸."
"제3왕녀인 피리네 에르나 폰 로젠하임 전하도 기억을 가진 건가요."
조연 캐릭터가 전생 자라니,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에서 보면, 그녀도 에르나와 마찬가지로 전생에서 그대의 별을 플레이 했던 모양이다.
"실례했습니다. 저 후작 영애 코르네리아는, 이름만 작중에 나오는 레미아스의 형식상의 약혼녀. 그대의 별의 엑스트라 캐릭터입니다."
"엥, 그 녀석, 약혼녀가 있었어!?"
"그쪽에 반응하는 건가요."
아. 그러고 보니, 레미아스도 후작영식이고 귀족이었지.
"쿤 후작가와 슈타덴 후작가는 오랜 친분이 있고, 아버지들도 친구 사이예요 그래서 일단은 약혼을 하고 있을 뿐이고, 레미아스와는 소꿉친구 정도의 관계에 불과해요."
"그, 그랬구나."
너무 의외라서, 나는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난 그대의 별에 나오지 않으니 모르겠지만, 약혼자가 공략 캐릭터면 싫어?"
"아니요. 전혀."
"복잡하거나 하지는....."
"복잡한 것은, 최애 커플링의 약혼자가 되었을 때죠."
"최애 커......?"
"아, 용어를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저는 전생부터 현재 진행형으로 폐녀자라서요. BL을 좋아하는 부류라고 하면, 아시려나요."
"BL을 좋아하는데, 왜 여성향 게임을 해?"
"히로인은 1명밖에 없어요. 다시 말해, 히로인과 맺어지는 공략 대상은 한 명뿐이죠. 그럼, 히로인과 맺어지지 않은 캐릭터끼리 이어주면 만사 해결이에요."
소박한 질문을 했지만, 정말 진지하게 역설을 한다.
"폐녀자도 할만한 여성향 게임은 꽤 있어요. 그대의 별에서는 빨파 크라스타가 근본 커플링이고, 그 외에는....."
"미안. 난 들어도 아마 몰라."
"실례했습니다. 이런 대화를 할 기회는 오랜만이라서, 그만......"
흥분하고 말았다며 그녀가 사과했지만, 나로서는 침착한 것으로 보였다.
"주제가 엇나갔네요. 저는 폐녀자이기 때문에 복잡한 심정이랍니다."
"그런 법이야?"
"네. 실제 커플은 범주 외여서요."
허용범위는 2.5차원까지입니다, 라고 설명했지만,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까이 있는 동성과 연인 사이라고 생각되면 싫지 않겠어요?"
"성별은 어찌 되었든, 난 좋아하는 녀석이 있어서 다른 녀석과의 사이를 오해받으면 곤란해."
".....바움가르트너 씨는 착한 분이네요."
"? 고마워."
"다시 말해, 그런 뜻이에요. 저는 현실에 살아있는 사람의 성벽까지 왜곡하고 싶지는 않아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법이죠. 이것은 폐녀자 나름의 긍지예요."
"그래서, 레미아스와 벨 군과 실제로 알고 지내게 된 이상, 망상의 소재가 줄어든 것이 조금 아쉬워서....."
후우, 하며 그녀는 한숨을 지었다. 미안. 그 아쉬움에는 공감할 수 없겠어.
"그러고 보니, 왜 나한테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모르는 분이 그대의 별의 주요 캐릭터와 친근한 시점에서 이레귤러의 가능성이 짙잖아요. 가장 큰 원인은....."
"원인은?"
"레미아스가 여자를 잘 대하게 되어서요."
"예에??"
레미아스와 너무나 안 맞는 평가를 말하자, 나의 사고는 정지되었다.
"세세한 일뿐이에요. 손을 잡는 힘을 느슨하게 해 준다던가, 먼저 뛰어가지 않고 보폭을 맞춰주게 된다던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었지만, 조금은 제 의견을 들어주게 되거나. 히로인과 만날 때까지 개선될 예정은 없었고, 히로인이 나타난다 해도 레미아스 루트에 간다는 법도 없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 개선되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지긋이 응시한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마침, 로이 전하의 시중을 들게 된 시절부터 그랬어요."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꽤나 나댔었지."
"역시 당신도 관여하고 있었네요."
그녀는 내가 레미아스에게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떠올려보아도 뭔가 했던 기억은 없다. 레미아스는 항상 변함없는 레미아스였다.
"그렇게 말해도, 나는 꽃이 무사한지 체크했을 뿐이라고?"
"바움가르트너 씨는 무자각 계통인 모양이니까요."
"뭐야 그거?"
"근본부터가 선인이면, 자칫하다간 이렇게 되는 거네요."
"그러고 보니, 에르나 이외의 전 일본인과 대화하는 건 처음인데. 왠지, 쿤은 대화하기 쉬워."
"그건, 조금 전 분들처럼 저를 영애로 대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앗차."
"아뇨, 그러는 편이 저도 좋아요."
"난, 전생에서는 다나카 타이치라고 했어."
"저는......"
내가 전생의 이름을 가르쳐주자, 마찬가지로 대답하려고 말하다가, 고개를 약간 숙였다.
"왜 그래?"
"...... 저, 지금도 수수하지만, 전생에서는 더 수수한 얼굴이었어요."
"응?"
어째선지 외모의 이야기를 한다.
"이름값을 못한다고나 할까요......"
"난, 계속 외모도 이름도 보통이었는데."
전생부터 흔한 이름과 평범한 외모였던 나한테, 이름값 운운해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내 말에, 그녀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다음, 평탄한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공략 대상이 아니었네요."
힘이 빠진 듯 웃는 모습에, 그녀가 웃고 있다고 알아차렸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기 힘든 타입인가 보다.
"저는, 츠키오카 안쥬(月岡杏樹)였어요."
"장남이라고 해서 이름에 1이 붙은(田中太一) 나보다, 훨씬 생각해서 붙인 이름 같아서 좋은데?"
"그럴지도 몰라요."
이름의 유래를 아버지한테서 들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뭔가 생각한 그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성씨보다는 다나카 쪽이 부르기 쉽긴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통하지 않겠네요."
"그럼, 별명인 자크라고 불러. 나도 츠키오카 쪽이 부르기 쉽지만."
"그럼, 저는......."
"코니, 이런 곳에 있었나."
"벨 군."
숲길 쪽에서, 숲길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렇게나 삐져나온 붉은 머리의 벨이 불러서, 그녀가 돌아보았다.
"코니가 신경 쓰던 책이 도서관에 입하되어서 빌려왔어."
"고마워, 벨 군. 그렇게 되었으니, 저를 부를 땐 코니로 하세요."
"그래."
벨의 시선이 유니에서 나로 향했다. 내가 나무에 가려 안 보였던 모양인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자크? 왜 두 사람이 함께......?"
"같은 반인걸요, 대화 정도야 할 수 있죠."
나에게 동의를 구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 다음 수업이 실습이라서, 일단 교실로 돌아가야겠어요."
두 권의 책을 소중히 품으면서, 코니는 그 책을 놓으러 교실로 간다고 고했다.
"그럼, 자크 씨 나중에 봐요."
"그래."
벨에게 다시 책의 감사를 전하고 나서, 코니는 재빨리 떠났다.
나도 학교 건물로 향하던 도중이라서, 벨과 나란히 코니가 떠나간 길을 쫓아서 걸어갔다. 조금 지나자, 벨이 불쑥 중얼거렸다.
"코니가 나 이외의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은 처음 봤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음~ 마침 공통된 화제가 있어서 대화했을 뿐이야."
"그리고, 코니가 약칭으로 부를 정도로......."
"의외로 대화하기 쉬웠다고."
여태까지 대화해 본 일이 없어서 아버지처럼 과묵한 타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기회만 있으면 제대로 대화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 그러냐."
"벨은 유니를 좋아해?"
나는 본 그대로의 감상을 말했다.
"뭐, 뭐뭐뭐뭐뭣.......!?"
어떻게 알았냐며 벨이 경악의 표정을 지었는데, 머리와 마찬가지로 얼굴을 붉혀서 긍정이라고만 보이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기뻐하지 않았으니까."
"레미아스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건 레미아스니까 그렇고."
"...... 무의미하지."
벨은 자조 섞어서 작게 웃었다.
약혼자가 있는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는 뜻은, 자기 이외의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미래가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걸 알고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익살맞은 일일지도 모른다.
"글쎄? 나도 그렇긴 하지만, 모르겠는데."
내가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벨은 눈을 부릅떴다.
"그랬었냐."
"벨은 어떻게 안 해?"
"......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뭐 그렇지이."
"약혼자에게 결함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상한 녀석은 아니라서."
내가 핼쭉 웃자, 벨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응원해도 좋을지 알 수 없어서, 코니한테서 들었던 일만 전해둔다.
"약혼은 형식상이라고 말했다고."
"코니 다워."
자기 일에 개의치 않는구나,라고 벨이 말했다. 그 눈을 보고, 깊은 애정을 느꼈다.
분명 딴 사람의 일이 아니다. 아스팔트 위든 어떤 장소에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는 꿋꿋이 피어나는 민들레 같은 것이다. 외모보다 훨씬 튼튼해서, 간단히 사라져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같이 나아가려는 각오를 굳혔다.
"....... 이자크, 나중에 또 내 말을 들어줘도 될까?"
헤어질 때, "마법의 일 이외로." 라며 벨이 주저하면서 물어보았다.
"그래. 그때는 나도 푸념하게 될지도."
불안해하는 벨에게, 나는 웃으면서 승낙해주었다.
그날 밤, 나는 생각났다는 듯이 흰 곰의 눈동자에 바람의 마력을 흘렸다.
보낸 마력에 호응하여, 마법이 발동하면서 방음의 결계가 전개된다. 결계에 사용되는 마력은, 물론 내 것이 아니라 곰 전화기의 저편에 있는 녀석의 것이다.
[정말, 이제야 연락을 해!? 너무 늦었어~]
"넌 수업을 안 받으니 한가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입학하고 나서 여러 가지로 익숙해지느라 힘들었다고."
[나도 내년에 입학하는걸! 한가하지 않은걸!]
그쪽도 한가하지 않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뿐이었으니, 암요암요 라며 곰 전화기를 통한 불만을 흘려보냈다.
"너와 마찬가지로, 그대의 별을 아는 녀석을 만났다고."
[엥, 세상에!? 전생의 기억을 가진 사람!?]
"응~"
[누구, 누구??]
"코니라고 하는, 엑스트라 캐릭터라던데."
[코니? 그런 캐릭터가 있었어??]
"레미아스의 약혼녀."
[쿤 후작 영애!]
"에르나의 일을 가르쳐줬으니, 내년에 만나면 대화해 봐."
[...... 이자크, 그대의 별 설법에서 도망치는 거지?]
즉시 알아차린 에르나가 지적하였다.
"나보다는 잘 아는 녀석과 대화하는 편이 너도 좋잖아."
[그렇긴 하지만~]
조금 도와줬을 뿐인 나는, 아무리 해도 여성향 게임을 좋아하는 동지는 될 수 없다.
[어떤 애?]
"음, 폐녀자라고 말했어."
[으엑!? 서로 용납 못할지도 몰라......]
"아마 괜찮을걸. 만화처럼, 뭐든지 BL로 만드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제대로 말해준다면야, 뭐. 괜찮으려나......]
갈등하는 듯 조금 신음소리를 내다가, 에르나가 그런 식으로 중얼거렸다.
[그보다, 이자크는 꺼려지지 않았어?]
"왜? 평범한 여자였는데."
[왠지, 타이치였던 때보다 인싸력이 올라가지 않았어......?]
확실히, 나는 바깥에 있는 편이 많기는 하다. 왜냐면 직장이 바깥이니.
"이 세계에는 게임기도 없고."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닌데...... 아~ 정말, 게임하고 싶어 졌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절대 취향이 겹치지 않았었지."
[취미가 너무 달라서 행운이었는걸. 교환하기도 쉬웠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모 게임만은 남매 둘도 하고 있었다. 반드시 두 타이틀이 나오는데, 큰 줄기는 같지만 내용이 약간씩 다른 점이 있었다. 일부의 출현 몬스터를 다르게 하여, 그것들의 교환과 교류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 게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전했던 격투 게임이나 서로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거치형 게임의 이야기꽃을 피웠다.
[...... 저기, 슈테파니에 씨는, 어떤 애?]
갑자기 에르나가 중얼거리는 듯이 물어보았다. 못 들었다면 그냥 흘려버릴 것 같은 질문이었다.
"들었던 거냐."
[응]
입학식에서 한 달 이상이 지났다. 레오가 아가씨의 친구에게 고백했다는 것도 에르나의 귀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나...... 외모만 알고 있어서, 히로인의 일은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로이 오라버님이 좋아하게 된 여자가 어떤 애인가 해서......]
자기 이름으로 설정해서 플레이했기 때문에 이름조차도 모르는 상대다. 완전히 미지의 인간일 것이다.
"나쁜 애는 아냐. 아가씨의 친구니까."
[그렇겠네~ 로이 오라버님을 좋아하게 되려나? 로이 오라버님은 세계에서 제일 멋지니까, 괜찮겠지!?]
"내가 알겠냐. 뭐, 레오를 천사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천, 사......?]
레오가 받은 오해를 알고서, 에르나는 놀라서 멈춰버린 모양이다. 잠시 뜸을 들인다.
[로이 오라버님의 아름다움은 신의 영역이니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정말로 신의 사도라고 생각하다니...... 약간 별나네]
"아니, 네 오빠사랑도 꽤 별나다고."
[잠깐, 왜 폐녀자는 꺼리지 않으면서, 나는 꺼리는 거야!?]
"왜냐면 너, 레오를 너무 칭찬하잖아."
[칭찬하지 않았어. 사실만 말했는걸!]
에르나의 한없는 오빠사랑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래! 슈테파니에 씨가 그렇게까지 로이 오라버님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오라버님은 반드시 함락될 거야!!]
귀찮아진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확신을 하여 불타오르는 에르나의 말을 들으면서, 슬슬 자고 싶다고 생각하는 밤이 깊어갔다.
알바 첫날, 나는 옷이 든 자루를 잊지 않고 들고 왔다.
하루의 수업이 끝난 뒤, 자루 이외에 교실에 두고 온 것이 있나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자크, 안 돌아가요?"
"아. 난 알바해야 돼."
"알바?"
"학교의 조경 작업을 도와주기로 되었어."
이제부터 한 주에 3번 알바를 한다고 전하자, 아가씨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경을 좋아해도 정도가 있죠......"
"책가방은 어떻게 하려고요?"
"자리에 놔둘까 하는데......"
"그럼, 봐줄게요."
"뭐?"
책가방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아서 대답하자, 의외로운 제안을 들었다.
"아니, 딱히 그냥 놔둬도 괜찮지 않을까."
"갖고 돌아가야죠. 자기 것은 제대로 관리하세요."
"하지만......"
"제 탓에, 광견이라는 오명을 짊어지고 있잖아요.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요."
"그럼, 부탁할게."
"마침 읽고 싶은 책이 있었거든요."
인기척이 없는 교실이 독서하기에 좋다며, 아가씨는 책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옷이 든 자루만 들고서 알바하러 갔다.
작업을 끝낸 뒤, 이후의 예정을 들은 나는, 옷을 벗어서 자루에 다시 넣고는, 교실 건물로 돌아갔다. 1학년 교실이 있는 복도까지 오자, 내 반의 교실 앞에 메이드 차림의 소녀가 서 있었다.
"포메?"
왜 교실 바깥에서 서 있는 거냐고 물어보려고 했더니, 이쪽을 바라본 포메가 쉿~ 하면서 긴소매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을 입가에 갖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뜻인가.
나는 포메의 지시에 따라 입을 다문 채 교실 입구까지 가서, 거기에 선 포메에게 고개를 갸웃하는 동작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포메는 살며시 교실의 문을 열고는,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이 생긴 것을 확인하고서 나에게 안을 들여다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안을 들여다보니, 주황색으로 물든 교실 안에 부드럽게 빛나는 옅은 금색이 보였다. 그것은 제일 뒤쪽, 창가의 자리에 있는 책상의 위에 있었다. 진귀한 광경에 약간 놀라면서도, 안에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손짓으로 물어보자, 포메는 고개를 끄덕여 허가해주었다.
되도록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신경 쓰면서, 나는 자기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기 자리의 앞의 의자에 거꾸로 앉았다.
내 자리에서는, 아가씨가 자고 있었다.
아가씨가 자는 표정이라니, 얼마만인지......
비 오는 날에, 처음으로 아가씨가 글자를 가르쳐 줬을 때 이래다. 그때도 잘 자고 있어서, 바로 깨우지 않았다.
잠자는 아가씨를 바라보면서, 솟아나는 것은 사랑스러움이다. 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자를 가리키는 말을, 나는 전생부터 알고 있다.
"....... 디아."
처음에는 부르면 안 된다고 들었던 칭호.
깨어있을 때는 부르지 않는 그것을, 지금만 입에 담는다.
현실감이 없는 광경을 보며, 자신에게 떠오르는 생각이 황혼 탓이라며 탄식을 한번 하였다. 그리고 나는, 석양의 열기가 식기 전에 아가씨를 깨우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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